안녕하세요, 신경수 박사입니다.
평소 저와 인연을 맺고 계신 소중한 분들께, 얼마 전 제가 직접 겪은 가슴 철렁했던 스캠(Scam) 사례를 공유하고자 합니다. 흔히 보이스피싱은 허술할 것이라 생각하지만, 이번 사건은 실존하는 해외 석학의 명성과 정교한 위조 서류, 조작된 영상까지 동원되어 전문가의 심리적 틈새를 치밀하게 파고들었습니다.
자칫 평판과 자산이 위협받을 뻔한 긴박한 순간이었으나, 다행히 마지막 검증 단계에서 정체를 밝혀낼 수 있었습니다. 이 기록이 단순히 저의 '운 좋았던 탈출기'를 넘어, 지능형 범죄에 맞서는 강력한 '백신'이자 우리 사회의 비즈니스 신뢰를 지키는 작은 이정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 며칠간의 기록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프롤로그: 평온한 일상에 파고든 ‘신뢰’의 이름
사건은 지난 달, 링크드인 알람 하나로 시작되었습니다. 연결을 요청한 이는 미국의 저명한 명예교수 클리터스 불락(Cletus Bulach). 그의 프로필은 화려했습니다. 수십 년간 교육 행정과 리더십을 강의해온 권위자, 그리고 무엇보다 저와 인맥이 닿아 있는 거물급 인사들과 ‘1촌’ 관계였습니다.
처음 그가 보낸 메시지는 정중함 그 자체였습니다. 저의 박사 학위와 커리어를 높게 평가하며, "당신 같은 전문가와 연결되어 영광"이라는 찬사는 전문가로서의 자부심을 교묘하게 자극했습니다. 이것이 지옥으로 가는 초대장이었음을 그때는 알지 못했습니다.
1단계: 정교한 인맥 해킹과 ‘사회적 공학’
그는 단순히 저에게 접근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제가 존경하는 국제표준기구 ISO 조성환 회장님(회장님은 현대 모비스의 대표이사 출신으로 작년까지 국제기구 ISO의 회장으로 계셨습니다)과 제가 속한 TC위원회의 제임스 위원장 등의 이름을 언급하며 "그들의 소개로 당신을 알게 되었다"는 거짓말로 저에게 접근했습니다. 모두가 ISO 국제회의에서 얼굴을 마주하고 있던 인물들이었기에 큰 의심없이 저는 클리터스 교수와 1촌 관계를 맺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관계가 형성되고 얼마 안 있어, 그는 자신이 폴란드 정부의 고위 정책 고문을 지낸 ‘미렉(Mirek)’이라는 오랜 친구를 돕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는 매우 신뢰할 만한 인물이지만, 지금 매우 민감한 보안 프로젝트를 수행 중이라 당신처럼 믿을 수 있는 한국의 파트너가 필요하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 말이 저를 단순한 타겟이 아닌 ‘선택받은 전문가’로 착각하게 만들었습니다.
2단계: 1,200만 유로, 거부할 수 없는 ‘비밀의 숲’

(미렉이라고 주장한 인물이 보내온 사진, 실제로 폴란드 외교부 홈페이지에도 올라와 있었다)
미렉과 연결된 이후, 시나리오는 급물살을 탔습니다. 사망한 전 폴란드 국립은행 총재의 유산 1,200만 유로(약 170억 원). 이 거액의 자금을 해외로 이체하기 위해 한국의 신뢰할 수 있는 개인 계좌가 필요하다는 전형적인 ‘나이지리아 왕자’ 수법의 변종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아마추어가 아니었습니다. 미렉은 자신의 사진, 신분증명서는 물론, 폴란드 국립은행의 로고가 박힌 공식 문서, 위조된 유언장, 법무법인의 인증서, 그리고 영국 은행의 자금 예치 확인서까지 수십 장의 서류를 이메일로 쏟아냈습니다. 서류 속의 직인과 서명은 너무나 정교하여 육안으로는 위조 여부를 판단하기 불가능할 정도였습니다.
3단계: 딥페이크와 가상 현실의 공포
하지만 너무나 황당한 제안에 저는 의심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다행히 그가 보내온 이력서에 외교관으로서 일본 도쿄에서 4년을 보낸 이력이 담겨있던 점이 눈에 띄어서 그에게 화상회의를 요청했습니다. 화상회의를 통해 직접 도쿄에서의 생활을 물으면 진위여부가 쉽게 가려지리라 생각을 했습니다. 폴란드 대사관은 제가 다녔던 학교에서도 그리 멀리 않은 거리에 있었기에 아직도 그 곳 지리는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화면으로 미팅을 갖게 되었습니다. 줌(Zoom) 화면 속의 미렉은 정장이 잘 어울리는 노신사였습니다. 하지만 이상한 점이 있었습니다. 분명 사진속의 모습과 다름은 없었으나, 움직임은 마치 오래된 필름처럼 끊겼고, 입 모양과 목소리의 미세한 불일치가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가 근무했다는 폴란드 대사관 주변의 ‘시쿠야’라는 식당에 대해 물었을 때는 답변을 피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곳에서 생활한 사람이라면 200년의 역사를 가진 ‘시쿠야’라는 식당을 모를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미렉은 "네트워크 환경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서둘러 미팅을 끝냈습니다. 나의 의구심은 더욱 더 깊어갔지만 그는 이제 저를 안심시키는 데 성공을 했다고 생각을 했는지 저의 개인정보와 서명, 그리고 자금 이체를 위한 구체적인 수수료 배분 등을 논의하며 대화의 수위를 높여갔습니다.
4단계: 가스라이팅, "당신은 무례하다"
저는 클리터스 교수에게 메일을 보내 미렉이라는 사람이 의심이 간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와 오간 내용을 말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클리터스가 미렉과 동일인물이라는 사실을 전혀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클리터스는, 미렉과 이 사실을 공유하고 있으며, 미렉은 100%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답변을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기서 물러서지 않고 화상회의 때 있었던 얼굴의 부정확성과 폴란드 대사관의 이야기를 하며 미렉에 대해 다시 한번 체크해 주기를 부탁드렸습니다. 그러자 그는 "우리는 수십 년간 쌓아온 명예를 걸고 일하는데, 당신은 우리를 의심하고 있다. 이건 우리에 대한 모욕이다", "ISO의 거물들이 당신을 추천했는데, 이렇게 무례한 사람인 줄 몰랐다"라며 ‘가스라이팅’ 기법으로 저를 압박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서 조성환 회장님이나 제임스 위원장에게 레퍼런스 체크를 했더라면 더 이상의 에너지 낭비는 없었을 텐데… 격하게 반응하는 블락 교수의 태도에 저는 “내가 과하게 의심하고 있나?”하는 생각을 잠시 갖게 되었습니다.
5단계: 반전의 서막 -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미렉의 여권: AI에 의하면, 여권사진 합성 100%, 여권번호 위조 100%라고 한다)
그리고 얼마 후, 미렉은 폴란드 여권을 보내며 저에게도 여권사본을 요구했습니다. 서로간의 최소한의 신뢰관계 구축때문이라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여기서 저는 드디어 AI의 힘을 빌리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저는 미렉의 폴란드 여권 사본을 AI를 활용하여 픽셀 단위로 분석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서 결정적인 균열이 발견되었습니다. 폴란드의 주민등록번호 격인 PESEL 번호는 생년월일과 성별을 조합해 산출되는 엄격한 알고리즘을 따릅니다.
그런데 그가 보낸 여권 속 PESEL은 '53'으로 시작했습니다. 이는 1953년생임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여권 상의 생년월일은 '1961년'이었습니다. 행정 전문가라는 자가 자신의 생년월일과 맞지 않는 여권을 들고 있다는 것, 이것은 절대로 실수할 수 없는 조작의 명백한 증거였습니다.
6단계: 결정적 실수 - 1인 다역의 허점
정체를 압박하던 도중, 또 하나의 코미디 같은 실수가 터졌습니다. 클리터스의 계정으로 온 메시지에 "클리터스 씨가 당신의 무례함에 대해 나에게 불만을 토로했다(Mr. Cletus has complained to me...)"는 문장이 적혀 있었습니다.
본인이 본인 계정으로 보내면서 자신을 제3자처럼 지칭한 것입니다. 이는 사기꾼 한 명이 미렉과 클리터스라는 두 인물을 동시에 연기하다가, 현재 어느 계정에 로그인 되어 있는지 잊어버리고 스크립트를 복사해서 붙여 넣었음을 의미합니다. 완벽해 보이던 연극이 초보적인 실수로 무너지는 순간이었습니다.
7단계: "17세 손자의 실수"라는 파렴치한 변명
모든 증거를 들이밀자, 클리터스라는 사람은 최후의 궤변을 늘어놓았습니다. "사실 내가 여행 중이라 17세 손자가 대신 메시지를 보냈는데, 그 아이가 실수한 것이다."
수백억의 자금을 논하는 엄중한 비즈니스 미팅을 손자에게 맡겼다는 이 말도 안 되는 변명은 역설적으로 그가 얼마나 궁지에 몰렸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끝까지 "나는 정직하다"고 우기며, 오히려 내가 의심이 많아 일을 망쳤다며 적반하장의 태도를 보이고는 자취를 감추어 버렸습니다.
8단계: 확인 사살 - 단절된 공식 채널
저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클리터스 교수가 재직했다는 대학의 공식 이메일로 그간 클리터스와 오간 대화 내용을 담은 메일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대학에서 보내온 답신은 저를 너무나 놀라게 만들었습니다. “클리터스 교수는 본 대학에서 재직한 교수로서 10년 전에 사고로 사망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결국 미렉과 동일 인물일 가능성이 높은 어느 사기꾼이 이미 고인이 된 교수의 명의를 도용하여 본인들의 사기사건에 활용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는 대목입니다.
사건이 일단락된 후, 사실 확인을 위해 조성환 회장님, 제임스 위원장님에게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그러자 이 두분 에게서도 비슷한 취지의 답변서가 돌아왔습니다. “클리터스 교수와는 최근 온라인에서 알게 된 사이이며, 신 박사가 경험한 비슷한 사건을 이미 여러 사람으로부터 듣고 있다”고 말하며, 본인들도 난처한 상황이라는 회신이었습니다.
에필로그: 진정한 신뢰는 '검증'을 통해 완성됩니다
이번 사건을 겪으며 제가 얻은 가장 큰 교훈은, 우리가 그토록 소중히 여기는 '신뢰'라는 가치가 범죄자들에게는 가장 쉬운 공략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우리의 선의와 전문가로서의 자부심, 그리고 공들여 쌓아온 인맥을 무기로 삼아 다가옵니다.
우리는 흔히 '비즈니스는 신뢰가 기본'이라고 말합니다. 저 역시 그 가치를 믿고 살아온 사람입니다. 하지만 이제 저는 한 문장을 덧붙이고자 합니다. "진정한 신뢰는 맹목적인 믿음이 아니라, 철저한 검증을 통과했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는 사실입니다.
상대가 내민 화려한 이력과 인맥의 화술에 압도되지 마십시오. 데이터는 차갑지만 거짓말을 하지 않으며, 정직한 서류는 결코 모순을 보이지 않습니다. 저의 이 치열했던 기록이 여러분이 가진 소중한 자산과 평판을 지키고, 더 단단한 신뢰의 비즈니스를 구축하는 데 작은 방패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SGI지속성장연구소장 신경수 올림
안녕하세요, 신경수 박사입니다.
평소 저와 인연을 맺고 계신 소중한 분들께, 얼마 전 제가 직접 겪은 가슴 철렁했던 스캠(Scam) 사례를 공유하고자 합니다. 흔히 보이스피싱은 허술할 것이라 생각하지만, 이번 사건은 실존하는 해외 석학의 명성과 정교한 위조 서류, 조작된 영상까지 동원되어 전문가의 심리적 틈새를 치밀하게 파고들었습니다.
자칫 평판과 자산이 위협받을 뻔한 긴박한 순간이었으나, 다행히 마지막 검증 단계에서 정체를 밝혀낼 수 있었습니다. 이 기록이 단순히 저의 '운 좋았던 탈출기'를 넘어, 지능형 범죄에 맞서는 강력한 '백신'이자 우리 사회의 비즈니스 신뢰를 지키는 작은 이정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 며칠간의 기록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프롤로그: 평온한 일상에 파고든 ‘신뢰’의 이름
사건은 지난 달, 링크드인 알람 하나로 시작되었습니다. 연결을 요청한 이는 미국의 저명한 명예교수 클리터스 불락(Cletus Bulach). 그의 프로필은 화려했습니다. 수십 년간 교육 행정과 리더십을 강의해온 권위자, 그리고 무엇보다 저와 인맥이 닿아 있는 거물급 인사들과 ‘1촌’ 관계였습니다.
처음 그가 보낸 메시지는 정중함 그 자체였습니다. 저의 박사 학위와 커리어를 높게 평가하며, "당신 같은 전문가와 연결되어 영광"이라는 찬사는 전문가로서의 자부심을 교묘하게 자극했습니다. 이것이 지옥으로 가는 초대장이었음을 그때는 알지 못했습니다.
1단계: 정교한 인맥 해킹과 ‘사회적 공학’
그는 단순히 저에게 접근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제가 존경하는 국제표준기구 ISO 조성환 회장님(회장님은 현대 모비스의 대표이사 출신으로 작년까지 국제기구 ISO의 회장으로 계셨습니다)과 제가 속한 TC위원회의 제임스 위원장 등의 이름을 언급하며 "그들의 소개로 당신을 알게 되었다"는 거짓말로 저에게 접근했습니다. 모두가 ISO 국제회의에서 얼굴을 마주하고 있던 인물들이었기에 큰 의심없이 저는 클리터스 교수와 1촌 관계를 맺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관계가 형성되고 얼마 안 있어, 그는 자신이 폴란드 정부의 고위 정책 고문을 지낸 ‘미렉(Mirek)’이라는 오랜 친구를 돕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는 매우 신뢰할 만한 인물이지만, 지금 매우 민감한 보안 프로젝트를 수행 중이라 당신처럼 믿을 수 있는 한국의 파트너가 필요하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 말이 저를 단순한 타겟이 아닌 ‘선택받은 전문가’로 착각하게 만들었습니다.
2단계: 1,200만 유로, 거부할 수 없는 ‘비밀의 숲’
(미렉이라고 주장한 인물이 보내온 사진, 실제로 폴란드 외교부 홈페이지에도 올라와 있었다)
미렉과 연결된 이후, 시나리오는 급물살을 탔습니다. 사망한 전 폴란드 국립은행 총재의 유산 1,200만 유로(약 170억 원). 이 거액의 자금을 해외로 이체하기 위해 한국의 신뢰할 수 있는 개인 계좌가 필요하다는 전형적인 ‘나이지리아 왕자’ 수법의 변종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아마추어가 아니었습니다. 미렉은 자신의 사진, 신분증명서는 물론, 폴란드 국립은행의 로고가 박힌 공식 문서, 위조된 유언장, 법무법인의 인증서, 그리고 영국 은행의 자금 예치 확인서까지 수십 장의 서류를 이메일로 쏟아냈습니다. 서류 속의 직인과 서명은 너무나 정교하여 육안으로는 위조 여부를 판단하기 불가능할 정도였습니다.
3단계: 딥페이크와 가상 현실의 공포
하지만 너무나 황당한 제안에 저는 의심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다행히 그가 보내온 이력서에 외교관으로서 일본 도쿄에서 4년을 보낸 이력이 담겨있던 점이 눈에 띄어서 그에게 화상회의를 요청했습니다. 화상회의를 통해 직접 도쿄에서의 생활을 물으면 진위여부가 쉽게 가려지리라 생각을 했습니다. 폴란드 대사관은 제가 다녔던 학교에서도 그리 멀리 않은 거리에 있었기에 아직도 그 곳 지리는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화면으로 미팅을 갖게 되었습니다. 줌(Zoom) 화면 속의 미렉은 정장이 잘 어울리는 노신사였습니다. 하지만 이상한 점이 있었습니다. 분명 사진속의 모습과 다름은 없었으나, 움직임은 마치 오래된 필름처럼 끊겼고, 입 모양과 목소리의 미세한 불일치가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가 근무했다는 폴란드 대사관 주변의 ‘시쿠야’라는 식당에 대해 물었을 때는 답변을 피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곳에서 생활한 사람이라면 200년의 역사를 가진 ‘시쿠야’라는 식당을 모를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미렉은 "네트워크 환경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서둘러 미팅을 끝냈습니다. 나의 의구심은 더욱 더 깊어갔지만 그는 이제 저를 안심시키는 데 성공을 했다고 생각을 했는지 저의 개인정보와 서명, 그리고 자금 이체를 위한 구체적인 수수료 배분 등을 논의하며 대화의 수위를 높여갔습니다.
4단계: 가스라이팅, "당신은 무례하다"
저는 클리터스 교수에게 메일을 보내 미렉이라는 사람이 의심이 간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와 오간 내용을 말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클리터스가 미렉과 동일인물이라는 사실을 전혀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클리터스는, 미렉과 이 사실을 공유하고 있으며, 미렉은 100%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답변을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기서 물러서지 않고 화상회의 때 있었던 얼굴의 부정확성과 폴란드 대사관의 이야기를 하며 미렉에 대해 다시 한번 체크해 주기를 부탁드렸습니다. 그러자 그는 "우리는 수십 년간 쌓아온 명예를 걸고 일하는데, 당신은 우리를 의심하고 있다. 이건 우리에 대한 모욕이다", "ISO의 거물들이 당신을 추천했는데, 이렇게 무례한 사람인 줄 몰랐다"라며 ‘가스라이팅’ 기법으로 저를 압박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서 조성환 회장님이나 제임스 위원장에게 레퍼런스 체크를 했더라면 더 이상의 에너지 낭비는 없었을 텐데… 격하게 반응하는 블락 교수의 태도에 저는 “내가 과하게 의심하고 있나?”하는 생각을 잠시 갖게 되었습니다.
5단계: 반전의 서막 -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미렉의 여권: AI에 의하면, 여권사진 합성 100%, 여권번호 위조 100%라고 한다)
그리고 얼마 후, 미렉은 폴란드 여권을 보내며 저에게도 여권사본을 요구했습니다. 서로간의 최소한의 신뢰관계 구축때문이라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여기서 저는 드디어 AI의 힘을 빌리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저는 미렉의 폴란드 여권 사본을 AI를 활용하여 픽셀 단위로 분석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서 결정적인 균열이 발견되었습니다. 폴란드의 주민등록번호 격인 PESEL 번호는 생년월일과 성별을 조합해 산출되는 엄격한 알고리즘을 따릅니다.
그런데 그가 보낸 여권 속 PESEL은 '53'으로 시작했습니다. 이는 1953년생임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여권 상의 생년월일은 '1961년'이었습니다. 행정 전문가라는 자가 자신의 생년월일과 맞지 않는 여권을 들고 있다는 것, 이것은 절대로 실수할 수 없는 조작의 명백한 증거였습니다.
6단계: 결정적 실수 - 1인 다역의 허점
정체를 압박하던 도중, 또 하나의 코미디 같은 실수가 터졌습니다. 클리터스의 계정으로 온 메시지에 "클리터스 씨가 당신의 무례함에 대해 나에게 불만을 토로했다(Mr. Cletus has complained to me...)"는 문장이 적혀 있었습니다.
본인이 본인 계정으로 보내면서 자신을 제3자처럼 지칭한 것입니다. 이는 사기꾼 한 명이 미렉과 클리터스라는 두 인물을 동시에 연기하다가, 현재 어느 계정에 로그인 되어 있는지 잊어버리고 스크립트를 복사해서 붙여 넣었음을 의미합니다. 완벽해 보이던 연극이 초보적인 실수로 무너지는 순간이었습니다.
7단계: "17세 손자의 실수"라는 파렴치한 변명
모든 증거를 들이밀자, 클리터스라는 사람은 최후의 궤변을 늘어놓았습니다. "사실 내가 여행 중이라 17세 손자가 대신 메시지를 보냈는데, 그 아이가 실수한 것이다."
수백억의 자금을 논하는 엄중한 비즈니스 미팅을 손자에게 맡겼다는 이 말도 안 되는 변명은 역설적으로 그가 얼마나 궁지에 몰렸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끝까지 "나는 정직하다"고 우기며, 오히려 내가 의심이 많아 일을 망쳤다며 적반하장의 태도를 보이고는 자취를 감추어 버렸습니다.
8단계: 확인 사살 - 단절된 공식 채널
저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클리터스 교수가 재직했다는 대학의 공식 이메일로 그간 클리터스와 오간 대화 내용을 담은 메일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대학에서 보내온 답신은 저를 너무나 놀라게 만들었습니다. “클리터스 교수는 본 대학에서 재직한 교수로서 10년 전에 사고로 사망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결국 미렉과 동일 인물일 가능성이 높은 어느 사기꾼이 이미 고인이 된 교수의 명의를 도용하여 본인들의 사기사건에 활용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는 대목입니다.
사건이 일단락된 후, 사실 확인을 위해 조성환 회장님, 제임스 위원장님에게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그러자 이 두분 에게서도 비슷한 취지의 답변서가 돌아왔습니다. “클리터스 교수와는 최근 온라인에서 알게 된 사이이며, 신 박사가 경험한 비슷한 사건을 이미 여러 사람으로부터 듣고 있다”고 말하며, 본인들도 난처한 상황이라는 회신이었습니다.
에필로그: 진정한 신뢰는 '검증'을 통해 완성됩니다
이번 사건을 겪으며 제가 얻은 가장 큰 교훈은, 우리가 그토록 소중히 여기는 '신뢰'라는 가치가 범죄자들에게는 가장 쉬운 공략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우리의 선의와 전문가로서의 자부심, 그리고 공들여 쌓아온 인맥을 무기로 삼아 다가옵니다.
우리는 흔히 '비즈니스는 신뢰가 기본'이라고 말합니다. 저 역시 그 가치를 믿고 살아온 사람입니다. 하지만 이제 저는 한 문장을 덧붙이고자 합니다. "진정한 신뢰는 맹목적인 믿음이 아니라, 철저한 검증을 통과했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는 사실입니다.
상대가 내민 화려한 이력과 인맥의 화술에 압도되지 마십시오. 데이터는 차갑지만 거짓말을 하지 않으며, 정직한 서류는 결코 모순을 보이지 않습니다. 저의 이 치열했던 기록이 여러분이 가진 소중한 자산과 평판을 지키고, 더 단단한 신뢰의 비즈니스를 구축하는 데 작은 방패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SGI지속성장연구소장 신경수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