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발간한 책들 중에서 2021년 출간한「자율조직」이 가장 많이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책의 흐름은 전체적으로 인간의 ‘자유의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이제는 ‘통제’가 아닌 ‘자율’의 조직문화여야 한다는 결론을 내기 위해 많은 연구자료와 현장사례를 담았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다소 엉뚱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자율조직으로 조직문화가 갈 수밖에 없는 시대적 흐름을 써 보기로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자율조직」속편의 기획 의도입니다.
1. 역사의 흐름은 일정하지 않다
인류가 경험한 3가지 사회혁명
인류의 혁신은 ‘농업혁명’에서 시작되었다. 무리를 지어 사냥을 하고 식물의 열매를 먹고 살던 인류의 생활이 크게 바뀌게 된 건 농업혁명덕분이다. 인류는 농업혁명으로 인해 수확물을 보존하고 농지개척을 시작했다. 강의 흐름을 바꾸고 이용가능한 동물번식도 시작했다. 농작물을 기록하기 위해 문자가 발명되었고, 자신들의 역사도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 이후 인류는 수천년의 시간동안 부를 축적하고, 화폐를 주조하고, 국가를 만들면서 '농경사회'를 발전시켜 왔다.
느긋하게 이어오던 인류의 움직임이 빨라진 계기가 된 것은 18세기 중반에 시작된 '산업혁명'때문이다. 이 기술혁신에 의해 ‘농경사회’에서 ‘공업사회’로의 시프트가 시작되고, 약 2세기 만에 산업과 사회구조가 큰 쇄신을 이루었다. 대량생산, 대량판매, 매스미디어, 대중오락 등,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초강력 슈퍼 파워들이 일제히 생겨나고 조직 스타일도 탑에서 컨트롤하는 형태가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이 산업혁명은 시민혁명과 함께 근대와 그 이전의 시대를 나누는 분수령이 되었으며, 영국을 시작으로 유럽, 미국, 러시아, 일본 등의 열강 각국에서 '공업사회'로의 이행이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결과로 이어졌다.
그러나 이 놀라운 혁신도 ‘완만한 진화가 일어나고 있던 세상' 속에서 일어난 하나의 과정에 불과했다. 정말로 큰 변화는 그 이후에 도래했기 때문이다. 완만하게 진행되어 오던 세계관에 큰 변화를 일으킨 사건이 발생했는데, 20세기 중반에 등장한 컴퓨터로 인해 생긴 ‘정보혁명’이다. 인텔의 창업자 고돈 무어가 예언한 바와 같이, 이 혁명적인 머신은 18개월 만에 2배의 비율로 진화를 이어갔고, 탄생한 이후의 성능비는 수조배를 넘었다. 정보혁명은 ‘지수함수적인 스피드로 진화하는 세계’를 만들었고, ‘공업사회”는 ‘지식사회’로 옮겨갔다. 그러나 이 극적인 구조변화에 사람들의 사고가 따라가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이런저런 사회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한 것이다.
산업혁명 - 제조혁신이 세계를 뒤덮다
50년 주기의 경기사이클이라 불리는 ‘콘트라체프의 파도’를 가지고 다시한번 이 문제를 설명해 보도록 하겠다. 러시아의 경제학자가 고안하고, 혁신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요세프 쉼페터가 세계에 퍼뜨린 이 이론은 혁신과 경제위기가 교차하는 경제순환을 나타내고 있다. 산업혁명은 사람의 팔다리를 대체하는 기계가 일으킨 혁명이다. 이 혁명은 18세기 후반부터 약 150년 동안에 걸쳐 3개의 장기파동인 ‘철도의 시대’ ‘철강의 시대’ ‘자동차의 시대’를 만들었다.
‘철도의 시대’는 증기기관의 발명으로부터 탄생했다. 증기기관의 발명으로 면공업이 기계화되었고, 물자수송을 위해 철도와 해운이 단번에 발전했다. 제조뿐만 아니라 인간과 물건의 이동에 혁신이 태어난 시대이다. 그러나 1837년 미국에 금융위기가 일어난 것을 계기로 세계경제의 트렌드는 하강으로 향한다.
두 번째 파동은 '철강의 시대'다. 제조와 물자의 이동이 번성하면서 그 수단인 공업기계와 철도조선, 그 재료가 되는 철강의 수요가 급증해 갔다. 주요 동력원도 목재에서 석탄으로 이동했다. 재료와 에너지에 혁신이 탄생한 시대이다. 그러나 1837년 공황과 함께 시작된 대불황으로 인해 이 또한 약 30년간에 걸쳐 하강 트렌드에 들어가게 된다.
세 번째 파동은 '자동차 시대'다. 새로운 동력원으로 석유가 각광을 받으면서 석유를 동력원으로 하는 자동차가 탄생했다. 이를 효율적으로 제조하는 작업방식을 포드가 도입하여 대량생산도 시작되었다. '과학적 관리법'이라고 불리는 경영학의 원점이 생겨났으며, 조직적인 제조의 혁신이 탄생한 시대이다. 그러나 버블이 세계공황에 의해 연주되고 열강에 의한 블록 경제화가 진행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이러한 경제싸이클 겪으면서 미디어와 사람들은 다음의 변화를 예의주시하며 관찰했다.
전후의 부흥 - 양과 속도를 찾은 인류가 낳은 것
전후, 세계는 극적으로 변화했다. 그 기반이 된 '정보혁명'은 사람의 두뇌를 대체하는 컴퓨터가 일으킨 혁명으로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2개의 파동을 만들어 냈다. 독립한 컴퓨터군이 정보처리를 해내는 ‘컴퓨터의 시대’와, 상호 접속된 네트워크로 무수한 컴퓨터가 긴밀하게 연결되는 ‘인터넷의 시대’이다. 정보혁명의 조력자들은 어떻게 비즈니스의 세계에 등장하게 되었을까? 전후, 컴퓨터가 등장한 전장터로 시점을 옮겨서 찾아보도록 하자.
1945년, 역사상 가장 큰 전쟁이라고 불린 세계대전이 막을 내렸다. 격렬한 전쟁으로 세계는 황폐하고 많은 사람들이 삶의 기반을 상실했다. 그 때문에 일본은 물론, 유럽이나 아시아국들은 국가 전체가 하나가 되어 경제재건의 길로 향하기 시작했다. 이 당시, 사회를 지탱한 것이 ‘대량생산, 대량판매 시스템'이다. 피폐한 국민들의 엄청난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표준화된 제품을 싸게 대량으로 만드는 시스템인 ‘과학적 관리법’을 중공업 산업군에서 잇달아 도입하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생활필수품의 대량생산이 가능해졌다. 동시에 소매업도 과학적인 경영시스템인 '체인스토어 이론'을 도입하고 이를 통해 대량판매의 추진엔진인 슈퍼마켓의 초석이 구축되었다.
[용어해설] - 체인스토어 이론 - 미국에서 태어난 대량판매시스템의 이론으로, 슈퍼마켓 보급의 기반이 되었다. 다점포 경영을 본부 주도로 효과적으로 운영하는 수법이며, 집중화와 표준화를 핵으로 한다. 집중화의 목적은 상품의 매입은 물론, 점포의 레지, 선반, 가구, 간판 등을 일괄 발주하는 것으로서 코스트 삭감을 굳히는 것이다. 표준화의 목적은 조직구성이나 접객 등을 매뉴얼화하고, 효과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상품구성에서 점포 디자인, 오퍼레이션까지 균일하게 하여 비용절감의 효과도 목표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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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경영시스템은 노동생산성을 크게 향상시켰다. 또 노사협상의 활성화로 임금도 크게 상승했다. 결과적으로 생겨난 것이 '대중소비사회'이다. 또한 TV라는 혁명적 매스미디어도 등장해서 소비의 속도를 비약적으로 증가시켰다. 이후 20년 동안 세상 사람들은 매년 5%씩 생산성을 높이고 4%씩 소비를 높여갔다. 인류사에서도 유례없는 공전의 경제성장이 20년 이상 지속된 것이다. 그 탄생을 지원하고 있던 것이 컴퓨터에 의한 정보 처리이다.
컴퓨터의 등장은 전후와 거의 동시에 이루어졌다. 세계 최초의 컴퓨터라고 불리는 것은 1946년에 탄생한 전자계산기, ENIAC(에니악)이다. 10자리의 가산계산을 초당 5000회 실행할 수 있는, 당시로서는 경이적인 성능을 가진 머신으로서 미디어는 '거대두뇌(Giant Brain)'라고 명명해서 보도했다. 그 크기는 폭 30m, 높이 2.4m, 깊이 0.9m, 총중량 27톤이다. 17000개를 넘는 진공관을 탑재하고 있었고, 매일 몇 개씩 망가지기도 했는데, 수리하는 데에도 매회 30분정도 걸렸다고 한다.
그러나 이 무렵, 이 거대한 머신은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했다. 당시 IBM의 토마스 왓슨 회장이 "전세계의 컴퓨터 수요는 5대 정도"라고 예언한 것에서도 상상할 수 있듯이 컴퓨터의 수요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한 실수였다. 1964년 그 왓슨 회장이 이끄는 IBM이 메인프레임의 시초이자 상용 컴퓨터로는 처음으로 OS를 갖춘 System/360을 개발함으로써 컴퓨터는 비지니스에 필수적인 기둥이 되기 시작했다. 사람을 대체하여 대량의 정보처리를 함으로써 대량생산 대량판매를 실현해 냈고, 지수함수적인 성장을 가져오는 비즈니스의 기반도 마련했다.
오일쇼크 - 1973년, 비즈니스가 방향을 잃어 버리다
1973년 10월, 세계가 충격에 빠지기 시작했다. 제4차 중동전쟁이 발발함과 동시에 6개의 산유국이 연합하여 국제원유가격의 인상을 발표한 것이다. 이에 따라 석유가격은 3개월 만에 약 4배까지 급등한다. 소위 말하는 '제1차 오일쇼크'이다. 3C로 불리는 자동차(카), 냉방기(Cooler), TV(Color TV)와 같은 생활 필수품들이 더 이상 팔리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성장 엔진이었던 대량생산시스템이 반대로 경영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기업경영의 과제가 “어떻게 많이 만들고 많이 팔까”에서 “어떻게 경쟁사를 이길까”로 옮겨갔다. 다양화되어 가는 고객 니즈에 대응하기 위한 다품종 소량생산시스템이 도입되기 시작했다. 이를 위해, 컴퓨터가 풀 가동되어 정보화를 지원해 갔다.
전쟁 용어였던 '전략전술'이라는 말이 비즈니스 세계에 정착한 것도 이 시점이다. 경쟁자를 이기기 위한 전략입안과 팔리는 구조를 만드는 마케팅이 경영모델의 핵심이 되었다. 경영개혁의 주역이 된 컨설팅펌은 비용 고객 경쟁자 등의 숫자를 철저히 분석하여 대기업의 전략수립에 깊숙이 관여했다. 테일러는 '과학적 관리법'을 공장의 업무개선에 적용했지만, 컨설턴트들은 업무의 모든 측면에 대해 경영분석을 실시하고 자사를 경쟁우위로 이끄는 전략을 책정해 나갔다. 이 흐름은 나중에 ‘네오 테일러주의’라고도 불렸다.
1991년 동서냉전이 종식이 되자 세계는 자본주의로 하나가 되었다. 매니지먼트의 네오 테일러주의도 경쟁전략, 선택과 집중, 시가총액 경영으로 진화해 나갔다. 컴퓨터의 고성능화는 가속화되고, 그에 비례하여 비즈니스의 효율화나 복잡화도 동시에 진행이 되었다. 미래를 예측하고, 경영자원을 최적으로 배분하고, 경쟁우위를 얻고, 경제적인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서였다. 비즈니스는 전쟁이고, 비즈니스 스쿨은 싸움을 이기기 위한 방법을 가르치는 곳이라는 인식이 사람들의 머릿속에 파고들기 시작했다. 전략적 사고가 사회 전체에 침투하여 물질적인 풍요는 늘어갔지만, 반대로 정신적인 풍요는 줄어드는 현상이 보편화 되어 갔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사건 하나를 남기고 가야 할듯 하다. 세상을 놀라게 만든 혁명적 기술과 관련된 이야기다. 오일쇼크가 경제를 때린 1973년, 세상에 큰 변혁을 일으키게 되는 단초를 제공한 혁명적 테크놀로지가 어느 연구실에서 싹트고 있었다. 이후 '인터넷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빈턴 서프와 로버트 칸이 TCP/IP 프로토콜(전세계를 그물망 네트워크로 연결하기 위한 절차)을 발명한 것이다. 미국의 어느 연구실에서의 작은 기획이 지구 규모로 사회를 바꾸는 한 걸음이 되는 것을 그 당시에는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To be continued...
글쓴이: 신경수 조직심리박사 (지속성장연구소장 / 인간개발연구원 부원장)
지금까지 발간한 책들 중에서 2021년 출간한「자율조직」이 가장 많이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책의 흐름은 전체적으로 인간의 ‘자유의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이제는 ‘통제’가 아닌 ‘자율’의 조직문화여야 한다는 결론을 내기 위해 많은 연구자료와 현장사례를 담았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다소 엉뚱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자율조직으로 조직문화가 갈 수밖에 없는 시대적 흐름을 써 보기로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자율조직」속편의 기획 의도입니다.
1. 역사의 흐름은 일정하지 않다
인류가 경험한 3가지 사회혁명
인류의 혁신은 ‘농업혁명’에서 시작되었다. 무리를 지어 사냥을 하고 식물의 열매를 먹고 살던 인류의 생활이 크게 바뀌게 된 건 농업혁명덕분이다. 인류는 농업혁명으로 인해 수확물을 보존하고 농지개척을 시작했다. 강의 흐름을 바꾸고 이용가능한 동물번식도 시작했다. 농작물을 기록하기 위해 문자가 발명되었고, 자신들의 역사도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 이후 인류는 수천년의 시간동안 부를 축적하고, 화폐를 주조하고, 국가를 만들면서 '농경사회'를 발전시켜 왔다.
느긋하게 이어오던 인류의 움직임이 빨라진 계기가 된 것은 18세기 중반에 시작된 '산업혁명'때문이다. 이 기술혁신에 의해 ‘농경사회’에서 ‘공업사회’로의 시프트가 시작되고, 약 2세기 만에 산업과 사회구조가 큰 쇄신을 이루었다. 대량생산, 대량판매, 매스미디어, 대중오락 등,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초강력 슈퍼 파워들이 일제히 생겨나고 조직 스타일도 탑에서 컨트롤하는 형태가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이 산업혁명은 시민혁명과 함께 근대와 그 이전의 시대를 나누는 분수령이 되었으며, 영국을 시작으로 유럽, 미국, 러시아, 일본 등의 열강 각국에서 '공업사회'로의 이행이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결과로 이어졌다.
그러나 이 놀라운 혁신도 ‘완만한 진화가 일어나고 있던 세상' 속에서 일어난 하나의 과정에 불과했다. 정말로 큰 변화는 그 이후에 도래했기 때문이다. 완만하게 진행되어 오던 세계관에 큰 변화를 일으킨 사건이 발생했는데, 20세기 중반에 등장한 컴퓨터로 인해 생긴 ‘정보혁명’이다. 인텔의 창업자 고돈 무어가 예언한 바와 같이, 이 혁명적인 머신은 18개월 만에 2배의 비율로 진화를 이어갔고, 탄생한 이후의 성능비는 수조배를 넘었다. 정보혁명은 ‘지수함수적인 스피드로 진화하는 세계’를 만들었고, ‘공업사회”는 ‘지식사회’로 옮겨갔다. 그러나 이 극적인 구조변화에 사람들의 사고가 따라가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이런저런 사회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한 것이다.
산업혁명 - 제조혁신이 세계를 뒤덮다
50년 주기의 경기사이클이라 불리는 ‘콘트라체프의 파도’를 가지고 다시한번 이 문제를 설명해 보도록 하겠다. 러시아의 경제학자가 고안하고, 혁신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요세프 쉼페터가 세계에 퍼뜨린 이 이론은 혁신과 경제위기가 교차하는 경제순환을 나타내고 있다. 산업혁명은 사람의 팔다리를 대체하는 기계가 일으킨 혁명이다. 이 혁명은 18세기 후반부터 약 150년 동안에 걸쳐 3개의 장기파동인 ‘철도의 시대’ ‘철강의 시대’ ‘자동차의 시대’를 만들었다.
‘철도의 시대’는 증기기관의 발명으로부터 탄생했다. 증기기관의 발명으로 면공업이 기계화되었고, 물자수송을 위해 철도와 해운이 단번에 발전했다. 제조뿐만 아니라 인간과 물건의 이동에 혁신이 태어난 시대이다. 그러나 1837년 미국에 금융위기가 일어난 것을 계기로 세계경제의 트렌드는 하강으로 향한다.
두 번째 파동은 '철강의 시대'다. 제조와 물자의 이동이 번성하면서 그 수단인 공업기계와 철도조선, 그 재료가 되는 철강의 수요가 급증해 갔다. 주요 동력원도 목재에서 석탄으로 이동했다. 재료와 에너지에 혁신이 탄생한 시대이다. 그러나 1837년 공황과 함께 시작된 대불황으로 인해 이 또한 약 30년간에 걸쳐 하강 트렌드에 들어가게 된다.
세 번째 파동은 '자동차 시대'다. 새로운 동력원으로 석유가 각광을 받으면서 석유를 동력원으로 하는 자동차가 탄생했다. 이를 효율적으로 제조하는 작업방식을 포드가 도입하여 대량생산도 시작되었다. '과학적 관리법'이라고 불리는 경영학의 원점이 생겨났으며, 조직적인 제조의 혁신이 탄생한 시대이다. 그러나 버블이 세계공황에 의해 연주되고 열강에 의한 블록 경제화가 진행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이러한 경제싸이클 겪으면서 미디어와 사람들은 다음의 변화를 예의주시하며 관찰했다.
전후의 부흥 - 양과 속도를 찾은 인류가 낳은 것
전후, 세계는 극적으로 변화했다. 그 기반이 된 '정보혁명'은 사람의 두뇌를 대체하는 컴퓨터가 일으킨 혁명으로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2개의 파동을 만들어 냈다. 독립한 컴퓨터군이 정보처리를 해내는 ‘컴퓨터의 시대’와, 상호 접속된 네트워크로 무수한 컴퓨터가 긴밀하게 연결되는 ‘인터넷의 시대’이다. 정보혁명의 조력자들은 어떻게 비즈니스의 세계에 등장하게 되었을까? 전후, 컴퓨터가 등장한 전장터로 시점을 옮겨서 찾아보도록 하자.
1945년, 역사상 가장 큰 전쟁이라고 불린 세계대전이 막을 내렸다. 격렬한 전쟁으로 세계는 황폐하고 많은 사람들이 삶의 기반을 상실했다. 그 때문에 일본은 물론, 유럽이나 아시아국들은 국가 전체가 하나가 되어 경제재건의 길로 향하기 시작했다. 이 당시, 사회를 지탱한 것이 ‘대량생산, 대량판매 시스템'이다. 피폐한 국민들의 엄청난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표준화된 제품을 싸게 대량으로 만드는 시스템인 ‘과학적 관리법’을 중공업 산업군에서 잇달아 도입하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생활필수품의 대량생산이 가능해졌다. 동시에 소매업도 과학적인 경영시스템인 '체인스토어 이론'을 도입하고 이를 통해 대량판매의 추진엔진인 슈퍼마켓의 초석이 구축되었다.
[용어해설]
- 체인스토어 이론 -
미국에서 태어난 대량판매시스템의 이론으로, 슈퍼마켓 보급의 기반이 되었다. 다점포 경영을 본부 주도로 효과적으로 운영하는 수법이며, 집중화와 표준화를 핵으로 한다. 집중화의 목적은 상품의 매입은 물론, 점포의 레지, 선반, 가구, 간판 등을 일괄 발주하는 것으로서 코스트 삭감을 굳히는 것이다. 표준화의 목적은 조직구성이나 접객 등을 매뉴얼화하고, 효과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상품구성에서 점포 디자인, 오퍼레이션까지 균일하게 하여 비용절감의 효과도 목표로 한다.
이러한 경영시스템은 노동생산성을 크게 향상시켰다. 또 노사협상의 활성화로 임금도 크게 상승했다. 결과적으로 생겨난 것이 '대중소비사회'이다. 또한 TV라는 혁명적 매스미디어도 등장해서 소비의 속도를 비약적으로 증가시켰다. 이후 20년 동안 세상 사람들은 매년 5%씩 생산성을 높이고 4%씩 소비를 높여갔다. 인류사에서도 유례없는 공전의 경제성장이 20년 이상 지속된 것이다. 그 탄생을 지원하고 있던 것이 컴퓨터에 의한 정보 처리이다.
컴퓨터의 등장은 전후와 거의 동시에 이루어졌다. 세계 최초의 컴퓨터라고 불리는 것은 1946년에 탄생한 전자계산기, ENIAC(에니악)이다. 10자리의 가산계산을 초당 5000회 실행할 수 있는, 당시로서는 경이적인 성능을 가진 머신으로서 미디어는 '거대두뇌(Giant Brain)'라고 명명해서 보도했다. 그 크기는 폭 30m, 높이 2.4m, 깊이 0.9m, 총중량 27톤이다. 17000개를 넘는 진공관을 탑재하고 있었고, 매일 몇 개씩 망가지기도 했는데, 수리하는 데에도 매회 30분정도 걸렸다고 한다.
그러나 이 무렵, 이 거대한 머신은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했다. 당시 IBM의 토마스 왓슨 회장이 "전세계의 컴퓨터 수요는 5대 정도"라고 예언한 것에서도 상상할 수 있듯이 컴퓨터의 수요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한 실수였다. 1964년 그 왓슨 회장이 이끄는 IBM이 메인프레임의 시초이자 상용 컴퓨터로는 처음으로 OS를 갖춘 System/360을 개발함으로써 컴퓨터는 비지니스에 필수적인 기둥이 되기 시작했다. 사람을 대체하여 대량의 정보처리를 함으로써 대량생산 대량판매를 실현해 냈고, 지수함수적인 성장을 가져오는 비즈니스의 기반도 마련했다.
오일쇼크 - 1973년, 비즈니스가 방향을 잃어 버리다
1973년 10월, 세계가 충격에 빠지기 시작했다. 제4차 중동전쟁이 발발함과 동시에 6개의 산유국이 연합하여 국제원유가격의 인상을 발표한 것이다. 이에 따라 석유가격은 3개월 만에 약 4배까지 급등한다. 소위 말하는 '제1차 오일쇼크'이다. 3C로 불리는 자동차(카), 냉방기(Cooler), TV(Color TV)와 같은 생활 필수품들이 더 이상 팔리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성장 엔진이었던 대량생산시스템이 반대로 경영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기업경영의 과제가 “어떻게 많이 만들고 많이 팔까”에서 “어떻게 경쟁사를 이길까”로 옮겨갔다. 다양화되어 가는 고객 니즈에 대응하기 위한 다품종 소량생산시스템이 도입되기 시작했다. 이를 위해, 컴퓨터가 풀 가동되어 정보화를 지원해 갔다.
전쟁 용어였던 '전략전술'이라는 말이 비즈니스 세계에 정착한 것도 이 시점이다. 경쟁자를 이기기 위한 전략입안과 팔리는 구조를 만드는 마케팅이 경영모델의 핵심이 되었다. 경영개혁의 주역이 된 컨설팅펌은 비용 고객 경쟁자 등의 숫자를 철저히 분석하여 대기업의 전략수립에 깊숙이 관여했다. 테일러는 '과학적 관리법'을 공장의 업무개선에 적용했지만, 컨설턴트들은 업무의 모든 측면에 대해 경영분석을 실시하고 자사를 경쟁우위로 이끄는 전략을 책정해 나갔다. 이 흐름은 나중에 ‘네오 테일러주의’라고도 불렸다.
1991년 동서냉전이 종식이 되자 세계는 자본주의로 하나가 되었다. 매니지먼트의 네오 테일러주의도 경쟁전략, 선택과 집중, 시가총액 경영으로 진화해 나갔다. 컴퓨터의 고성능화는 가속화되고, 그에 비례하여 비즈니스의 효율화나 복잡화도 동시에 진행이 되었다. 미래를 예측하고, 경영자원을 최적으로 배분하고, 경쟁우위를 얻고, 경제적인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서였다. 비즈니스는 전쟁이고, 비즈니스 스쿨은 싸움을 이기기 위한 방법을 가르치는 곳이라는 인식이 사람들의 머릿속에 파고들기 시작했다. 전략적 사고가 사회 전체에 침투하여 물질적인 풍요는 늘어갔지만, 반대로 정신적인 풍요는 줄어드는 현상이 보편화 되어 갔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사건 하나를 남기고 가야 할듯 하다. 세상을 놀라게 만든 혁명적 기술과 관련된 이야기다. 오일쇼크가 경제를 때린 1973년, 세상에 큰 변혁을 일으키게 되는 단초를 제공한 혁명적 테크놀로지가 어느 연구실에서 싹트고 있었다. 이후 '인터넷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빈턴 서프와 로버트 칸이 TCP/IP 프로토콜(전세계를 그물망 네트워크로 연결하기 위한 절차)을 발명한 것이다. 미국의 어느 연구실에서의 작은 기획이 지구 규모로 사회를 바꾸는 한 걸음이 되는 것을 그 당시에는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To be continued...
글쓴이: 신경수 조직심리박사 (지속성장연구소장 / 인간개발연구원 부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