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GI 칼럼

[이코노미스트 4] 일방통행의 리더와 무뇌조직

관리자
2023-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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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이코노미스트」의 칼럼니스트로 위촉이 되었습니다. 40년 역사를 가진 매우 유서 깊은 주간지입니다. 개인적으로 큰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맡게 된 코너는 ‘조직문화’입니다. 조직심리, 조직문화와 관련한 내용들로 코너를 운영할 예정입니다. 이번 글은 최근에 제가 현장에서 겪은 작은 에피소드를 소재로 일방통행의 리더가 만든 참사를 다루어 보았습니다. 제목은 “일방통행의 리더와 무뇌조직”입니다.



얼마 전, 고객사 실무자인 A로부터 개인적 고민이 담긴 메일을 하나 받았다. 메일의 요지는 이랬다. HR실무자인 A는 200명이 넘는 중견기업에 온 지가 5년에 가까운데 아직도 적응되지 않는 것이 오너 경영자의 회의시간이라는 것이다. A가 몸담고 있는 회사의 오너 경영자는 중요한 모든 회의를 본인이 직접 주재한다고 한다. 거의 모든 회의의 시작과 끝이 오너 경영자의 일방통행식 지시로 진행이 되다 보니 직원들이 점점 생각을 하지 않게 된다는 일종의 푸념을 필자에게 메일로 보내온 것이다.

사실 위와 같은 사례는 드믄 케이스가 아니다. 우리나라 중소·중견기업에서 흔하게 나타나는 회의풍경의 한 단면이다. 실무자 위주로 회의를 해서 창의적인 방안을 도출하면 가장 좋겠지만, 팀장 단위의 작은 회의에서조차 오너 경영자가 참여하는 경우는 자주 목독이 된다. 그리고 하나같이 결론은 비슷하다. 오너 경영자의 지시로 일방통행식 회의가 진행이 된다는 것이다. 오너 경영자 입장에서 본다면 자신이 회사를 일궈냈고, 회사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서는 A에서 Z까지 다 알고 있으니 회사와 관련한 일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오너 경영자의 완벽한 착각에 불과하다.

회사설립 초기에는 몇 명 안 되는 직원으로 성장해야 하다 보니 오너 경영자는 사원에서부터 사장에 이르기까지 모든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하지만 조직이 어느정도 규모가 갖춰지고복잡해지게 되면 오너는 회사의 중용한 방향과 비전을 제시하는 쪽에 무게중심을 둬야 한다. 나머지는 직원들의 힘으로 돌아가게 끔 해야 한다. 구성원들의 창의적인 생각과 아이디어로조직이 움직이는 기업문화를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편지를 읽으며 아주 오래 전에 어느 IT기업의 중간관리자 워크숍에서 있었던 사건 하나가 생각이 났다. 경영진 워크숍을 통해서 도출된 사업부별 KPI(핵심성과지표: Key Performance Indicator)에 대하여 구체적인 실행전략을 논의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자리였다. 사업부별로 3~4명의 팀장들이 그룹을 이루어 해당 사업부의 본부장과 함께 팀별 상황에 맞추어 당해년도 목표달성을 위한 구체적인 액션플랜을 도출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중요한 자리이기도 했다.

보통 이러한 종류의 중간관리자 연수의 경우 대표이사가 참석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가 않다. 대개는 경영진 워크숍이나 또는 사업 본부장들을 대상으로 하는 고급관리자 워크숍에 참석하여 조직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 주는 선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나타내는 것이 의례적인 일이다. 그런데 이 조직의 경우는 지난 번 고급관리자 워크숍 때도 그렇고 이번의 중간관리자 워크숍 때도 그렇고 대표이사가 빠지지 않고 참석을 하는 의욕(?)을 보였다.

최고경영자의 열정적인 의욕에 깊은 감탄사를 보내긴 하였지만 한 가지 걱정되는 부분이 있었다. 지난 번 고급관리자 워크숍 때의 상황이 설마 다시 연출될까 하는 걱정이 들었던 것이다. 그날 도출한 KPI의 거의 대부분이 사장의 머리 속에서 나온 것들이었을 뿐만 아니라 사업부별 실행전략 또한 거의 대부분이 그 분이 낸 의견으로 채워졌기 때문이다. 힘든 하루를 보내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다음 중간관리자 워크숍 때는 반드시 현장의 의견을 반영한 실행전략을 도출하리라 마음먹으며 집으로 돌아왔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이런 나의 걱정은 현실이 되어 돌아왔다.

중간관리자들 또한 그들의 본부장들이 그랬듯이 모두가 입을 닫은 채 사장의 눈치만 보고 있는 것이었다. 24명 48개의 눈들이 전부 세미나실 입구에 앉아 있는 사장만을 향해 있는 것이다. 너무나도 놀라운 장면이었다. 이 조직을 처음 접했을 때는 카리스마 넘치는 대표이사의 리더십과 일사분란한 조직력이 너무나 멋져 보였는데 지금에 와서 보니 그분의 지나친 개입이 오히려 직원들의 생각을 멈추게 만든 원인으로 작용한 듯했다. 일사분란한 움직임이 아니라 단일대오를 갖추고 생각없이 움직이는 로봇조직이었는데,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오전의 워크숍은 최악의 시나리오로 전개가 되고 말았다. 자리를 옮겨 다니며 팀별 실행전략을 직접 지시해 주시는 대표이사의 지나친 친절(?) 덕분에 모든 팀장들은 너무나 편안하고 부드럽게 액션플랜을 만들어 냈다. 이런 종류의 워크숍은 뭔가 폼 나는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닌데… 이렇게 하다가는 페이퍼 작업을 위한 의미 없는 워크숍으로 끝날 것 같은 불안감이 밀려왔다. 나는 더 이상 내버려두었다가는 안되겠다는 생각에 개입하기로 마음을 먹고 조용히 사장에게 다가가 이렇게 말했다.

“사장님! 지금 이 회사의 모든 것은 사장님이 처음부터 만든 것이니 무엇이 성공의 포인트이고 무엇이 실패의 씨앗인지 너무나 잘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런 이유 때문에 간부들도 사장님의 지시나 명령만 기다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방법에 있어서는 직원들의 아이디어가 현실에서 운용되게 끔 일부러 상황을 만들어 주시는 것이 필요합니다. 뻔히 아는 내용이라고 모든 걸 사장님이 지시하고 알려주기만 한다면 이 회사는 결국 ‘무뇌조직’이 되고 말 것입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생각하지 않는 무뇌조직이 될 것이다”는 용어에 충격을 받았는지, 아니면 나의 다소 건방진 돌출발언에 충격을 받은 것인지, 어느 쪽인지는 몰라도 갑자기 “결과가 형편없어도 좋으니 가급적 현장의 의견이 반영된 실행전략이 나올 수 있도록 최대한 많은 말을 하게 끔 노력해달라”는 말을 남기고 사장은 자리를 떠났다.

사장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 죄값으로 다음 계약이 중단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들긴 했지만 지금의 상황에 최대한 집중하기로 마음을 먹고 다음 단계로 들어갔다. 사람들은 스스로의 생각에 의해서 전략을 수립한다는 개념에 익숙해 있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약간의 활발한 의견이 오고 갔음에도 불구하고 팀별 실행전략은 나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다. 세련되지 못한 KPI가 눈에 많이 보였지만 내용을 다듬었고, 사장과 보고를 겸한 면담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그 분이 손에 들고 온 보고서를 옆으로 슬며시 밀치더니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시는 것이었다. “무뇌조직이라는 말에 둔기로 머리를 맞은 느낌이었습니다. 최근의 실적저하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조금은 알겠습니다. 괜히 성실한 우리 직원들 탓만 한 것 같네요. 무엇보다도 스스로의 힘으로 생각하고 움직이는, 살아있는 조직으로 만들어 주셨으면 합니다.” 라고 부탁을 하는 것이었다. 용기를 내어 어렵게 꺼낸 말이었는데, 기대이상의 효과가 되어 돌아온 듯한 느낌에 기분이 좋았다. 그 사건이 있은 이후로 그 회사의 분위기는 많이 바뀌었다. 물론 실적도 조금씩 호전되어 갔다.

미래학자 니콜라스 카(Nicholas Carr)는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책을 통해 “인터넷이라는 괴물 때문에 사람들은 점점 생각하지 않는 동물이 되어가고 있다.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게서 창의적 사고는 나오지 않는다. 인류의 미래가 암울하다"는 말로, '무뇌인간’이 되어가고 있는 인류에 큰 경종을 울리는 메시지를 세상에 내놓은 적이 있다.

니콜라스가 경고한 무뇌인간의 주범 인터넷처럼 나는 카리스마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일방통행의 리더들이 가끔은 조직을 생각하지 않는 무뇌조직으로 만드는 주범이라고 말하고 싶다. 현명한 리더는 직원들 스스로가 생각하고 실행하게 끔 한발 뒤로 물러나 조직을 운영한다. 반면에 일방통행의 리더는 모든 것을 본인 스스로 해야 직성이 풀린다. 하지만 결과는 생각하지 않고 움직이는 무뇌조직 만을 탄생시킬 뿐이다.


글쓴이: 신경수 조직심리박사 (지속성장연구소장 / 인간개발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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