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가 원하는 방향으로 구성원의 행동을 이끌어내는 심리적 기법을 「선택설계」라고 합니다. 선택설계는 조직문화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중의 하나입니다. SGI는 건설적 조직문화 구축을 위해 다양한 선택설계 프로젝트를 진행해왔고, 본 코너는 그 과정에서 얻은 경험과 통찰을 소개하는 자리입니다.
과제명: “면담의 회피-> 기다림으로의 전환”

1. 상황설명
연말이 다가오면 조직은 인사평가와 면담으로 긴장감이 높아진다. 리더의 일정표는 면담 예약으로 가득하고, 목표 달성률과 등급 산정이 일상을 지배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예민한 순간은 성과면담이다. 리더는 1년의 결과를 통보해야 하고, 팀원은 평가를 받아들여야 한다. 겉으로는 차분하지만 그 안에는 긴장과 불안이 공존한다.
이온테크(가칭) 역시 매년 같은 문제를 반복했다. 면담은 절차대로 진행됐지만 구성원들은 이를 ‘형식적 통과의례’로 인식했다. “결과가 이미 정해진 자리”, “면담 후 오히려 의욕이 떨어진다”는 반응이 이어졌고, 리더들도 “연말이라 조심스럽다”며 소극적이었다.
우리는 문제가 보상체계가 아니라 대화의 구조, 즉 피드백 방식에 있음을 깨달았다. 리더는 평가표를 낭독하고, 팀원은 듣기만 하는 일방적 구조였다. 면담은 더 이상 성장의 대화가 아닌 절차적 통보로 전락해 있었다. 나는 이를 ‘피드백 역량 부족’이 아닌 ‘면담 설계의 문제’로 규정했다. 질문의 순서, 언어, 감정의 흐름... 모든 것들의 새로운 디자인이 필요했다.
이온테크의 성과면담을 평가 절차가 아닌 관계 재설계의 장으로 바꾸는 선택설계 프로젝트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2. 선택설계의 연구와 적용
이온테크의 면담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우리는 면담의 목적과 실제 운영 사이의 괴리를 먼저 파악했다. 전사 설문으로 면담의 만족도와 심리적 안전감을 측정하고, 312건의 면담 기록을 분석해 발화 비율·질문 유형·대화 순서를 코딩했다. 피드백 로그를 텍스트 마이닝해 칭찬·지적의 비율과 정서 흐름을 파악하고, 퇴직·전보 이전의 면담 여부까지 비교하며 면담이 갖는 선행 신호를 확인했다.
분석 결과는 명확했다. 면담의 70% 이상이 성과 숫자를 낭독하는 데 사용되었고, 성장·감정·학습을 묻는 질문은 한두 문장에 그쳤다. 즉흥적 질문으로 구성원은 방어적으로 변했고, 실행 항목이 남지 않아 학습이 축적되지 않았다. 이는 리더의 역량 부족이 아니라 ‘면담 구조 자체의 설계 문제’였다.
이에 따라 우리는 세 가지 원칙을 세웠다.
첫째, 초점을 달성률에서 ‘올해 확장한 역량’과 ‘배운 점’으로 전환해 대화의 첫 질문을 성장 중심으로 고정했다.
둘째, 사전 회고 시트를 옵트아웃 방식으로 전환해 제출 없이는 면담이 진행되지 않도록 기본값을 재설정했다.
셋째, 연말 일회성 면담 대신 월 10분 마이크로 코칭과 분기 리캡을 도입해 대화를 루틴화했다.
모든 도구는 단순화했다. 구성원은 1장의 회고 시트로 자기평가와 향후 90일 목표를 기재했고, 리더는 ‘관찰–해석–질문–합의–후속’ 형식으로 면담 기록을 남겼다. 면담 후 24시간 내 자동 요청되는 ‘공감 피드백 한 문장’은 대화의 여운을 남겼고, 대시보드는 면담 진행률과 이행률을 실시간으로 관리했다.
리더 교육은 코칭형 질문 흐름을 중심으로 발화 비율 45% 이하, 숫자 뒤 감정 질문, 한 문장 합의라는 세 가지 규칙을 내재화하는 데 집중했다. 어려운 메시지는 ‘사실–영향–지원–선택’ 구조로 전달해 방어감을 낮췄다. 이 같은 변화는 면담을 단순한 절차가 아니라 신뢰를 기반으로 한 성장 대화로 전환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3. 적용과정에서 마주한 문제점
시범 운영 초기에는 예상보다 강한 저항과 실행 불일치가 동시에 나타났다. 리더들은 변화의 필요성에는 공감했지만, 실제로는 시간 부담·감정 대화의 불편·평가체계 충돌이라는 세 가지 벽에 부딪혔다.
첫째, 시간의 문제였다.
기존 15분 내외로 끝나던 면담이 사전 회고와 기록을 포함해 30~40분으로 늘어나자 일정 과부하로 인식되었다. 회의나 보고 일정과 겹치며 지연이 잦았고, 사전 시트를 형식적으로 채우거나 미제출하는 사례도 발생했다. 초기 정시 수행률은 27%에 불과했다.
둘째, 감정 대화의 불편함이었다.
숫자 중심 평가에 익숙한 리더들은 “성과면담에서 감정을 다루면 흐려진다”며 거부감을 보였다. 일부는 감정 질문을 비전문적이라 여겼고, 팀원들 또한 “이게 피드백인가요?”라며 방어적으로 반응했다. 이로 인해 면담의 온도는 오히려 낮아졌다.
셋째, 평가시스템과의 충돌이었다.
평정 점수 제출 시점이 면담 시즌과 겹쳐 리더들은 이미 정해진 점수를 기준으로 대화를 이끌었고, 구성원들은 면담의 진정성을 의심했다. 일부 팀은 기존 평가표를 그대로 첨부하며 편법을 사용하기도 했다.
여기에 원격 근무 환경도 변수였다.
비대면 면담에서는 표정과 분위기를 읽기 어려워 집중도가 떨어졌고, ‘산만 지수’가 대면보다 1.4배 높게 나타났다. 신규 리더의 역량 차이와 HR의 모니터링 한계까지 겹치면서, 조직은 이번 변화가 단순한 제도 도입이 아닌 습관과 문화의 전환 과제임을 실감하게 되었다.
4. 과제해결을 위한 노력
문제 해결은 제도 보완, 역량 강화, 환경 설계의 세 축으로 추진됐다.
먼저 제도적 측면에서는 면담을 ‘추가 업무’가 아닌 조직 운영의 핵심 루틴으로 자리 잡게 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회사 캘린더에 면담 슬롯을 사전 고정 배정하고, 면담을 완료해야 다음 달 목표 관리 시스템이 열리도록 구조를 바꿨다. 이를 통해 면담이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또한 평가시스템과 연계해, 면담 결과를 제출해야만 성과평가 입력이 가능하도록 프로세스를 수정했다. 리더가 면담을 미루거나 생략하는 일이 사실상 불가능해진 것이다.
역량 강화는 리더의 대화 방식 전환에 초점을 두었다.
전 관리자 대상 코칭대화 실습 2회를 의무화하고, 실제 우수 면담 장면을 촬영해 사내 러닝 플랫폼에 공유했다. 리더들이 복잡한 절차 대신 직관적으로 적용할 수 있도록 “숫자 다음엔 감정 질문”, “한 문장 합의” 같은 간결한 규칙을 카드형 가이드북으로 배포했다. 특히 감정 대화에 익숙하지 않은 리더를 위해 HR이 직접 코칭동행(Shadow Coaching)을 수행해 면담 직후 피드백을 제공했다. 이를 통해 ‘감정을 다루는 대화’가 불편한 영역이 아닌, 성장을 돕는 기술로 재인식되었다.
환경 설계에서는 비대면 면담의 품질을 높이기 위한 기술적 지원이 핵심이었다.
화상면담 전용 인터페이스를 구축해 질문 순서가 자동으로 표시되고, 구성원의 응답이 실시간 텍스트로 기록되도록 했다. 카메라 위치, 조명, 시선 처리 가이드를 담은 ‘비대면 면담 체크리스트’를 제작해 리더가 사전에 품질을 점검하도록 했다. 또한 면담 진행률, 사전 시트 제출률, 피드백 로그를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대시보드를 운영하여 미이행 리더에게 자동 알림을 발송했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면담의 기본 인식이 달라졌다. 리더들은 면담을 더 이상 평가 절차의 일부로 보지 않고, 팀원과의 신뢰를 구축하는 관계 관리의 루틴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구성원들 또한 면담을 점수 통보의 자리가 아닌, 스스로 목표를 설계하고 성장 방향을 논의하는 대화의 주체적 공간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마침내 면담의 본질이 ‘결과 보고’에서 ‘관계 구축’으로, 그리고 ‘절차 수행’에서 ‘성장 설계’로 옮겨가게 되었다.
5. 노력의 결과
도입 3개월 만에 면담의 흐름과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졌다.
리더 중심이던 대화는 팀원 발화 비율이 70:30에서 46:54로 바뀌며 상호 대화 구조로 전환되었다. 사전 회고 시트 제출률도 22%에서 91%로 오르며 구성원이 면담을 ‘준비하는 시간’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실행 항목과 30일 이행률도 눈에 띄게 증가해, 대화가 실제 행동으로 이어지는 경험이 확산됐다.
정서적 변화도 긍정적이었다.
“리더가 나를 이해한다”는 응답은 37%에서 75%로 높아졌고, 면담 후 동기 상승을 체감한 비율도 크게 늘었다. 칭찬·지적 비율은 긍정 중심으로 재편되며 신뢰가 강화되었고, 면담 후 60일 내 이직 의향이 절반 가까이 감소했다. 학습형 OKR 달성률과 단기 목표 명확성도 함께 개선되어 업무의 방향성과 효율이 높아졌다.
면담 구조가 월 단위 루틴으로 분산되자 연말의 피로도는 줄고, 면담 시간과 리더의 준비 부담도 전반적으로 경감되었다. 이렇게 변화한 대화 습관은 ‘공감 피드백 한 문장’과 같은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내며, 조직의 일상적 문화로 빠르게 자리 잡았다.
6. 사례가 주는 시사점
이 사례는 성과관리의 핵심이 지표가 아니라 ‘대화의 구조’임을 보여준다. 질문의 순서, 언어의 방향성, 대화가 흘러가는 방식이 곧 조직문화의 신뢰 수준을 반영하며, 그 구조를 조정하는 것만으로 구성원의 경험이 달라졌다. 이온테크의 변화는 제도 개편이 아니라 ‘면담 설계’를 바꾼 것이었다.
작은 선택설계만으로도 행동 변화가 촉발된 점도 중요하다. 첫 질문을 바꾸고, 사전 회고를 기본값으로 설정하고, 리더의 언어지침을 단순화하자 대화의 질과 태도가 빠르게 달라졌다. 심리적 안전감이 높아지자 학습과 탐색이 자연스럽게 일어났고, 구성원은 면담을 평가가 아니라 성장 대화로 받아들였다.
또한 같은 제도라도 리더의 표현 방식에 따라 경험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점을 확인함으로써, 제도 설계와 리더 교육을 함께 진행해야 문화가 정착된다는 교훈을 남겼다.
7. 그때를 회상하며
프로젝트 종료 후 HR담당 임원은 “리더들이 말을 바꾼 게 아니라 태도를 바꿨다”고 말했다. 처음엔 “시간이 없다”던 리더들이 면담을 먼저 요청하고, 요약문을 자발적으로 공유했다. 한 중간관리자는 “이젠 무슨 말을 할지가 아니라, 어떤 질문을 던질지를 고민한다”고 했고, 또 다른 팀장은 “팀원이 면담 후 스스로 목표를 제안했다”며 변화를 체감했다.
면담 시즌의 긴장된 분위기는 사라지고, “이번 면담은 즐거웠다”는 피드백이 이어졌다. 나 역시 이 경험을 통해 대화 하나가 조직을 바꾼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돌아보면 변화는 거창하지 않았다. 문항의 수정, 순서의 재배치, 질문의 시선 이동, 그리고 리더의 한 문장.
그러나 그 작은 설계들이 조직의 언어를 바꾸고, 그 언어가 문화를 바꾸었다. 나는 확신했다. 선택설계는 제도가 아니라 인간 설계이며, 리더의 한 문장과 구성원의 한 대답 사이에 조직의 미래가 있다고...
- 작성자: 신경수 박사(조직심리학)

회사가 원하는 방향으로 구성원의 행동을 이끌어내는 심리적 기법을 「선택설계」라고 합니다. 선택설계는 조직문화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중의 하나입니다. SGI는 건설적 조직문화 구축을 위해 다양한 선택설계 프로젝트를 진행해왔고, 본 코너는 그 과정에서 얻은 경험과 통찰을 소개하는 자리입니다.
과제명: “면담의 회피-> 기다림으로의 전환”
1. 상황설명
연말이 다가오면 조직은 인사평가와 면담으로 긴장감이 높아진다. 리더의 일정표는 면담 예약으로 가득하고, 목표 달성률과 등급 산정이 일상을 지배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예민한 순간은 성과면담이다. 리더는 1년의 결과를 통보해야 하고, 팀원은 평가를 받아들여야 한다. 겉으로는 차분하지만 그 안에는 긴장과 불안이 공존한다.
이온테크(가칭) 역시 매년 같은 문제를 반복했다. 면담은 절차대로 진행됐지만 구성원들은 이를 ‘형식적 통과의례’로 인식했다. “결과가 이미 정해진 자리”, “면담 후 오히려 의욕이 떨어진다”는 반응이 이어졌고, 리더들도 “연말이라 조심스럽다”며 소극적이었다.
우리는 문제가 보상체계가 아니라 대화의 구조, 즉 피드백 방식에 있음을 깨달았다. 리더는 평가표를 낭독하고, 팀원은 듣기만 하는 일방적 구조였다. 면담은 더 이상 성장의 대화가 아닌 절차적 통보로 전락해 있었다. 나는 이를 ‘피드백 역량 부족’이 아닌 ‘면담 설계의 문제’로 규정했다. 질문의 순서, 언어, 감정의 흐름... 모든 것들의 새로운 디자인이 필요했다.
이온테크의 성과면담을 평가 절차가 아닌 관계 재설계의 장으로 바꾸는 선택설계 프로젝트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2. 선택설계의 연구와 적용
이온테크의 면담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우리는 면담의 목적과 실제 운영 사이의 괴리를 먼저 파악했다. 전사 설문으로 면담의 만족도와 심리적 안전감을 측정하고, 312건의 면담 기록을 분석해 발화 비율·질문 유형·대화 순서를 코딩했다. 피드백 로그를 텍스트 마이닝해 칭찬·지적의 비율과 정서 흐름을 파악하고, 퇴직·전보 이전의 면담 여부까지 비교하며 면담이 갖는 선행 신호를 확인했다.
분석 결과는 명확했다. 면담의 70% 이상이 성과 숫자를 낭독하는 데 사용되었고, 성장·감정·학습을 묻는 질문은 한두 문장에 그쳤다. 즉흥적 질문으로 구성원은 방어적으로 변했고, 실행 항목이 남지 않아 학습이 축적되지 않았다. 이는 리더의 역량 부족이 아니라 ‘면담 구조 자체의 설계 문제’였다.
이에 따라 우리는 세 가지 원칙을 세웠다.
첫째, 초점을 달성률에서 ‘올해 확장한 역량’과 ‘배운 점’으로 전환해 대화의 첫 질문을 성장 중심으로 고정했다.
둘째, 사전 회고 시트를 옵트아웃 방식으로 전환해 제출 없이는 면담이 진행되지 않도록 기본값을 재설정했다.
셋째, 연말 일회성 면담 대신 월 10분 마이크로 코칭과 분기 리캡을 도입해 대화를 루틴화했다.
모든 도구는 단순화했다. 구성원은 1장의 회고 시트로 자기평가와 향후 90일 목표를 기재했고, 리더는 ‘관찰–해석–질문–합의–후속’ 형식으로 면담 기록을 남겼다. 면담 후 24시간 내 자동 요청되는 ‘공감 피드백 한 문장’은 대화의 여운을 남겼고, 대시보드는 면담 진행률과 이행률을 실시간으로 관리했다.
리더 교육은 코칭형 질문 흐름을 중심으로 발화 비율 45% 이하, 숫자 뒤 감정 질문, 한 문장 합의라는 세 가지 규칙을 내재화하는 데 집중했다. 어려운 메시지는 ‘사실–영향–지원–선택’ 구조로 전달해 방어감을 낮췄다. 이 같은 변화는 면담을 단순한 절차가 아니라 신뢰를 기반으로 한 성장 대화로 전환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3. 적용과정에서 마주한 문제점
시범 운영 초기에는 예상보다 강한 저항과 실행 불일치가 동시에 나타났다. 리더들은 변화의 필요성에는 공감했지만, 실제로는 시간 부담·감정 대화의 불편·평가체계 충돌이라는 세 가지 벽에 부딪혔다.
첫째, 시간의 문제였다.
기존 15분 내외로 끝나던 면담이 사전 회고와 기록을 포함해 30~40분으로 늘어나자 일정 과부하로 인식되었다. 회의나 보고 일정과 겹치며 지연이 잦았고, 사전 시트를 형식적으로 채우거나 미제출하는 사례도 발생했다. 초기 정시 수행률은 27%에 불과했다.
둘째, 감정 대화의 불편함이었다.
숫자 중심 평가에 익숙한 리더들은 “성과면담에서 감정을 다루면 흐려진다”며 거부감을 보였다. 일부는 감정 질문을 비전문적이라 여겼고, 팀원들 또한 “이게 피드백인가요?”라며 방어적으로 반응했다. 이로 인해 면담의 온도는 오히려 낮아졌다.
셋째, 평가시스템과의 충돌이었다.
평정 점수 제출 시점이 면담 시즌과 겹쳐 리더들은 이미 정해진 점수를 기준으로 대화를 이끌었고, 구성원들은 면담의 진정성을 의심했다. 일부 팀은 기존 평가표를 그대로 첨부하며 편법을 사용하기도 했다.
여기에 원격 근무 환경도 변수였다.
비대면 면담에서는 표정과 분위기를 읽기 어려워 집중도가 떨어졌고, ‘산만 지수’가 대면보다 1.4배 높게 나타났다. 신규 리더의 역량 차이와 HR의 모니터링 한계까지 겹치면서, 조직은 이번 변화가 단순한 제도 도입이 아닌 습관과 문화의 전환 과제임을 실감하게 되었다.
4. 과제해결을 위한 노력
문제 해결은 제도 보완, 역량 강화, 환경 설계의 세 축으로 추진됐다.
먼저 제도적 측면에서는 면담을 ‘추가 업무’가 아닌 조직 운영의 핵심 루틴으로 자리 잡게 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회사 캘린더에 면담 슬롯을 사전 고정 배정하고, 면담을 완료해야 다음 달 목표 관리 시스템이 열리도록 구조를 바꿨다. 이를 통해 면담이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또한 평가시스템과 연계해, 면담 결과를 제출해야만 성과평가 입력이 가능하도록 프로세스를 수정했다. 리더가 면담을 미루거나 생략하는 일이 사실상 불가능해진 것이다.
역량 강화는 리더의 대화 방식 전환에 초점을 두었다.
전 관리자 대상 코칭대화 실습 2회를 의무화하고, 실제 우수 면담 장면을 촬영해 사내 러닝 플랫폼에 공유했다. 리더들이 복잡한 절차 대신 직관적으로 적용할 수 있도록 “숫자 다음엔 감정 질문”, “한 문장 합의” 같은 간결한 규칙을 카드형 가이드북으로 배포했다. 특히 감정 대화에 익숙하지 않은 리더를 위해 HR이 직접 코칭동행(Shadow Coaching)을 수행해 면담 직후 피드백을 제공했다. 이를 통해 ‘감정을 다루는 대화’가 불편한 영역이 아닌, 성장을 돕는 기술로 재인식되었다.
환경 설계에서는 비대면 면담의 품질을 높이기 위한 기술적 지원이 핵심이었다.
화상면담 전용 인터페이스를 구축해 질문 순서가 자동으로 표시되고, 구성원의 응답이 실시간 텍스트로 기록되도록 했다. 카메라 위치, 조명, 시선 처리 가이드를 담은 ‘비대면 면담 체크리스트’를 제작해 리더가 사전에 품질을 점검하도록 했다. 또한 면담 진행률, 사전 시트 제출률, 피드백 로그를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대시보드를 운영하여 미이행 리더에게 자동 알림을 발송했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면담의 기본 인식이 달라졌다. 리더들은 면담을 더 이상 평가 절차의 일부로 보지 않고, 팀원과의 신뢰를 구축하는 관계 관리의 루틴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구성원들 또한 면담을 점수 통보의 자리가 아닌, 스스로 목표를 설계하고 성장 방향을 논의하는 대화의 주체적 공간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마침내 면담의 본질이 ‘결과 보고’에서 ‘관계 구축’으로, 그리고 ‘절차 수행’에서 ‘성장 설계’로 옮겨가게 되었다.
5. 노력의 결과
도입 3개월 만에 면담의 흐름과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졌다.
리더 중심이던 대화는 팀원 발화 비율이 70:30에서 46:54로 바뀌며 상호 대화 구조로 전환되었다. 사전 회고 시트 제출률도 22%에서 91%로 오르며 구성원이 면담을 ‘준비하는 시간’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실행 항목과 30일 이행률도 눈에 띄게 증가해, 대화가 실제 행동으로 이어지는 경험이 확산됐다.
정서적 변화도 긍정적이었다.
“리더가 나를 이해한다”는 응답은 37%에서 75%로 높아졌고, 면담 후 동기 상승을 체감한 비율도 크게 늘었다. 칭찬·지적 비율은 긍정 중심으로 재편되며 신뢰가 강화되었고, 면담 후 60일 내 이직 의향이 절반 가까이 감소했다. 학습형 OKR 달성률과 단기 목표 명확성도 함께 개선되어 업무의 방향성과 효율이 높아졌다.
면담 구조가 월 단위 루틴으로 분산되자 연말의 피로도는 줄고, 면담 시간과 리더의 준비 부담도 전반적으로 경감되었다. 이렇게 변화한 대화 습관은 ‘공감 피드백 한 문장’과 같은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내며, 조직의 일상적 문화로 빠르게 자리 잡았다.
6. 사례가 주는 시사점
이 사례는 성과관리의 핵심이 지표가 아니라 ‘대화의 구조’임을 보여준다. 질문의 순서, 언어의 방향성, 대화가 흘러가는 방식이 곧 조직문화의 신뢰 수준을 반영하며, 그 구조를 조정하는 것만으로 구성원의 경험이 달라졌다. 이온테크의 변화는 제도 개편이 아니라 ‘면담 설계’를 바꾼 것이었다.
작은 선택설계만으로도 행동 변화가 촉발된 점도 중요하다. 첫 질문을 바꾸고, 사전 회고를 기본값으로 설정하고, 리더의 언어지침을 단순화하자 대화의 질과 태도가 빠르게 달라졌다. 심리적 안전감이 높아지자 학습과 탐색이 자연스럽게 일어났고, 구성원은 면담을 평가가 아니라 성장 대화로 받아들였다.
또한 같은 제도라도 리더의 표현 방식에 따라 경험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점을 확인함으로써, 제도 설계와 리더 교육을 함께 진행해야 문화가 정착된다는 교훈을 남겼다.
7. 그때를 회상하며
프로젝트 종료 후 HR담당 임원은 “리더들이 말을 바꾼 게 아니라 태도를 바꿨다”고 말했다. 처음엔 “시간이 없다”던 리더들이 면담을 먼저 요청하고, 요약문을 자발적으로 공유했다. 한 중간관리자는 “이젠 무슨 말을 할지가 아니라, 어떤 질문을 던질지를 고민한다”고 했고, 또 다른 팀장은 “팀원이 면담 후 스스로 목표를 제안했다”며 변화를 체감했다.
면담 시즌의 긴장된 분위기는 사라지고, “이번 면담은 즐거웠다”는 피드백이 이어졌다. 나 역시 이 경험을 통해 대화 하나가 조직을 바꾼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돌아보면 변화는 거창하지 않았다. 문항의 수정, 순서의 재배치, 질문의 시선 이동, 그리고 리더의 한 문장.
그러나 그 작은 설계들이 조직의 언어를 바꾸고, 그 언어가 문화를 바꾸었다. 나는 확신했다. 선택설계는 제도가 아니라 인간 설계이며, 리더의 한 문장과 구성원의 한 대답 사이에 조직의 미래가 있다고...
- 작성자: 신경수 박사(조직심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