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문화] 2월. 설 연휴가 지나면 가장 많이 나오는 말, “그만 두겠습니다!”

관리자
2026-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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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가 원하는 방향으로 구성원의 행동을 이끌어내는 심리적 기법을 「선택설계」라고 합니다. 선택설계는 조직문화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중의 하나입니다. SGI는 건설적 조직문화 구축을 위해 다양한 선택설계 프로젝트를 진행해왔고, 본 코너는 그 과정에서 얻은 경험과 통찰을 소개하는 자리입니다. 이번 달은 설 연휴라는 심리적 변곡점 이후에 어김없이 찾아오는 ‘커리어 이탈’을 막아낸 실제 사례를 소개합니다.


“이직과 이탈을 성장의 지도로 되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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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상황설명

해마다 설 연휴가 지나고 나면 사무실의 공기는 묘하게 달라진다. 겉으로는 명절 음식을 나눠 먹고 덕담을 주고받으며 평온해 보이지만, 인사팀의 데이터 대시보드에는 소리 없는 적색 경고등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한다. 경영진이나 관리자들은 연휴를 단순한 '휴식'으로 간주하지만, 심리학적으로 연휴는 일상과 단절된 채 자신의 삶을 제3자의 시선으로 객관화해 보는 강력한 '성찰의 시간'이자 '심리적 재설정(Psychological Reset)'의 구간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눈앞의 업무와 마감에 쫓겨 외면해왔던 개인의 실존적 고민이, 일상의 관성이 멈춘 연휴 기간에 수면 위로 급격히 부상한다. 가족과 친지들을 만나 "요즘 어떻게 지내느냐"는 질문에 답하는 과정은 단순히 안부를 묻는 것을 넘어, 자신의 직업적 가치와 위치를 스스로 재정의하게 만드는 고통스러운 고해성사가 된다. 특히 명절 모임에서 만난 잘나가는 동기들이나 친척들의 커리어 성공 사례를 접하며 구성원들은 피할 수 없는 상대적 박탈감과 함께 근원적인 질문에 직면한다.

“나는 지금 정말 잘 살고 있는가? 지금 이 자리에 머무는 것이 내 인생의 귀한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5년 뒤, 10년 뒤 이 조직 안의 내 모습은 과연 행복할까?” SGI가 자문을 맡았던 중견 제조기업 D사도 이러한 계절적 이탈 현상의 예외는 아니었다. 연휴가 끝나고 복귀한 첫 주, 각 부서의 핵심 인재 5명이 약속이라도 한 듯 차례로 면담을 요청하며 퇴사 의사를 밝혔다. 이들은 조직 내에서 평판이 매우 좋았을 뿐만 아니라, 차세대 리더로 손꼽히며 미래의 중추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기대받던 핵심 자원들이었다.

인사팀을 더욱 당혹스럽게 만든 것은 그들이 내놓은 퇴사 사유였다. 만약 과도한 업무량, 불합리한 급여 체계, 혹은 특정 상사와의 인간관계 갈등이 문제였다면 협상이나 보직 해임 같은 즉각적인 해결책이라도 찾아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마치 미리 조율이라도 한 듯 입을 모아 조직의 근간을 흔드는 본질적인 이유를 던졌다.

“여기서는 제가 더 성장할 미래가 보이지 않습니다. 지금의 저는 정체되어 있고, 제 커리어를 위해 더 넓은 환경과 새로운 가능성에서 도전하고 싶습니다.”

이들에게 연휴라는 심리적 휴지기는 단순히 쉬는 시간이 아니었다. 그것은 현상 유지라는 달콤하고 안락한 감옥을 깨고 나갈 ‘탈출의 명분’을 논리적으로 완성하는 촉매제였다. 연휴 동안 정립된 그들의 결심은 견고했고, 어떤 감정적 호소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경영진은 당혹감을 넘어 거대한 공포를 느꼈다. 과거의 관성대로 "연봉을 대폭 올려주겠다"거나 "원하는 직급으로 승진시켜 주겠다"는 식의 고전적인 회유책은 자신의 성장 가치와 직업적 효능감을 최우선으로 두는 MZ세대와 핵심 인재들에게 더 이상 매력적인 카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돈으로 살 수 없는 '성장의 확신'이 결여된 조직에서 인재들은 이미 마음의 짐을 싸고 있었다. 이제 조직은 인재를 붙잡기 위해 물질적 보상을 넘어서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접근법과 '선택설계'를 고민해야만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직면했다.


2. 선택설계의 연구와 적용

SGI는 표면적인 이탈 현상 아래에 숨겨진 문제의 본질을 파헤쳤다. 관찰 결과, 인재들이 떠나는 결정적인 이유는 회사의 비전이나 복지에 대한 불만이 아니었다. 지금의 직무에서 느끼는 정체와 답답함을 해결할 방법이 ‘외부로의 탈출(퇴사)’ 말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선택의 빈곤’이 진짜 원인이었다. 심리학적으로 인간은 선택지가 하나뿐이라고 느낄 때 극도의 압박감을 느끼며, 그 유일한 탈출구가 막다른 길이라 판단되면 모든 에너지를 밖으로 돌린다.

우리는 구성원들이 회사 안에서도 충분히 자신의 커리어 궤적을 바꿀 수 있고, 부서를 옮기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환경에서의 성장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을 시각화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를 위해 단순히 제도를 안내하는 수준을 넘어, 행동을 유도하고 심리적 장벽을 낮추는 ‘사내 커리어 지도(Career Roadmap)’ 프로젝트를 다각도로 설계했다.


① 사내 커리어 마켓(Internal Job Market)의 기본값(Default)화

기존의 D사는 전형적인 폐쇄형 채용 구조를 갖고 있었다. 부서에 빈자리가 생겨야만 리더들끼리 암암리에 인력을 충원하거나, 소리 소문 없이 외부 채용 공고를 냈다. 이는 내부 인재들에게는 정보의 비대칭성을 유발하여 ‘기회의 박탈’로 느껴지게 만들었다.

우리는 이 정보의 흐름을 완전히 뒤집었다. 모든 부서의 현재 진행 프로젝트와 향후 6개월 내에 필요한 직무 역량을 사내 포털에 실시간으로 상시 공개하도록 시스템을 개편했다. 특히 ‘내부 우선 선택(Internal First)’ 규칙을 강력한 기본값으로 설정했다. 어떤 포지션이든 새로운 공고가 올라오면 외부 헤드헌터나 채용 사이트에 노출되기 전, 최소 2주 동안은 오직 사내 구성원들만 지원하고 면접을 볼 수 있도록 '배타적 우선권'을 법적으로 보장했다. 이 설계의 핵심은 직원들이 이직 사이트를 뒤적이기 전, 매일 아침 접속하는 사내 게시판에서 자신의 다음 단계를 먼저 탐색하는 것을 '당연한 수순'이자 '가장 유리한 선택'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데 있었다.


② 진로 설계 면담 가이드 ‘My Next Step’ 도입

연휴 직후, 소위 '마음이 붕 뜬' 시기에 실시되는 1:1 면담의 성격과 언어를 완전히 재정의했다. 기존의 면담이 "왜 지난달 실적이 이 모양인가?"라며 과거의 과오를 꾸짖거나 독려하는 '과거 지향적' 대화였다면, 새로 도입된 가이드는 철저히 개인의 욕망과 미래를 연결하는 '미래 지향적' 대화에 집중했다.

리더들에게는 심리적으로 정교하게 설계된 질문지가 배부되었다. “올해 KPI 달성을 위해 무엇을 할 건가?”라는 압박 대신, “당신이 3년 뒤, 혹은 5년 뒤 이 회사 안에서 어떤 타이틀을 가진 전문가가 되고 싶나?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현재 우리 팀에서 어떤 구체적인 기술이나 경험을 습득해야 할까?”를 묻도록 설계했다.

이러한 질문의 전환은 구성원들이 회사를 '나의 노동력을 소모하고 점수 매기는 감시자'가 아니라, '나의 장기적인 커리어 목표를 지원하고 투자하는 파트너'로 인식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면담은 이제 '평가'의 시간이 아니라 '투자 상담'의 시간으로 변모했다.


③ ‘인재 이동 보증제’ – 심리적 안전장치의 구축을 통한 행동 유도

사내에 선택지가 풍부해져도 구성원이 선뜻 움직이지 못하는 가장 큰 심리적 기제는 ‘보복에 대한 두려움’과 ‘실패 시의 낙인’이다. 다른 부서에 지원했다가 탈락했을 때, 현재 팀장과의 관계가 어색해지거나 "배신자"로 찍혀 인사상 불이익을 받을까 봐 주저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현 팀장 승인 거부권 폐지’를 시스템의 하드웨어적 옵션으로 박아 넣었다. 입사 후 일정 기간(예: 2년) 이상 근무한 직원이라면, 현재 소속 팀장의 허락이나 사전 승인 없이도 자유롭게 타 부서 사내 공모에 지원할 수 있게 했다. 더 나아가 최종 합격 통보를 받기 전까지는 지원 사실 자체가 현재 부서에 절대 노출되지 않도록 '완전 비공개 전형'을 보장했다.

행동에 따르는 사회적 리스크를 개인이 아닌 시스템이 대신 짊어지게 함으로써, 구성원들이 타인의 눈치를 보지 않고 진정한 자아의지에 따라 자신의 커리어 항로를 탐색할 수 있도록 강력한 '심리적 안전판'을 깔아준 것이다.


④ 성장의 시각화와 '경로의 다양성' 제공

마지막으로, 우리는 사내의 모든 직무를 연결한 '직무 이동 맵(Role Mobility Map)'을 제작했다. 마케팅 전문가가 데이터 분석가로 전환하기 위해 필요한 교육 코스는 무엇인지, 생산 현장직이 품질 관리직으로 가기 위해 쌓아야 할 경험은 무엇인지를 인포그래픽으로 한눈에 볼 수 있게 했다.

이는 단순히 정보를 주는 것을 넘어, 구성원들에게 "우리는 당신이 이곳에서 수평적으로, 혹은 대각선으로 이동하며 성장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장려한다"는 강력한 문화적 신호를 보내는 것이었다. 이제 퇴사는 성장을 위한 유일한 문이 아니라, 여러 선택지 중 가장 비용이 많이 드는 '최후의 수단'으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3. 적용과정에서 마주한 문제점

새로운 설계안이 발표되자마자 조직은 예상보다 훨씬 거대하고 날카로운 저항에 직면했다. 혁신적인 제도가 현장에 안착하기 전 반드시 거쳐야 할 ‘거부 반응’이었지만, 그 양상은 파괴적이었다.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강력하게 반기를 든 집단은 중간 관리자인 부서장들이었다.

부서장들의 반발은 생존 본능에 가까웠다. 그들은 회의실에 모여 분노 섞인 목소리를 쏟아냈다.

“안 그래도 만성적인 인력 부족 때문에 팀원들이 번아웃 직전인데, 그나마 일 좀 한다 싶은 유능한 애를 다른 팀으로 떠나보내라고? 이건 우리 팀의 성과를 아예 포기하라는 소리나 다름없다. 인사팀이 현장을 너무 모르는 것 아닌가!”

팀장들은 팀원을 조직 전체의 성장을 위한 유동적 자산이 아닌, 자신의 팀 성과를 지탱하는 ‘내 개인의 소유물’ 혹은 ‘확보해야 할 고정 자원’으로 여기고 있었다. 이들에게 부하 직원의 직무 전환이나 부서 이동은 축하해줄 커리어 성장이 아니라, 당장 내일의 업무 부하를 높이고 내 고과를 갉아먹는 치명적인 ‘손실’로만 인식되었다.

심지어 일부 팀장들은 제도의 맹점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유능한 인재에게는 일부러 핵심 프로젝트의 정보를 차단하거나, 사내 공모 공고가 올라오는 시점에 맞춰 의도적으로 과도한 업무를 부여해 지원 자체를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드는 ‘인재 가두기(Hoarding)’ 현상이 나타났다. "우리 팀에서 나가면 다른 팀에서 적응하기 힘들 것"이라는 식의 가스라이팅성 발언을 서슴지 않는 리더들도 존재했다.

조직의 또 다른 축인 직원들 역시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선택의 문은 열렸지만, 그 문턱을 넘으려는 손길은 조심스러움을 넘어 의구심으로 가득 찼다.

“제도가 아무리 좋아지면 뭐 하나. 결국 다른 팀 지원했다가 떨어지기라도 하면 '떠나려 했던 배신자'라는 낙인만 찍히고, 현재 팀장과의 관계만 파탄 날 게 뻔하다. 회사가 퇴사율이 급증하니까 일단 붙잡아 두려고 던지는 일종의 꼼수 아닐까?”

사내 게시판과 익명 커뮤니티에는 제도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글들이 쏟아졌다. 직원들은 회사가 제공하는 ‘성장의 지도’를 믿기보다, 그 뒤에 숨겨진 통제의 의도를 먼저 읽으려 했다. 새로운 길을 탐색할 ‘선택권’은 부여받았으나, 그 길을 실제로 걸어갈 ‘용기’를 뒷받침할만한 문화적 지지대와 실질적인 인센티브는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결국, 제도의 논리적 완결성이 아무리 뛰어나도 리더들의 소유욕과 구성원들의 뿌리 깊은 불신이라는 ‘심리적 장벽’을 넘어서지 못하면 그 어떤 설계도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는 차가운 진실이 다시 한번 증명된 셈이었다. 우리는 이제 제도 설계를 넘어,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이 거대한 저항의 프레임을 깨뜨릴 강력한 '두 번째 넛지'가 필요함을 절감했다.


4. 과제해결을 위한 노력

SGI는 조직 내부의 강력한 저항을 확인한 뒤, 단순히 감성적인 설득이나 당위성을 강조하는 방식으로는 이 벽을 넘을 수 없다는 사실을 직시했다. 우리는 인간이 이익보다 손실에 훨씬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손실 회피(Loss Aversion)' 심리를 프로젝트의 핵심 지렛대로 삼았다. 리더들에게는 '인재를 뺏기는 고통'보다 '인재를 보내서 얻는 이익'이 압도적으로 크게 설계하고, 직원들에게는 '낙인에 대한 공포'를 상쇄할 만큼 강력한 '성공의 확신'을 심어주는 데 집중했다.


① ‘인재 배출 인센티브’ – 리더십의 정의와 이익 구조의 전면 재편

가장 먼저 착수한 작업은 리더들이 가진 '인재 소유욕'의 근간인 보상 체계를 완전히 뜯어고치는 것이었다. 팀원을 보내는 것이 팀장의 성과를 갉아먹는 '손실'이 아니라, 리더로서 최고의 역량을 증명하는 '보너스'가 되도록 프레임을 전환했다.

인재 육성 및 배출 점수(Mobility Credit) 도입: 유능한 팀원을 다른 부서의 핵심 인력으로 성장시켜 배출한 팀장에게 전사 인사평가에서 가장 높은 가점인 '최고 수준의 인재 육성 점수'를 부여했다. 이제 팀장은 팀원을 붙잡아두는 '관리자'가 아니라, 인재를 시장(사내)에 내놓는 '에이전트'로서 자신의 몸값을 높이게 되었다.

자원 보충의 우선권 보장: 인재를 떠나보낸 팀에는 '신규 인력 채용 및 배치 우선권'을 명문화했다. 팀원을 보내준 즉시 해당 공백을 채울 수 있는 우수 인재를 먼저 선점할 수 있게 하여, 인력 유출로 인한 업무 공백의 공포를 실질적으로 제거했다.

현금성 인센티브와 운영비 지원: 인재를 배출한 부서에는 '조직문화 개선 활동비'라는 명목의 특별 예산을 편성해 지급했다. 떠나는 직원을 축하하는 회식비나 남은 팀원들의 사기를 북돋우는 활동에 이 비용을 쓰게 함으로써, 인재 이동이 팀 전체의 축제이자 실질적인 혜택으로 이어지게 설계했다.

이러한 설계의 결과, 리더들 사이에서는 묘한 경쟁이 붙기 시작했다. 팀원을 숨기는 자가 아니라, 우리 팀 출신이 전사 곳곳에서 활약하게 만드는 '인재 사관학교의 장'이 되는 것이 진정으로 유능한 리더라는 인식이 뿌리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② 실제 사례의 스토리텔링 – ‘인간의 얼굴’을 한 제도의 확산

직원들의 깊은 불신을 깨뜨리기 위해 우리는 제도의 텍스트가 아닌 '사람의 이야기'를 전면에 내세웠다. 아무리 안전을 보장한다는 규정을 만들어도, 동료의 실제 성공담만큼 강력한 신뢰를 주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내에서 직무 전환에 성공한 '퍼스트 무버(First Mover)'들을 찾아 그들의 서사를 입체적으로 재구성했다.

마케팅 전문가에서 개발자로, 직무의 벽을 허문 시니어: 10년간 마케팅 데이터만 다루다 본인의 데이터 해석 능력을 개발 기술과 접목하고 싶어 했던 한 시니어의 사례를 발굴했다. 그가 사내 전환 교육 과정을 거쳐 1년 만에 개발팀의 핵심 아키텍트로 자리 잡는 과정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공유했다. 이는 '나이와 연차'가 성장의 걸림돌이 아님을 증명하는 강력한 신호가 되었다.

현장에서 전략의 심장부로, 공간의 벽을 넘은 주니어: 지방 생산 공장에서 설비 보전을 담당하던 주니어가 현장의 실무 지식을 무기로 본사 전략기획실의 '현장 혁신 TF'로 입성한 사례는 큰 파장을 일으켰다. 배경이나 네트워크가 없어도 '실력과 의지'만 있다면 조직 내 어디든 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들의 생생한 인터뷰와 좌충우돌 적응기를 사내 위키와 주간 뉴스레터에 시리즈로 연재했다. 그들이 부서 이동을 결정할 때 밤잠을 설쳤던 두려움, 첫 이동 후 겪었던 시행착오, 그리고 마침내 새로운 직무에서 느낀 희열을 꾸밈없이 공유했다.


③ '나도 갈 수 있다'는 심리적 안전감의 내재화

스토리텔링의 힘은 강력했다. 추상적인 규정 속에 잠들어 있던 제도는 동료의 구체적인 얼굴과 목소리를 입으며 살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회사를 나가지 않아도, 당신의 인생과 직무는 이곳에서 완전히 새로워질 수 있다”는 메시지는 더 이상 회사의 구호가 아닌, 직원들 스스로 주고받는 확신이 되었다.

우리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사내 커리어 박람회'를 개최하여 각 부서가 마치 채용 시장의 기업처럼 자신들의 프로젝트를 홍보하게 했다. 지원자가 팀장 몰래 정보를 탐색하는 것이 아니라, 대놓고 자신의 미래를 쇼핑하는 환경을 조성한 것이다. 이 과정은 직원들에게 '나도 저 길을 갈 수 있다'는 심리적 안전감을 주는 것을 넘어, 조직 전체에 '성장'을 주제로 한 건강한 긴장감과 에너지를 불어넣는 촉매가 되었다. 결국, 선택설계는 제도를 넘어 문화가 되어야 비로소 완성된다는 것을 우리는 현장에서 증명해냈다.


5. 노력의 결과

프로젝트 시행 1년 후, D사에는 지표 개선을 넘어 조직의 유전자가 재배열되는 수준의 변화가 일어났다. 냉소적이었던 구성원들조차 실질적인 데이터의 이동을 목격하며 선택설계의 위력을 체감하기 시작했다. 이는 단순히 인재를 붙잡아두는 방어적 성과를 넘어, 조직의 역동성을 극대화한 공격적 혁신의 결과였다.


① 숫자로 입증된 이탈의 제동: 핵심 인재의 '잔류 선언'

매년 명절 직후 인사팀을 긴장시켰던 퇴사 행렬이 눈에 띄게 줄었다. 분석 결과, 전년 동기 대비 전체 퇴사율은 35% 감소했다. 특히 고무적인 점은 조직의 중추인 시니어급 핵심 인력의 이탈률이 50% 가까이 급감했다는 사실이다. '더 배울 것이 없다'며 외부 제안에 흔들리던 이들이 사내 커리어 마켓에서 새로운 성장 시나리오를 발견하며 잔류를 선택한 것이다. 채용 및 교육 비용 절감 등 이번 프로젝트가 창출한 경제적 가치는 연간 수십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평가받았다.


② 인적 자원의 유연한 흐름: '고인 물'에서 '흐르는 강물'로

사내 커리어 마켓은 조직 내 가장 활발한 '인재 거래소'로 안착했다. 1년 동안 직무를 전환하거나 부서를 이동한 인원은 전년 대비 4배 이상 폭증했다. 한 부서에서 장기 근속하며 매너리즘에 빠졌던 인력들이 타 부서 혁신 프로젝트로 수혈되면서 조직 전체에 선순환 구조를 만들었다. 이는 고질적인 부서 이기주의(Silo Effect)를 타파하고, 직무 간 이해도가 높은 인재들을 배출함으로써 부서 간 협업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추는 부수적 효과까지 가져왔다.


③ 심리적 프레임의 전환: "이직 사이트 대신 사내 포털을 켠다"

가장 값진 성과는 구성원들의 '커리어 프레임'이 근본적으로 바뀐 것이다. 이제 D사 직원들은 연휴 기간 진로 고민이 깊어질 때 외부 이직 사이트를 뒤적이지 않는다. 대신 사내 포털의 '커리어 지도'를 먼저 클릭하며, 특정 프로젝트 참여나 직무 전환이 자신의 몸값을 어떻게 올릴 수 있을지를 먼저 가늠한다. 회사를 나가는 것만이 성장의 유일한 방법이라는 편견이 사라지고, "우리 회사 안에서도 충분히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강력한 믿음이 뿌리내렸다.


④ 경영 철학의 재정의: 통제 기구에서 '성장 플랫폼'으로

이번 프로젝트는 경영진의 리더십 철학마저 바꾸어 놓았다. 과거 직원들을 비용과 통제의 대상으로만 보던 시각에서 벗어나, 구성원의 커리어를 지원하는 것이 곧 조직의 경쟁력임을 깨달은 것이다. 회사는 이제 단순한 일터를 넘어, 개인의 성장을 매칭해주는 '성장 플랫폼(Growth Platform)'으로 정체성을 확립했다. 무더운 7월에도 구성원들이 지치지 않고 달릴 수 있는 엔진은, "이곳에서 나는 매일 더 나은 인재가 되고 있다"는 확신에서 나오고 있었다.


6. 본 사례가 주는 시사점

많은 리더가 핵심 인재의 이탈 징후를 발견하면 즉각적으로 '보상'이라는 카드를 꺼내 든다. 더 높은 연봉을 제안하거나 파격적인 복지를 약속하며 떠나는 이의 발길을 돌리려 애쓴다. 그러나 선택설계의 관점에서 냉정하게 분석해 볼 때, 우수한 구성원이 사표를 던지는 진정한 이유는 단순히 돈이 적어서가 아니다. 그들이 조직을 떠나는 본질적인 이유는 ‘이곳에서의 내 미래가 더 이상 그려지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은 현재의 고통보다 미래의 불확실성에 더 큰 공포를 느낀다. 지금의 자리가 성장의 막다른 골목(Dead End)이라고 느껴지는 순간, 인재는 생존을 위해 본능적으로 담장 너머의 다른 길을 탐색하기 시작한다. 아무리 화려한 복지와 높은 급여를 제공하더라도, 자신이 소모되고 정체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면 그 조직은 인재에게 '안락한 정지 상태'일 뿐이다.

선택설계는 바로 그 막다른 골목의 벽을 허물어 새로운 문을 내고, 그 너머에 펼쳐진 다양한 성장 경로를 시각화하여 보여주는 작업이다. 단순히 "우리 회사는 성장을 지원합니다"라는 구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어떤 길들이 존재하는지, 그 길을 걷기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조직이 어떤 안전망을 제공하는지를 구체적인 선택지로 제시해야 한다.

조직 안에 성장의 경로를 다각화하고, 그 길을 걷는 것이 심리적으로 안전하며 조직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권장된다는 강력한 확신을 주는 것만으로도, 조직은 핵심 인재 유실로 발생하는 막대한 유무형의 비용을 획기적으로 막을 수 있다.

결국, 물리적인 힘을 동원한 강압적인 리텐션(Retention)보다 훨씬 더 강력한 에너지는 구성원 스스로가 이 조직에 남고 싶게 만드는 ‘매력적인 선택지의 지도’를 그들의 눈앞에 펼쳐주는 것이다. 인재는 자신의 미래 가치가 투영되지 않는 조직에 결코 영혼을 맡기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이 기여한 만큼 성장하고, 그 성장이 다시 새로운 기회로 연결되는 '역동적인 생태계'를 갈망한다.

우리는 이제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우리 조직은 지금 구성원들에게 어떤 미래를 상상하게 하고 있는가?" 그들이 연휴 기간에 가족들과 둘러앉아 자신의 직장 생활을 이야기할 때, "나는 여기서 이런 전문가로 커가고 있어"라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는 '상상의 근거'를 제공하고 있는가? 그 질문에 대한 진실한 답이 곧 당신 조직의 대체 불가능한 경쟁력이자, 인재들이 떠나지 않는 가장 확실한 이유가 될 것이다.


7. 그 때를 회상하며

이번 2월호 원고를 매듭짓는 내 마음은 유독 복잡했다. 이미 조직의 방향을 결정하는 높은 위치에 서게 된 나에게, 지난 설 연휴 고향 집에서의 대화는 예상치 못한 날카로운 각성의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마주 앉은 조카 아이들은 이제 어엿한 사회 초년생이 되어 있었고, 그들이 털어놓는 직장 생활의 고충은 내가 젊은 시절 느꼈던 것과는 또 다른 결의 통증을 담고 있었다. "삼촌, 우리 회사는 내가 여기서 10년 뒤에 뭐가 될지 전혀 상상이 안 돼. 그냥 하루하루 갈려 나가는 기분이야." 웃음기 섞인 조카의 그 말 한마디가, 명절 음식으로 가득 찬 식탁 위에서 내 가슴을 차갑게 찔렀다. 관리자로서 내가 만들고 있는 조직도 누군가의 조카에게는 저런 절망의 벽으로 느껴지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무거운 책임감이 밀려왔다.

조카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깨달은 것은, 지금 세대에게 퇴사는 단순히 회사가 싫어서 하는 선택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들에게 일터는 자아를 실현하고 성장하는 플랫폼이어야 하는데, 그 경로가 보이지 않을 때 느끼는 폐쇄공포증이 그들을 밖으로 내몰고 있었다. "모든 회사들이 다 비슷하겠지?"라는 조카의 무심한 질문에 나는 선뜻 답할 수 없었다. 나 역시 관리자라는 이름으로 효율과 성과만을 앞세우며, 우리 후배들이 가진 '성장에 대한 갈증'을 애써 외면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뼈아프게 복기해야 했다.

이번 D사 프로젝트에서 ‘사내 커리어 지도’를 설계하며 내가 그토록 집요하게 매달렸던 이유는, 설 연휴 끝에 만난 우리 집 조카아이들 같은 수많은 청년에게 "너희가 머무는 이곳이 결코 막다른 골목이 아니다"라는 답을 시스템으로 증명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 선택설계는 단순히 인재 유출을 막는 경영 기법이 아니라, 시대를 앞서가는 선배로서 후배들의 삶에 새로운 문을 내주는 ‘공감의 산물’이다. D사의 변화를 지켜보며, 나는 비로소 조카에게 해주고 싶었던 답을 찾은 것 같았다. 조직이 구성원에게 "회사 안에서도 당신의 인생은 바뀔 수 있고, 우리는 당신의 다음 걸음을 진심으로 응원한다"는 확신을 줄 때, 조직은 비로소 사람을 키우는 진짜 '집'이 된다.

이제 D사의 인재들이 명절 끝 복귀 길에 이직 사이트 대신 사내 커리어 지도를 보며 설레는 마음으로 자신의 미래를 쇼핑하기를 바란다. 조카아이의 눈에 비친 우리 조직의 모습이 더 이상 차가운 벽이 아니라, 언제든 열고 나갈 수 있는 희망의 문이 되길 소망하며 이 글을 맺는다.


- 작성자: 신경수 박사(조직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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