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미경'은 일상의 사소한 순간을 포착해 타인의 이해하기 힘든 행동과 그로 인한 미묘한 불편함을 세밀하게 들여다보는 코너입니다. 일상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에피소드를 통해 우리 삶의 단면과 사회적 매너의 결을 탐구합니다. 거창한 비판보다는 날카로우면서도 따뜻한 시선으로 공존을 위한 작은 배려의 가치를 새삼스럽게 발견하고자 합니다.
“용 문신의 아이들이 도시를 점령하다!”

야외 유원지에서 마주한 용 문신의 습격
지난주 친한 일행들과 함께 경기도 북쪽 지역의 야외 유원지를 찾았다. 모처럼의 맑은 주말을 맞아 유원지 곳곳에는 어린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고, 돗자리를 펴고 둘러앉아 싱그러운 신록과 시원한 바람을 즐기는 가족 단위 방문객들로 평화로운 풍경이 연출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여유로운 휴식의 시간은 얼마 지나지 않아 시야를 파고드는 불쾌하고 기괴한 장면으로 인해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유원지 한편의 산책로를 따라 걸어오는 두 쌍의 젊은 커플이 그 원인이었다. 두 명의 남성은 수많은 사람이 오가는 개방된 공공장소임에도 불구하고, 주변의 시선은 전혀 안중에도 없다는 듯 상의를 완전히 탈의한 채 거들먹거리며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더 가관인 것은 그들의 등과 양팔, 가슴팍까지 빈틈없이 새겨져 있는 거대하고 험악한 용 문신이었다. 마치 자신이 대단한 권력이나 위협적인 힘이라도 가진 양 어깨를 한껏 들이밀며 걷는 그 조잡한 과시욕은 평온했던 유원지의 공기를 한순간에 얼어붙게 만들었다. 타인에게 명백한 혐오감과 위압감을 주는 저급한 행태를 그들만의 당당한 멋으로 착각하는 양아치 성향의 남성들도 한심했지만, 정작 필자의 고개를 더욱 강하게 가로젓게 만든 것은 그들의 곁을 아무렇지 않게, 오히려 자랑스러운 듯 동행하고 있는 젊은 여성들의 심리였다.
딸을 키우는 부모의 입장에서 그들의 무지하고 천박한 동행을 바라보는 마음은 씁쓸하기 짝이 없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시각적 폭력을 행사하며 공공 매너를 짓밟는 남성을 '강함'으로 오인하고 그 옆에서 허세를 공유하는 여성들의 태도는 도무지 이성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웠다. 공공 에티켓에 대한 최소한의 수치심마저 마비된 듯한 그들만의 무식한 리그를 지켜보며, 우리 일상의 안전지대와 평온함이 고작 저런 무분별한 인간들의 무신경함에 너무나 쉽게 침범당하고 있다는 사실에 서글픔이 일었다.
찜질방으로 이어진 용 문신의 불쾌함
낮 동안 유원지에서 겪은 불쾌감을 뒤로하고, 저녁 무렵에는 지친 몸과 피로를 풀기 위해 인근의 대형 찜질방을 방문했다. 찜질방과 대중목욕탕은 사회적 지위나 겉치레를 모두 내려놓고 스스로를 무장해제한 채 온전한 휴식을 취하는 지극히 사적인 공간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곳에서도 문신이 주는 무언의 시각적 공해로부터 도망칠 수는 없었다. 따뜻한 온탕에 몸을 담그고 눈을 감고 있을 때, 목부터 발목까지 온몸을 거대한 용 문신으로 도배한 한 젊은 남성이 주변을 압도하려는 듯 당당한 걸음걸이로 탕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사방이 꽉 막히고 도망칠 곳도 마땅치 않은 제한된 공간에서 마주하는 전신 문신은 야외 유원지에서 보았던 것보다 훨씬 더 불쾌하고 무거운 위압감으로 다가왔다. 그 남성이 온탕 안으로 들어와 자신의 몸을 과시하듯 탕을 휘저으며 움직일 때마다, 주변에 있던 다른 이용객들은 누구 하나 대놓고 항의하지는 못했지만 약속이라도 한 듯 불쾌한 표정으로 슬금슬금 자리를 피하거나 애써 시선을 허공으로 돌렸다. 타인에게 공포와 긴장을 유발하는 행동을 즐기는 듯한 그 뒤틀린 심리는 비겁하기 짝이 없다.
과거에는 특정 범죄 집단의 전유물이었던 위협적인 전신 문신이 최근 몇 년 사이 젊은 층을 중심으로 급격하게 늘어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뼈아픈 현실이다. 소셜 미디어와 일부 철없는 대중문화가 이를 개성의 표현이나 힙한 예술 장르라는 그럴듯한 명분으로 포장해 주자, 마치 면죄부라도 얻은 양 양지로 기어 나와 타인의 권리를 일방적으로 훼손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몸에 무엇을 새기든 그것은 본인들의 자유라고 우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자유가 아니라 무식한 방종에 불과하며, 그것이 공공장소의 안락함을 해친다면 더 이상 사적 권리로 보호받을 가치가 없다.
표현의 자유라는 위선과 공공의 에티켓
오늘날 많은 문신 인구가 자신의 문신을 가리켜 억압받지 말아야 할 '예술'이자 정당한 '자기표현의 수단'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하지만 이는 타인에게 주는 고통을 외면하는 지극히 이기적인 위선일 뿐이다. 진정한 의미의 개성과 예술이란 타인의 권리와 평온함을 침해하지 않는 보편적인 상식의 테두리 안에 있을 때 비로소 존중받는 법이다. 귀여운 레터링이나 작은 패션 타투를 넘어선, 신체 대부분을 덮는 거대하고 위협적인 문신은 대다수의 평범한 시민들에게 개성이 아닌 혐오감과 공포를 본능적으로 유발할 뿐이다.
특히 아직 사회적 판단력이 성숙하지 않은 어린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는 부모들에게 이러한 무분별한 문신의 노출은 일상적인 불안 요소이자 설명하기 난감한 교육적 폭력으로 작용한다. 문신을 한 이들이 "왜 색안경을 끼고 차별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느냐"며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기 전에, 자신들의 당당하고 거침없는 노출이 일상을 살아가는 타인에게 얼마나 큰 심리적 피로감과 불쾌감을 강요하고 있는지 현미경을 들이대듯 스스로의 추악한 내면을 냉정하게 성찰해 보아야 한다.
결국 성숙하고 품격 있는 시민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지금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문신 자체를 원천적으로 금지하는 거창한 법적 규제가 아니라, 장소와 상황에 맞게 자신을 다스릴 줄 아는 '최소한의 상식과 가림의 미덕'이다. 개인의 독특한 취향을 존중받고 싶다면, 공공장소를 함께 점유하고 있는 타인의 시각적 자유와 심리적 편안함 역시 동등한 무게로 존중해야 마땅하다.
자신이 몸을 타인에게 위압감이나 혐오감을 줄 수 있는 문신으로 도배했다면, 적어도 수많은 불특정 다수가 함께 숨 쉬고 이용하는 공공장소에서는 얇은 겉옷을 걸치거나 토시를 이용해 그 모습을 조용히 가려주는 것이 인간으로서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에티켓이다. 나의 무분별한 개성을 타인을 위해 잠시 가려둘 줄 아는 그 작은 절제와 배려는 공동체 생활의 매너를 지키고 진짜 성숙한 어른으로 공존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예의이다. 만일, 그런 의식이 없다면 그것은 공공질서를 어기는 무식한 행동이라고 비난받아 마땅하다.
작성자: 신경수 박사(조직심리학)

'현미경'은 일상의 사소한 순간을 포착해 타인의 이해하기 힘든 행동과 그로 인한 미묘한 불편함을 세밀하게 들여다보는 코너입니다. 일상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에피소드를 통해 우리 삶의 단면과 사회적 매너의 결을 탐구합니다. 거창한 비판보다는 날카로우면서도 따뜻한 시선으로 공존을 위한 작은 배려의 가치를 새삼스럽게 발견하고자 합니다.
“용 문신의 아이들이 도시를 점령하다!”
야외 유원지에서 마주한 용 문신의 습격
지난주 친한 일행들과 함께 경기도 북쪽 지역의 야외 유원지를 찾았다. 모처럼의 맑은 주말을 맞아 유원지 곳곳에는 어린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고, 돗자리를 펴고 둘러앉아 싱그러운 신록과 시원한 바람을 즐기는 가족 단위 방문객들로 평화로운 풍경이 연출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여유로운 휴식의 시간은 얼마 지나지 않아 시야를 파고드는 불쾌하고 기괴한 장면으로 인해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유원지 한편의 산책로를 따라 걸어오는 두 쌍의 젊은 커플이 그 원인이었다. 두 명의 남성은 수많은 사람이 오가는 개방된 공공장소임에도 불구하고, 주변의 시선은 전혀 안중에도 없다는 듯 상의를 완전히 탈의한 채 거들먹거리며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더 가관인 것은 그들의 등과 양팔, 가슴팍까지 빈틈없이 새겨져 있는 거대하고 험악한 용 문신이었다. 마치 자신이 대단한 권력이나 위협적인 힘이라도 가진 양 어깨를 한껏 들이밀며 걷는 그 조잡한 과시욕은 평온했던 유원지의 공기를 한순간에 얼어붙게 만들었다. 타인에게 명백한 혐오감과 위압감을 주는 저급한 행태를 그들만의 당당한 멋으로 착각하는 양아치 성향의 남성들도 한심했지만, 정작 필자의 고개를 더욱 강하게 가로젓게 만든 것은 그들의 곁을 아무렇지 않게, 오히려 자랑스러운 듯 동행하고 있는 젊은 여성들의 심리였다.
딸을 키우는 부모의 입장에서 그들의 무지하고 천박한 동행을 바라보는 마음은 씁쓸하기 짝이 없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시각적 폭력을 행사하며 공공 매너를 짓밟는 남성을 '강함'으로 오인하고 그 옆에서 허세를 공유하는 여성들의 태도는 도무지 이성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웠다. 공공 에티켓에 대한 최소한의 수치심마저 마비된 듯한 그들만의 무식한 리그를 지켜보며, 우리 일상의 안전지대와 평온함이 고작 저런 무분별한 인간들의 무신경함에 너무나 쉽게 침범당하고 있다는 사실에 서글픔이 일었다.
찜질방으로 이어진 용 문신의 불쾌함
낮 동안 유원지에서 겪은 불쾌감을 뒤로하고, 저녁 무렵에는 지친 몸과 피로를 풀기 위해 인근의 대형 찜질방을 방문했다. 찜질방과 대중목욕탕은 사회적 지위나 겉치레를 모두 내려놓고 스스로를 무장해제한 채 온전한 휴식을 취하는 지극히 사적인 공간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곳에서도 문신이 주는 무언의 시각적 공해로부터 도망칠 수는 없었다. 따뜻한 온탕에 몸을 담그고 눈을 감고 있을 때, 목부터 발목까지 온몸을 거대한 용 문신으로 도배한 한 젊은 남성이 주변을 압도하려는 듯 당당한 걸음걸이로 탕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사방이 꽉 막히고 도망칠 곳도 마땅치 않은 제한된 공간에서 마주하는 전신 문신은 야외 유원지에서 보았던 것보다 훨씬 더 불쾌하고 무거운 위압감으로 다가왔다. 그 남성이 온탕 안으로 들어와 자신의 몸을 과시하듯 탕을 휘저으며 움직일 때마다, 주변에 있던 다른 이용객들은 누구 하나 대놓고 항의하지는 못했지만 약속이라도 한 듯 불쾌한 표정으로 슬금슬금 자리를 피하거나 애써 시선을 허공으로 돌렸다. 타인에게 공포와 긴장을 유발하는 행동을 즐기는 듯한 그 뒤틀린 심리는 비겁하기 짝이 없다.
과거에는 특정 범죄 집단의 전유물이었던 위협적인 전신 문신이 최근 몇 년 사이 젊은 층을 중심으로 급격하게 늘어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뼈아픈 현실이다. 소셜 미디어와 일부 철없는 대중문화가 이를 개성의 표현이나 힙한 예술 장르라는 그럴듯한 명분으로 포장해 주자, 마치 면죄부라도 얻은 양 양지로 기어 나와 타인의 권리를 일방적으로 훼손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몸에 무엇을 새기든 그것은 본인들의 자유라고 우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자유가 아니라 무식한 방종에 불과하며, 그것이 공공장소의 안락함을 해친다면 더 이상 사적 권리로 보호받을 가치가 없다.
표현의 자유라는 위선과 공공의 에티켓
오늘날 많은 문신 인구가 자신의 문신을 가리켜 억압받지 말아야 할 '예술'이자 정당한 '자기표현의 수단'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하지만 이는 타인에게 주는 고통을 외면하는 지극히 이기적인 위선일 뿐이다. 진정한 의미의 개성과 예술이란 타인의 권리와 평온함을 침해하지 않는 보편적인 상식의 테두리 안에 있을 때 비로소 존중받는 법이다. 귀여운 레터링이나 작은 패션 타투를 넘어선, 신체 대부분을 덮는 거대하고 위협적인 문신은 대다수의 평범한 시민들에게 개성이 아닌 혐오감과 공포를 본능적으로 유발할 뿐이다.
특히 아직 사회적 판단력이 성숙하지 않은 어린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는 부모들에게 이러한 무분별한 문신의 노출은 일상적인 불안 요소이자 설명하기 난감한 교육적 폭력으로 작용한다. 문신을 한 이들이 "왜 색안경을 끼고 차별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느냐"며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기 전에, 자신들의 당당하고 거침없는 노출이 일상을 살아가는 타인에게 얼마나 큰 심리적 피로감과 불쾌감을 강요하고 있는지 현미경을 들이대듯 스스로의 추악한 내면을 냉정하게 성찰해 보아야 한다.
결국 성숙하고 품격 있는 시민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지금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문신 자체를 원천적으로 금지하는 거창한 법적 규제가 아니라, 장소와 상황에 맞게 자신을 다스릴 줄 아는 '최소한의 상식과 가림의 미덕'이다. 개인의 독특한 취향을 존중받고 싶다면, 공공장소를 함께 점유하고 있는 타인의 시각적 자유와 심리적 편안함 역시 동등한 무게로 존중해야 마땅하다.
자신이 몸을 타인에게 위압감이나 혐오감을 줄 수 있는 문신으로 도배했다면, 적어도 수많은 불특정 다수가 함께 숨 쉬고 이용하는 공공장소에서는 얇은 겉옷을 걸치거나 토시를 이용해 그 모습을 조용히 가려주는 것이 인간으로서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에티켓이다. 나의 무분별한 개성을 타인을 위해 잠시 가려둘 줄 아는 그 작은 절제와 배려는 공동체 생활의 매너를 지키고 진짜 성숙한 어른으로 공존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예의이다. 만일, 그런 의식이 없다면 그것은 공공질서를 어기는 무식한 행동이라고 비난받아 마땅하다.
작성자: 신경수 박사(조직심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