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에 보도된 사회적 이슈를 人事의 시각에서 다루어 보는 코너입니다. 언론은 객관적 사실에 입각하여 팩트 전달에 노력하고, 이를 받아보는 사람들은 각자의 입장에 따라 다양한 해석을 내어 놓습니다. 다양한 견해가 있을 것이고, 저는 어디까지나 저의 분야인 조직문화의 시각에서 이 문제를 다루어 보고자 합니다. 오늘은 ‘하이브 VS 민희진’ 사태를 가지고 조직갈등의 원인과 해결방안에 대해 논의해 보고자 합니다.
“같은 식구의 호주머니를 터는
더러운 짓거리는 하지 말자!”
<사건개요>
2024년 4월 25일 유튜브를 통해 대중에게 소개된 민희진이라는 어느 여사장의 기자회견은 두고두고 회자될 영화와도 같은 명장면의 연속이었다. 그 형식과 내용만으로도 한국 대중문화와 미디어산업 전체에 커다란 파문을 남겼다. 130분 넘게 온라인으로 생중계된 이날 회견에서 민 대표는 어도어의 모기업이자 국내 최대 엔터테인먼트 회사인 하이브에 대한 폭로성 발언을 쏟아냈다. 하이브 측이 ‘경영권 찬탈 시도’라는 명분으로 민 대표와 그 주변 인물을 감사한지 사흘 만이었다.
기업경영 측면에서 이번 사태를 단순하게 요약하면 이렇다. 지분율 80%를 쥔 모회사(하이브)가 자회사(어도어) 대표에게 배임 의혹을 제기했다. 자회사 대표와 그의 주변 인물들이 모회사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사전 모의했고, 그 증거를 감사 과정에서 확보했다는 주장이다. 반면 자회사 대표는 기자회견을 열어 이를 전면 부인했고, 오히려 그동안 모회사가 자회사의 활동에 어깃장을 놓았다고 주장한다.
하이브와 민희진, 이번 사태에서 누구의 책임이 더 큰지는 사안을 바라보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그런데 이 사건은 책임의 잘잘못을 떠나 대중들로 하여금 지금까지 화려한 베일에 쌓여 있던 K-POP이라는 가장 선도적인 산업구조를 고민하는 계기를 만들었다는데 더 큰 의의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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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티레이블 시스템이란?
하이브는 자산 규모 5조원의 무려 65개 기업, 11개 레이블을 동시에 운영중인 대형 연예기획사로서 엔터업계 최초로 대기업집단 지정을 받은 기업이다. 지금까지는 이와 같은 하이브의 기록적인 성장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독자적인 조직운영 체제인 멀티레이블 시스템 덕분이라고 여겨져 왔다. 하지만 이번 하이브와 민희진의 싸움을 보면서 사람들은 하이브가 자랑하는 멀티레이블 시스템에 대한 회의적 시각을 갖기 시작했다. 이 제도가 성장을 견인하는 시스템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조직을 망가뜨리는 썩은 사다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들이 조금씩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과연 하이브가 자랑하는 멀티레이블 시스템은 성장을 견인하는 드라이버일까? 아니면 언젠가는 조직을 망가뜨리는 썩은 사다리일까? 공이 어느 방향으로 튈 것인지를 예측하기 위해서는 멀티레이블이라는 조직체제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멀티레이블이란 레이블이 여러 개 있다는 의미이다. 레이블은 음반을 제작하거나 유통하는 회사들을 말하는데, 아티스트의 활동을 지원하는 역할도 동시에 맡고 있다. 활동 지원이란 음반제작, 발매, 홍보, 콘서트 등을 기획부터 운영까지 총괄적으로 지원한다는 것으로 이해하면 무리가 없다. 하나의 레이블이 아티스트 한 명을 지원하거나 또는 비슷한 성격의 아티스트 여러 명을 묶어서 운영하는 회사도 있다. 멀티레이블이란 이런 레이블들을 여러 개 운영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기업으로 치면, 대기업이 계열사 또는 사업부문을 여러 개 운영하고 있는 방식과 비슷하다.
우리나라 엔터 기업들은 보통 장르별로 레이블을 만들어 소속 아티스트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기존에는 엔터 기업의 대표 프로듀서가 있고, 그 프로듀서가 갖는 성격이 소속 아티스트들의 음악에 모두 반영되기 때문에 비슷비슷한 음악이 만들어져 왔다. 멀티레이블은 이 같은 단점을 보완하여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을 만들어 내고 그에 맞는 마케팅 활동이 이루어진다는 장점이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점이 있다. 고유한 성격의 레이블이 아닌 다양한 성격의 레이블이 이 시스템의 장점이자 성공요소라는 점이다. 같은 성격의 레이블이라면 굳이 독립적인 레이블로 존재할 이유가 없다. 같은 성격의 레이블로 흡수 통합하는 것이 비용절감이나 영업활동에도 훨씬 유리하다.
같은 성격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두 사업부를 생각해 보자. 그들은 좀더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하여 수억 수십억의 홍보비용과 이벤트 비용을 각자 써가며 제로섬 게임을 벌이고 있다. 상대방의 시장을 빼앗기 위해 서로를 비방하며 각자의 인력 예산을 써가면서 혈투를 벌였는데, 알고 보니 그들이 서로 가족이었다면 이상하지 않을까?
때문에 인사, 예산, 전략에 대한 독립적인 경영권을 보장받은 사업체제에서는 그들이 취급하는 상품이나 서비스의 성격이 달라야 한다. 만일 같다면 집안싸움으로 번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번 기자회견에서 민희진씨의 입에서도 “다른 건 참아도 뉴진스를 베낀 아일릿은 못참겠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던가!
의도적으로 경쟁구도를 만들고 싶어하는 유혹은 하이브와 같은 엔터 업계의 일만은 아니다. 거의 대부분의 산업군에서 기업은 경쟁구도를 선호한다. 서로의 자극을 통해서 전체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그런데, 조직내 경쟁구도는 보기에는 그럴 듯해 보이는 구조이지만 현장에 적용한다고 한다면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극명한 장단점을 가지고 있는 조직전략이다. 다행히도 건전한 압박으로 진행이 된다면 상향평준화에 도움이 되는 것이지만 불건전한 압박으로 갈 경우는 조직을 병들게 하고 조직을 망하게 하는 지름길이다.
조직갈등에 대한 현장실험
조직갈등에 대한 매우 유명한 실험이 있다. 1950년대에 무자퍼 셰리프Muzafer Sherif 교수가 실시한 로버스 동굴 실험은 오클라호마의 소년 22명을 상대로 집단 간 갈등과 협력에 대해 연구한 유명한 실험이다. 이 현장 실험은 미국 오클라호마주 로버스 케이브Robber`s Cave 주립공원에서 두 그룹의 12세 소년들을 대상으로 진행이 되었다. 연구에 참여한 22명의 소년들은 서로 모르는 사이였으며 모두 백인 중산층 출신이었다. 이들은 모두 개신교 신자이며 부모가 모두 두 명인 공통점이 있었다.
연구진은 소년들을 무작위로 두 그룹으로 나누어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재능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노력했다. 두 그룹 모두 서로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연구진은 소년들을 개별 그룹으로 버스를 타게 한 후, 로버스 케이브 주립공원에 있는 보이스카우트 캠프로 이동케 했다.
1단계: 그룹내 관계형성(5~6일)
각 그룹의 구성원들은 서로를 알게 되고, 사회규범이 만들어 지면서 리더십과 그룹구조가 생겨났다. 캠프에서 각 그룹은 서로 분리된 상태로 생활을 했다. 그들은 그룹내 협력적인 계획이나 실행이 필요한 공동의 목표를 추구함으로써 두 개의 개별그룹으로 유대감을 형성하도록 장려되었다. 1단계의 기간동안 두 그룹은 다른 그룹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소년들은 캠프 첫 주 동안 하이킹, 수영 등 다양한 활동을 함께하며 자신들만의 문화와 그룹규범을 빠르게 정립하면서 그룹에 대한 애착을 키워 나갔다. 소년들은 자신들의 그룹을 ‘독수리’와 ‘방울뱀’이라고 이름을 정하고 셔츠와 깃발도 만들고 거기에 로고를 새기기도 했다.
2단계: 그룹갈등(4~5일)
그룹내 관계형성의 시기가 끝나고 이때부터는 서로가 접촉하며 게임과 도전과제를 놓고 경쟁하게 만들었다. 셰리프 교수는 4~5일 동안 그룹간 마찰이 일어날 ‘경쟁단계’를 준비했다. 이 단계에서는 두 그룹이 좌절감을 느낄 수 있는 조건을 가지고 서로 경쟁하게 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설계가 되었다. 일련의 경쟁활동(예: 야구, 줄다리기)이 준비되었고 누적된 팀 점수에 따라 트로피도 수여되고 우승한 그룹에게는 개인상품도 수여했다.
일련의 비공식적인 콘테스트 발표에 대한 방울뱀팀의 반응은 승리에 대한 절대적인 자신감이었다. 그들은 하루 종일 콘테스트에 대해 이야기하고 야구연습을 하는 데 시간을 보냈다. 심지어 경기장에 ‘방울뱀’이 그려진 깃발을 꽂기도 했다. 이때 몇몇 방울뱀 멤버들은 독수리팀이 깃발을 건드리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협박성 발언을 하기도 했다.
한 그룹이 다른 그룹을 희생시켜 이득을 취하는 상황도 고안되었다. 예를 들어, 한 그룹이 소풍에 늦게 도착했을 때 다른 그룹은 이미 음식을 다 먹은 후였다고 가정해 보자. 처음에는 이러한 상황이 조롱이나 욕설과 같은 언어적 표현으로만 이루어졌다. 하지만 경쟁이 계속되면서 표현은 좀 더 직접적인 행동으로 이어졌다. 독수리는 방울뱀의 깃발을 불태웠고, 그러자 방울뱀은 독수리의 숙소를 뒤지고 침대를 뒤집고 개인재산을 훔쳐갔다. 두 그룹은 서로에게 너무 공격적이 되어 연구원들이 물리적으로 이 둘을 분리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연구진은 이틀 간의 냉각기간을 갖게 했고 소년들로 하여금 자신의 그룹과 상대방 그룹의 특징을 나열케 했다. 소년들은 자신이 속한 그룹은 매우 호의적인 용어로, 상대 그룹은 매우 불리한 용어로 특징짓는 경향을 보였다. 이 연구에 참여한 소년들은 길거리 갱단이 아니라 백인 중산층의 모범적 가정에서 자란 평범한 소년들이다. 이런 점을 생각해 볼 때, 이 연구는 집단 간의 갈등이 보통의 사람들조차도 편견과 차별적 행동을 유발하게 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가 된다. 이 실험은 셰리프 교수의 현실적 갈등이론을 확인시켜 주었다.
3단계: 갈등해결(6~7일)
셰리프 교수와 연구진은 그룹 간의 증오 폭력을 줄이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시도했다. 동굴 실험에 따르면 상위목표(동일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상호협력이 필요한 목표)는 다른 전략(예: 의사소통, 접촉)보다 갈등을 훨씬 더 효과적으로 감소시켰다. 즉흥적인 화해의 기회(콩 모으기 대회, 영화상영, 폭죽 쏘기)는 독수리와 방울뱀 사이의 긴장을 완화시키지는 못했다. 셰리프 교수는 이러한 인위적인 접촉 기회로는 두 집단 간의 긴장을 완화시킬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셰리프 교수는 여기서 상위목표를 제시하는 여러가지 시나리오를 도입했다.
첫 번째 상위목표는 두 그룹이 공통으로 사용하는 자원에 관한 것이었다. 갑자기 공급이 중단된 상수도를 문제해결을 위한 상위목표로 설정했다. 캠프의 모든 식수는 캠프 북쪽 산에 있는 저수지에서 공급되었다. 상수도 공급이 중단되자 캠프 직원들은 이를 ‘외부인’ 탓으로 돌렸다. 독수리와 방울뱀이 별도의 조를 이루어 광범위한 수도관을 조사한 결과, 수도꼭지에 마대자루가 꽂혀 있는 것을 발견했다. 모든 소년들이 수도꼭지 주변에 모여 마대자루를 치우기 위해 노력했다.
두 그룹의 멤버들은 장애물을 효과적으로 제거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사방에서 동시에 제안을 했고, 그 결과 협력하여 장애물을 제거할 수 있었다. 수도꼭지에 대한 공동작업은 1시간 이상 지속되었다. 마침내 물이 나오자 모두가 기뻐했다. 방울뱀의 멤버들은 수통이 없는 독수리 멤버들이 먼저 물을 마시는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이런 행동은 불과 1주일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다음으로 설계한 상위목표는 또래 남자아이들이 좋아하는 장편 영화였다. 연구진은 어린이 영화 전문가와 상의하여 두 편의 영화를 선정해서 캠프에 가져왔다. 우선은 아이들을 소집한 후 '보물섬'과 '키드냅'을 함께 볼 것을 제안했다: 두 그룹 모두 찬성한다고 외쳤다. 그러자 스태프들은 영화를 확보하는 데 15달러의 비용이 들며 캠프에서 전액을 지불할 수 없다고 발표했다. 많은 논의 끝에 두 그룹이 절반을 부담하고 캠프에서 절반을 지불하는 방안이 제안되었다. 향수병에 걸린 독수리팀의 몇 명이 집으로 돌아갔기 때문에 그룹별로 1인당 부담금이 불균등했지만 이 제안은 받아들여졌다.
이 단계에서 도입된 다른 문제해결의 상위목표에는 줄다리기의 줄을 공동으로 사용하는 것, 두 그룹의 소년들이 '우연히' 두 그룹의 식량을 운반하는 트럭을 발견하는 것 등이 있었다. 이러한 상위목표를 공동으로 해결하면서 그룹 간 갈등이 줄어들었다. 캠프 마지막 날은 아침과 점심식사 때, 그룹별 좌석배치가 상당히 많이 뒤섞여 있었다.
RCT(Realistic conflict theory)로 불리는 현실적 갈등이론은 위에서 소개한 무자퍼 셰리프 교수가 수행한 고전적인 로버스 동굴실험을 통해 확고해졌고, 핵심사항은 다음 세가지다.
첫째, 그룹이 한정된 자원을 두고 경쟁한다고 인식하면 적대감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둘째, 경쟁을 통해 그룹은 '우리(인그룹) VS 너희(아웃그룹)’라는 강한 의식을 갖게 된다. 이러한 구분은 부정적인 고정관념과 적대감의 증가로 이어진다.
셋째, 상충하는 그룹이 어느 그룹도 혼자서는 달성할 수 없는 목표를 위해 협력할 때 그룹 간 적대감을 줄일 수 있다. 이러한 목표는 더 작은 개별목표를 대체하고 협력을 장려한다.
건전한 경쟁을 통한 조직의 상향평준화
로버스 동굴에서 일어난 사건은 사람들을 괴롭히는 갈등의 유형을 모방했다. 이 갈등에 대한 가장 간단한 설명은 ‘경쟁’이다. 낯선 사람들을 그룹에 배정하고 그룹을 경쟁에 내몰고 국물처럼 휘저으면 바로 ‘갈등’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조직을 파국으로 모는 갈등상황을 굳이 만들고 싶다면 동일한 제품, 서비스를 가지고 서로 경쟁시키면 된다.
하지만 집안싸움을 원하는 기업은 없을 것이다. 본연의 취지와는 다르게 집안싸움에 이른 것일 뿐이다. 우리가 원하는 건 건전한 경쟁이다. 적당한 긴장관계를 유지하면서 서로 간에 자극을 주고, 이를 통해 조직의 상향평준화를 이루는 것이 조직의 목표이다. 그렇다면, 건전한 경쟁이란 어떤 환경에서 만들어 지는 것일까?
독일 빌레펠트대학교의 군터 뒤크Gunter Dueck 교수는 『우리는 왜 집단에서 바보가 되었는가?』라는 책에서 상향평준화의 방법을 크게 1.건전한 경쟁과 자극, 2.이런 분위기를 지키기 위한 동료압박Peer Pressure에 두었다. 뒤크 교수의 주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집단의 천재성이나 조직의 상향평준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구성원들 상호간에 건전한 경쟁의식과 상호자극이 전제되어야 한다.
2 이런 분위기를 만들어 주기 위해서는 2/3이상의 구성원들이 자연스럽게 경쟁과 자극에 대한 대화를 스스럼없이 주고받으며 즐기는 조직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한다.
3 이 정도의 상황이 되면 누가 들어와도 동료압박에 의해 자연스럽게 조직의 분위기에 동화되고 스스로도 성장을 위해 노력하게 된다
뒤크 교수의 말처럼 조직의 상향평준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건전한 경쟁과 상호자극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 지금이라도 멀티레이블이 갖는 본질적 장점, 즉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을 만들어 내는 활동이 이루어져야 한다. 조직은 그런 활동들이 더욱 더 활발하게 발생하도록 도와야 하는 것이지, 같은 식구끼리 치킨게임을 하도록 방조해서는 안 된다. “같은 식구의 호주머니를 터는 더러운 짓거리는 하지 말자!”는 민희진씨의 목소리가 훨씬 설득력을 얻는 이유이다.
글쓴이: 신경수 조직심리박사 (지속성장연구소장 / 인간개발연구원 부원장)
언론에 보도된 사회적 이슈를 人事의 시각에서 다루어 보는 코너입니다. 언론은 객관적 사실에 입각하여 팩트 전달에 노력하고, 이를 받아보는 사람들은 각자의 입장에 따라 다양한 해석을 내어 놓습니다. 다양한 견해가 있을 것이고, 저는 어디까지나 저의 분야인 조직문화의 시각에서 이 문제를 다루어 보고자 합니다. 오늘은 ‘하이브 VS 민희진’ 사태를 가지고 조직갈등의 원인과 해결방안에 대해 논의해 보고자 합니다.
“같은 식구의 호주머니를 터는
더러운 짓거리는 하지 말자!”
<사건개요>
2024년 4월 25일 유튜브를 통해 대중에게 소개된 민희진이라는 어느 여사장의 기자회견은 두고두고 회자될 영화와도 같은 명장면의 연속이었다. 그 형식과 내용만으로도 한국 대중문화와 미디어산업 전체에 커다란 파문을 남겼다. 130분 넘게 온라인으로 생중계된 이날 회견에서 민 대표는 어도어의 모기업이자 국내 최대 엔터테인먼트 회사인 하이브에 대한 폭로성 발언을 쏟아냈다. 하이브 측이 ‘경영권 찬탈 시도’라는 명분으로 민 대표와 그 주변 인물을 감사한지 사흘 만이었다.
기업경영 측면에서 이번 사태를 단순하게 요약하면 이렇다. 지분율 80%를 쥔 모회사(하이브)가 자회사(어도어) 대표에게 배임 의혹을 제기했다. 자회사 대표와 그의 주변 인물들이 모회사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사전 모의했고, 그 증거를 감사 과정에서 확보했다는 주장이다. 반면 자회사 대표는 기자회견을 열어 이를 전면 부인했고, 오히려 그동안 모회사가 자회사의 활동에 어깃장을 놓았다고 주장한다.
하이브와 민희진, 이번 사태에서 누구의 책임이 더 큰지는 사안을 바라보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그런데 이 사건은 책임의 잘잘못을 떠나 대중들로 하여금 지금까지 화려한 베일에 쌓여 있던 K-POP이라는 가장 선도적인 산업구조를 고민하는 계기를 만들었다는데 더 큰 의의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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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티레이블 시스템이란?
하이브는 자산 규모 5조원의 무려 65개 기업, 11개 레이블을 동시에 운영중인 대형 연예기획사로서 엔터업계 최초로 대기업집단 지정을 받은 기업이다. 지금까지는 이와 같은 하이브의 기록적인 성장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독자적인 조직운영 체제인 멀티레이블 시스템 덕분이라고 여겨져 왔다. 하지만 이번 하이브와 민희진의 싸움을 보면서 사람들은 하이브가 자랑하는 멀티레이블 시스템에 대한 회의적 시각을 갖기 시작했다. 이 제도가 성장을 견인하는 시스템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조직을 망가뜨리는 썩은 사다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들이 조금씩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과연 하이브가 자랑하는 멀티레이블 시스템은 성장을 견인하는 드라이버일까? 아니면 언젠가는 조직을 망가뜨리는 썩은 사다리일까? 공이 어느 방향으로 튈 것인지를 예측하기 위해서는 멀티레이블이라는 조직체제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멀티레이블이란 레이블이 여러 개 있다는 의미이다. 레이블은 음반을 제작하거나 유통하는 회사들을 말하는데, 아티스트의 활동을 지원하는 역할도 동시에 맡고 있다. 활동 지원이란 음반제작, 발매, 홍보, 콘서트 등을 기획부터 운영까지 총괄적으로 지원한다는 것으로 이해하면 무리가 없다. 하나의 레이블이 아티스트 한 명을 지원하거나 또는 비슷한 성격의 아티스트 여러 명을 묶어서 운영하는 회사도 있다. 멀티레이블이란 이런 레이블들을 여러 개 운영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기업으로 치면, 대기업이 계열사 또는 사업부문을 여러 개 운영하고 있는 방식과 비슷하다.
우리나라 엔터 기업들은 보통 장르별로 레이블을 만들어 소속 아티스트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기존에는 엔터 기업의 대표 프로듀서가 있고, 그 프로듀서가 갖는 성격이 소속 아티스트들의 음악에 모두 반영되기 때문에 비슷비슷한 음악이 만들어져 왔다. 멀티레이블은 이 같은 단점을 보완하여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을 만들어 내고 그에 맞는 마케팅 활동이 이루어진다는 장점이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점이 있다. 고유한 성격의 레이블이 아닌 다양한 성격의 레이블이 이 시스템의 장점이자 성공요소라는 점이다. 같은 성격의 레이블이라면 굳이 독립적인 레이블로 존재할 이유가 없다. 같은 성격의 레이블로 흡수 통합하는 것이 비용절감이나 영업활동에도 훨씬 유리하다.
같은 성격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두 사업부를 생각해 보자. 그들은 좀더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하여 수억 수십억의 홍보비용과 이벤트 비용을 각자 써가며 제로섬 게임을 벌이고 있다. 상대방의 시장을 빼앗기 위해 서로를 비방하며 각자의 인력 예산을 써가면서 혈투를 벌였는데, 알고 보니 그들이 서로 가족이었다면 이상하지 않을까?
때문에 인사, 예산, 전략에 대한 독립적인 경영권을 보장받은 사업체제에서는 그들이 취급하는 상품이나 서비스의 성격이 달라야 한다. 만일 같다면 집안싸움으로 번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번 기자회견에서 민희진씨의 입에서도 “다른 건 참아도 뉴진스를 베낀 아일릿은 못참겠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던가!
의도적으로 경쟁구도를 만들고 싶어하는 유혹은 하이브와 같은 엔터 업계의 일만은 아니다. 거의 대부분의 산업군에서 기업은 경쟁구도를 선호한다. 서로의 자극을 통해서 전체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그런데, 조직내 경쟁구도는 보기에는 그럴 듯해 보이는 구조이지만 현장에 적용한다고 한다면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극명한 장단점을 가지고 있는 조직전략이다. 다행히도 건전한 압박으로 진행이 된다면 상향평준화에 도움이 되는 것이지만 불건전한 압박으로 갈 경우는 조직을 병들게 하고 조직을 망하게 하는 지름길이다.
조직갈등에 대한 현장실험
조직갈등에 대한 매우 유명한 실험이 있다. 1950년대에 무자퍼 셰리프Muzafer Sherif 교수가 실시한 로버스 동굴 실험은 오클라호마의 소년 22명을 상대로 집단 간 갈등과 협력에 대해 연구한 유명한 실험이다. 이 현장 실험은 미국 오클라호마주 로버스 케이브Robber`s Cave 주립공원에서 두 그룹의 12세 소년들을 대상으로 진행이 되었다. 연구에 참여한 22명의 소년들은 서로 모르는 사이였으며 모두 백인 중산층 출신이었다. 이들은 모두 개신교 신자이며 부모가 모두 두 명인 공통점이 있었다.
연구진은 소년들을 무작위로 두 그룹으로 나누어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재능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노력했다. 두 그룹 모두 서로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연구진은 소년들을 개별 그룹으로 버스를 타게 한 후, 로버스 케이브 주립공원에 있는 보이스카우트 캠프로 이동케 했다.
1단계: 그룹내 관계형성(5~6일)
각 그룹의 구성원들은 서로를 알게 되고, 사회규범이 만들어 지면서 리더십과 그룹구조가 생겨났다. 캠프에서 각 그룹은 서로 분리된 상태로 생활을 했다. 그들은 그룹내 협력적인 계획이나 실행이 필요한 공동의 목표를 추구함으로써 두 개의 개별그룹으로 유대감을 형성하도록 장려되었다. 1단계의 기간동안 두 그룹은 다른 그룹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소년들은 캠프 첫 주 동안 하이킹, 수영 등 다양한 활동을 함께하며 자신들만의 문화와 그룹규범을 빠르게 정립하면서 그룹에 대한 애착을 키워 나갔다. 소년들은 자신들의 그룹을 ‘독수리’와 ‘방울뱀’이라고 이름을 정하고 셔츠와 깃발도 만들고 거기에 로고를 새기기도 했다.
2단계: 그룹갈등(4~5일)
그룹내 관계형성의 시기가 끝나고 이때부터는 서로가 접촉하며 게임과 도전과제를 놓고 경쟁하게 만들었다. 셰리프 교수는 4~5일 동안 그룹간 마찰이 일어날 ‘경쟁단계’를 준비했다. 이 단계에서는 두 그룹이 좌절감을 느낄 수 있는 조건을 가지고 서로 경쟁하게 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설계가 되었다. 일련의 경쟁활동(예: 야구, 줄다리기)이 준비되었고 누적된 팀 점수에 따라 트로피도 수여되고 우승한 그룹에게는 개인상품도 수여했다.
일련의 비공식적인 콘테스트 발표에 대한 방울뱀팀의 반응은 승리에 대한 절대적인 자신감이었다. 그들은 하루 종일 콘테스트에 대해 이야기하고 야구연습을 하는 데 시간을 보냈다. 심지어 경기장에 ‘방울뱀’이 그려진 깃발을 꽂기도 했다. 이때 몇몇 방울뱀 멤버들은 독수리팀이 깃발을 건드리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협박성 발언을 하기도 했다.
한 그룹이 다른 그룹을 희생시켜 이득을 취하는 상황도 고안되었다. 예를 들어, 한 그룹이 소풍에 늦게 도착했을 때 다른 그룹은 이미 음식을 다 먹은 후였다고 가정해 보자. 처음에는 이러한 상황이 조롱이나 욕설과 같은 언어적 표현으로만 이루어졌다. 하지만 경쟁이 계속되면서 표현은 좀 더 직접적인 행동으로 이어졌다. 독수리는 방울뱀의 깃발을 불태웠고, 그러자 방울뱀은 독수리의 숙소를 뒤지고 침대를 뒤집고 개인재산을 훔쳐갔다. 두 그룹은 서로에게 너무 공격적이 되어 연구원들이 물리적으로 이 둘을 분리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연구진은 이틀 간의 냉각기간을 갖게 했고 소년들로 하여금 자신의 그룹과 상대방 그룹의 특징을 나열케 했다. 소년들은 자신이 속한 그룹은 매우 호의적인 용어로, 상대 그룹은 매우 불리한 용어로 특징짓는 경향을 보였다. 이 연구에 참여한 소년들은 길거리 갱단이 아니라 백인 중산층의 모범적 가정에서 자란 평범한 소년들이다. 이런 점을 생각해 볼 때, 이 연구는 집단 간의 갈등이 보통의 사람들조차도 편견과 차별적 행동을 유발하게 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가 된다. 이 실험은 셰리프 교수의 현실적 갈등이론을 확인시켜 주었다.
3단계: 갈등해결(6~7일)
셰리프 교수와 연구진은 그룹 간의 증오 폭력을 줄이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시도했다. 동굴 실험에 따르면 상위목표(동일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상호협력이 필요한 목표)는 다른 전략(예: 의사소통, 접촉)보다 갈등을 훨씬 더 효과적으로 감소시켰다. 즉흥적인 화해의 기회(콩 모으기 대회, 영화상영, 폭죽 쏘기)는 독수리와 방울뱀 사이의 긴장을 완화시키지는 못했다. 셰리프 교수는 이러한 인위적인 접촉 기회로는 두 집단 간의 긴장을 완화시킬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셰리프 교수는 여기서 상위목표를 제시하는 여러가지 시나리오를 도입했다.
첫 번째 상위목표는 두 그룹이 공통으로 사용하는 자원에 관한 것이었다. 갑자기 공급이 중단된 상수도를 문제해결을 위한 상위목표로 설정했다. 캠프의 모든 식수는 캠프 북쪽 산에 있는 저수지에서 공급되었다. 상수도 공급이 중단되자 캠프 직원들은 이를 ‘외부인’ 탓으로 돌렸다. 독수리와 방울뱀이 별도의 조를 이루어 광범위한 수도관을 조사한 결과, 수도꼭지에 마대자루가 꽂혀 있는 것을 발견했다. 모든 소년들이 수도꼭지 주변에 모여 마대자루를 치우기 위해 노력했다.
두 그룹의 멤버들은 장애물을 효과적으로 제거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사방에서 동시에 제안을 했고, 그 결과 협력하여 장애물을 제거할 수 있었다. 수도꼭지에 대한 공동작업은 1시간 이상 지속되었다. 마침내 물이 나오자 모두가 기뻐했다. 방울뱀의 멤버들은 수통이 없는 독수리 멤버들이 먼저 물을 마시는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이런 행동은 불과 1주일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다음으로 설계한 상위목표는 또래 남자아이들이 좋아하는 장편 영화였다. 연구진은 어린이 영화 전문가와 상의하여 두 편의 영화를 선정해서 캠프에 가져왔다. 우선은 아이들을 소집한 후 '보물섬'과 '키드냅'을 함께 볼 것을 제안했다: 두 그룹 모두 찬성한다고 외쳤다. 그러자 스태프들은 영화를 확보하는 데 15달러의 비용이 들며 캠프에서 전액을 지불할 수 없다고 발표했다. 많은 논의 끝에 두 그룹이 절반을 부담하고 캠프에서 절반을 지불하는 방안이 제안되었다. 향수병에 걸린 독수리팀의 몇 명이 집으로 돌아갔기 때문에 그룹별로 1인당 부담금이 불균등했지만 이 제안은 받아들여졌다.
이 단계에서 도입된 다른 문제해결의 상위목표에는 줄다리기의 줄을 공동으로 사용하는 것, 두 그룹의 소년들이 '우연히' 두 그룹의 식량을 운반하는 트럭을 발견하는 것 등이 있었다. 이러한 상위목표를 공동으로 해결하면서 그룹 간 갈등이 줄어들었다. 캠프 마지막 날은 아침과 점심식사 때, 그룹별 좌석배치가 상당히 많이 뒤섞여 있었다.
RCT(Realistic conflict theory)로 불리는 현실적 갈등이론은 위에서 소개한 무자퍼 셰리프 교수가 수행한 고전적인 로버스 동굴실험을 통해 확고해졌고, 핵심사항은 다음 세가지다.
첫째, 그룹이 한정된 자원을 두고 경쟁한다고 인식하면 적대감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둘째, 경쟁을 통해 그룹은 '우리(인그룹) VS 너희(아웃그룹)’라는 강한 의식을 갖게 된다. 이러한 구분은 부정적인 고정관념과 적대감의 증가로 이어진다.
셋째, 상충하는 그룹이 어느 그룹도 혼자서는 달성할 수 없는 목표를 위해 협력할 때 그룹 간 적대감을 줄일 수 있다. 이러한 목표는 더 작은 개별목표를 대체하고 협력을 장려한다.
건전한 경쟁을 통한 조직의 상향평준화
로버스 동굴에서 일어난 사건은 사람들을 괴롭히는 갈등의 유형을 모방했다. 이 갈등에 대한 가장 간단한 설명은 ‘경쟁’이다. 낯선 사람들을 그룹에 배정하고 그룹을 경쟁에 내몰고 국물처럼 휘저으면 바로 ‘갈등’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조직을 파국으로 모는 갈등상황을 굳이 만들고 싶다면 동일한 제품, 서비스를 가지고 서로 경쟁시키면 된다.
하지만 집안싸움을 원하는 기업은 없을 것이다. 본연의 취지와는 다르게 집안싸움에 이른 것일 뿐이다. 우리가 원하는 건 건전한 경쟁이다. 적당한 긴장관계를 유지하면서 서로 간에 자극을 주고, 이를 통해 조직의 상향평준화를 이루는 것이 조직의 목표이다. 그렇다면, 건전한 경쟁이란 어떤 환경에서 만들어 지는 것일까?
독일 빌레펠트대학교의 군터 뒤크Gunter Dueck 교수는 『우리는 왜 집단에서 바보가 되었는가?』라는 책에서 상향평준화의 방법을 크게 1.건전한 경쟁과 자극, 2.이런 분위기를 지키기 위한 동료압박Peer Pressure에 두었다. 뒤크 교수의 주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집단의 천재성이나 조직의 상향평준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구성원들 상호간에 건전한 경쟁의식과 상호자극이 전제되어야 한다.
2 이런 분위기를 만들어 주기 위해서는 2/3이상의 구성원들이 자연스럽게 경쟁과 자극에 대한 대화를 스스럼없이 주고받으며 즐기는 조직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한다.
3 이 정도의 상황이 되면 누가 들어와도 동료압박에 의해 자연스럽게 조직의 분위기에 동화되고 스스로도 성장을 위해 노력하게 된다
뒤크 교수의 말처럼 조직의 상향평준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건전한 경쟁과 상호자극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 지금이라도 멀티레이블이 갖는 본질적 장점, 즉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을 만들어 내는 활동이 이루어져야 한다. 조직은 그런 활동들이 더욱 더 활발하게 발생하도록 도와야 하는 것이지, 같은 식구끼리 치킨게임을 하도록 방조해서는 안 된다. “같은 식구의 호주머니를 터는 더러운 짓거리는 하지 말자!”는 민희진씨의 목소리가 훨씬 설득력을 얻는 이유이다.
글쓴이: 신경수 조직심리박사 (지속성장연구소장 / 인간개발연구원 부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