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이슈중에서 사회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는 것,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것, 등에 대해 人事의 시각에서 분석하는 코너입니다. 오늘은 「한경글로벌인재포럼 2024」에서 발표 예정인 ‘즐거움과 창의력’에 대한 이슈를 가지고 글을 구성해 보았습니다.
“만남은 잡담으로 이어지고,
잡담은 아이디어의 발산으로 이어진다!”
한국경제신문의 요청
HR에 있는 사람에게 있어서 한국경제신문은 조선일보보다 더 강한 파워를 가지고 있는 언론매체라고 말할 수 있다. 경제지라는 카테고리에서만 비교해 본다면 경쟁사인 매일경제신문이 있긴 하지만, 경제라는 전체적인 카테고리가 아닌 HR이라는 영역만을 가지고 이야기한다면 매경보다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그들이 내세우는 대표적 포럼이 ‘한경글로벌인재포럼’이다. 매일경제에 있는 ‘매경지식포럼’처럼 한경에는 ‘한경글로벌인재포럼’이 있다. 한경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성격에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포럼을 만들었고 올해가 벌써 19회째이다. 나는 작년에 처음 이 포럼에 참석을 했다. 작년에는 ‘글로벌 뉴트렌드 ISO-30414’의 제목을 가지고 A-3세션을 맡아서 좌장 역할을 수행했다.
올해의 주제는 ‘조직문화’다. ‘조직문화와 창의력’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스피치를 해 주면 고맙겠다는 요청을 받았다. “조직문화는 당연히 신박사님이지요!”라는 말에 나도 모르게 마음이 관대해 지면서 해서는 안 될 ‘수락’을 하고 말았다. 여기서 ‘해서는 안 될’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포럼기간이 하필이면 일본 도쿄에서 개최 예정인 ISO글로벌 총회와 겹쳐 있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도쿄총회는 절반은 현장참석, 절반은 온라인 참석으로 조율이 되어 ‘한경글로벌인재포럼’은 무사히 참석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이 요청한 주제를 가지고 원고작성에 들어갔다. 이 글은 11월1일 예정된 ‘한경글로벌인재포럼’에서 발표할 내용을 모토로 평소 생각했던 ‘조직문화와 창의력’이라는 테마에 대해 나름대로의 생각을 정리해 본 글이다.
창의력의 원천은 ‘놀이’이다.
나는 요새 비트겐슈타인(Wittgenstein: 오스트리아 출신의 영국철학자로서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철학자중의 한명이다)의 연구에 푹 빠져 있다. 비트겐슈타인은 ‘언어게임’이라는 단어를 만들어 유명세를 탄 인물이다. 그가 말한 '언어게임'이라는 개념은 독일어로는 'Sprachspiel'이라고 쓴다. 앞의 단어인 Sprache는 언어라는 뜻이고 Spiel은 게임을 의미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Spiel은 놀이, 연기, 연극 등을 의미한다. 비트겐슈타인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의사소통을 Sprachspiel로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업무상의 커뮤니케이션도 Sprachspiel로 생각할 수 있다. 규칙을 만들거나 역할을 연기한다는 의미에서, 일에도 Spiel=게임이나 놀이나 연기의 요소가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Sprachspiel이 게임이나 놀이 연기는 아니다.
비트겐슈타인의 언어게임도 재미 있지만, 놀이를 본격적인 철학의 개념으로 끌어 들인 사람은 요한 호이징가이다. 호이징가(Huizinga: 네델란드의 역사학자)라는 이름을 말하면 대부분은 처음 듣는 이름이라고 생각할 지 모르겠지만, 1938년에 ‘호모 루덴스’를 발표한 사람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호이징가는 호모 루덴스를 통해 놀이가 문화에 어떻게 영향을 끼쳤는지를 설명했다.
호이징가는 인간의 문화는 원래 놀이에서 생겨난 것이라고 말했다. "태초에 놀이가 있었다"라고 말한 것처럼 호이징가는 놀이야말로 크리에이티브의 원천이라고 생각했다. 인간은 놀이에 의해 기존의 형태에서 벗어나 새로운 무언가를 낳고, 정해진 역할에서 벗어나 새로운 역할을 만들어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로제 카유아(Roger Caillois: 프랑스 평론가이자 사회학자)라는 사람이 있다. 그는 호이징가의 사상을 존중하면서도 그에 대해 비판적인 사고를 내 놓았다. 카유아는 1958년에 『놀이와 인간』이라는 책을 통해 놀이가 갖는 불변의 성질로서 '경쟁(競爭)·운(運)·모의(模擬)·현훈(眩暈)' 4개를 제시했다. 재미있는 것은 현훈이 여기에 들어 있다는 것이다. 현훈에서 말하는 놀이란 예를 들면 몸이 앞뒤로 움직이는 그네 놀이와 같은 것이다. 어른으로 치면 술에 취해서 몸이 흔들리는 상태를 말한다.
놀이는 편안한 안정감을 주는 ‘피난처’여야 한다.
호이징가나 카유아 혹은 앞서 소개한 사람들이 놀이에 대해 다양하게 말하고 있지만 비즈니스의 현장에 있는 우리들에게 있어 특히 중요한 것이 몇 가지가 있다.
본래 놀이라는 것은 일상생활이나 일과는 상관없는 것으로 일상이나 일과는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놀이 자체가 목적이며 놀이 그 자체가 사람을 사로잡는 것이다. 이 점에서 놀이와 일은 분명하게 나뉜다.
그리고 놀이에는 본래 ‘단락’이라는 게 있다. 놀이는 전형적으로 단락 지어진 시공간 속에서 행해지는 것이다. 예를 들면, 아이는 놀이터에서 놀지만 놀이터를 떠나면 놀이를 멈추게 되어 있다. 이 때 자유롭게 중단할 수 있는 것이 놀이 조건 중의 하나이다. 인간관계 때문에 쉽게 그만둘 수 없거나 게임 중독이 되거나 하면 더 이상 놀이가 아니다.
그 다음으로 놀이에는 ‘안전과 안심’이 필요하다. 미국의 유명한 임상 심리학자인 닐 클락 워렌(Neil Clark Warren)은 “머무는 장소가 부담이 되고 심적으로 압박감을 느낄 때, 더 이상 놀이가 아니다. 근처에 엄마가 있다고 느끼며 놀고 있는 아이처럼 편안함을 느껴야 놀이가 된다”고 말했다. 편안함과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장소가 아니라면 안심하고 놀 수 없다는 말이다. 아이는 보호자가 지켜보고 있기 때문에 놀이에 집중해서 놀 수가 있다는 말이다.
카유아는 『놀이와 인간』이라는 책에서 “우리의 일상생활은 수많은 위험을 각오해야 하는 ‘정글'이며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서 어려움, 재난, 불운에 맞서 싸워야 한다. 하지만 놀이에는 싫으면 언제든지 그만 둘 수 있는 자유가 있다”고 말했다. 그런 면에서 놀이는 일종의 ‘피난처’ 같은 곳인지도 모른다. 확실히 어른들의 놀이에는 피난처와 같은 일시적인 현실 도피의 성격도 있다고 볼 수 있다.
놀이와 잡담은 회의실과 사무실의 중간지대에서 일어난다
위의 상황을 참고로 ‘어른들의 놀이’에 대해서 생각해 보도록 하자. 어른의 경우, 심적으로 여유 있는 상황이 많지가 않다. 이는 순수한 마음으로 놀 수 있는 상황이 많지 않다는 의미이다. 예를 들어, 골프를 치러 가는 상황을 상상해 보자. 설령 그 골프가 접대 골프가 아니어도 불편한 요소들이 도처에 깔려 있다. 놀이인 듯한 골프가 순수한 플레이로 진행되기가 쉽지가 않다. 다른 놀이도 마찬가지다.
비트겐슈타인은 놀이의 규칙은 모호하다고 말했다. 그는 유명한 저서 『철학탐구』에서 “우리가 Spiel을 할 때에는 흐름 속에서 규칙이 생기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그런 흐름속에서 규칙을 바꾸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것은 어린이들 놀이의 경우이며, 스포츠나 게임과 같은 어른들의 놀이에서는 변경해서는 안되는 규칙들이 상당히 많이 정해져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어른들은 마음껏 놀 수가 없다.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놀이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른들의 불순한 놀이가 직장이라는 환경에서는 무엇으로 표현이 될까? 그건 뭐니뭐니 해도 ‘잡담’이다. 잡담에는 목적이 없다. 그 자체가 즐거움이며 언제든지 중단할 수가 있다. 잡담은 회의실과 사무실의 중간지대에 있는 복도나 탕비실, 휴게실이나 흡연실 등에서 조금씩 일어난다.
또한 일과 휴식의 중간지대에 존재하는 술집이나 사원여행, 동료들과 함께하는 골프와 스포츠 등의 장소에서도 일어난다. 이런 중간지대는 어른들에게 있어서는 어느 정도는 안전한 장소이다. 직장 내의 다른 장소에서는 잡담이 발생하기가 쉽지가 않다. 어른들의 일상적인 놀이는 이렇게 직장내의 중간지대, 일과 휴식의 중간지대에서 생겨날 수밖에 없다.
최근에 젊은 주니어 사원들의 입에서 “술자리는 업무의 연장인가요? 즐거운 놀이터인가요?”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나는 이것을 “흑백논리로 따지면 더 이상 놀이가 아니다”는 말로 답변을 했다. 왜냐하면, 술자리는 애매하면서도 확실하지 않은 미묘한 장소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술자리는 업무 중에는 불 수 없는 의외의 일면을 동료들에게서 발견하는 장소이기 때문에 이런 모습을 볼 수 있다면 놀이가 되지만 서로가 경계하며 이런 저런 신경을 쓴다면 그건 업무의 일환이라고 보아 마땅하다.
이런 모습을 '직장 여백'이라고 부른다. 많은 회사에서 ‘직장 여백’이 잡담을 일으키고 직장 내의 새로운 움직임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놀이야말로 창의성의 원천이기 때문에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재택이나 원격근무의 상황에서는 잡담이 어렵다. 이유는 온라인상에서는 만남이 없기 때문이다. 오래전 모 기업의 임원으로부터 자신들은 평소 재택근무가 많기 때문에 막상 현장에서 모였을 때 서로 익숙해질 때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을 들었다. 진지한 대화로 들어가기까지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아마도 평소 사무실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적다 보니 얼굴에 대한 친숙함을 느끼기 힘들어서 일 것이다. 잡담을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적다 보니 깊은 인간관계를 갖기 힘들다. 그러다 보니 진심 어린 이야기를 나누기가 어렵다.
만남과 잡담을 창출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직장 여백’은 전반적으로 줄어드는 경향에 있다. 직장내 술자리도 줄어들고 흡연장소도 점점 없어져 간다. 이런 것들이 줄어든 배경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확실히 흡연은 몸에 좋지 않다. 주위 사람들에게도 피해를 끼친다. 게다가 담배를 피우는 사람만이 자주 휴식시간을 갖는 것도 불공평하다.
음주를 메인으로 하는 회식은 건강에도 해롭고 상사 갑질의 주요 무대이기도 하다. 사원여행 등의 행사 또한 낭비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그럴 돈이 있으면 그냥 현금으로 달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것들을 종합해 보면, 잡담이나 놀이는 백해무익한 제거대상 1순위의 행동으로 비쳐진다. 회사에 따라서는 생산성이나 효율성과는 정반대의 것들로 치부하는 곳도 있다. 언젠가부터 만남이 줄어들면서 잡담도 줄어들고 재미와 즐거움도 사라져 버렸다.
‘직장 여백’이 줄어들고 잡담이 줄어들면서 창의력도 상실되어 가고 있다. 여백이나 놀이가 없어지면서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을 때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아 발생한다. 결코 바람직한 방향은 아니다. 여백과 놀이를 죽일 것이 아니라, 시대상황에 맞추어 진화시켜 가야 한다. 우연한 만남과 커뮤니케이션이 발생할 수 있는 새로운 장치, 만남과 놀이가 생기는 새로운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또한 직장에서의 놀이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안심·안전을 빠뜨릴 수 없다. 어른들에게 아이들만큼의 안전감을 느끼게 하는 것은 어렵겠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안심감을 느낄 수 있는 장소를 만들어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실력을 발휘하거나, 좋아하는 업무에 몰두하거나, 새로운 것에 도전하거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조직분위기를 만들 수가 없다.
‘고용보장’이라는 단어가 사라진 지도 오래되었다.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이야기라고 말하지만, 그렇다고 일부러 경쟁을 과하게 일으켜서 누군가를 밀어내려 한다면 즐거운 분이기 또한 줄어들 것이다. 필자도 너무 치열한 경쟁 속에 있는 것보다, 안심과 안전이 확보되고 있는 쪽이 오히려 효과성 높은 성과물이나 질 높은 연구결과를 더 많이 만들어 낸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에 하나이다. 놀이터와 같은 편안한 마음을 유지할 있는 직장 만들기가 중요하다.
즐거움이 없는 조직에서 창의력은 죽어간다.
끝으로 즐거움을 만드는 조직분위기에서 창의력은 어느 정도 생기는 지를 분석한 연구결과를 첨부해 본다. 아래의 도표는 재미 즐거움을 주기 위한 회사의 노력이 구성원들의 창의력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한 설문결과이다.
【표 1】 조직분위기 개선을 위한 노력이 구성원의 아이디어 제안에 미치는 영향
위의 도표에서도 나와있듯이 구성원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한 노력이 낮은 기업에서는 구성원들의 창의성 지수도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조직분위기 개선에 관심이 없는 기업에서는 업무개선을 위한 아이디어 제안이 낮다(88.1%)와 높다(11.9%) 사이에 8배의 차이를 보였다.
반대로 조직분위기 개선에 신경을 쓰는 기업에서는 아이디어 제안이 높은 편이다(69.6%)가 낮은 편이다(30.4%)보다 2배 정도 더 높게 나왔다. 창의력은 즐거운 조직에서는 2배 더 많이 나왔고, 어둡고 불안정한 조직에서는 -8배의 감소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시 말해서, 창의력은 조직분위기가 좋은 회사에서 미치는 영향보다 안 좋은 회사에서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이 더 크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글쓴이: 신경수 조직심리박사 (지속성장연구소장 / 인간개발연구원 부원장)
조직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이슈중에서 사회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는 것,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것, 등에 대해 人事의 시각에서 분석하는 코너입니다. 오늘은 「한경글로벌인재포럼 2024」에서 발표 예정인 ‘즐거움과 창의력’에 대한 이슈를 가지고 글을 구성해 보았습니다.
“만남은 잡담으로 이어지고,
잡담은 아이디어의 발산으로 이어진다!”
한국경제신문의 요청
HR에 있는 사람에게 있어서 한국경제신문은 조선일보보다 더 강한 파워를 가지고 있는 언론매체라고 말할 수 있다. 경제지라는 카테고리에서만 비교해 본다면 경쟁사인 매일경제신문이 있긴 하지만, 경제라는 전체적인 카테고리가 아닌 HR이라는 영역만을 가지고 이야기한다면 매경보다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그들이 내세우는 대표적 포럼이 ‘한경글로벌인재포럼’이다. 매일경제에 있는 ‘매경지식포럼’처럼 한경에는 ‘한경글로벌인재포럼’이 있다. 한경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성격에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포럼을 만들었고 올해가 벌써 19회째이다. 나는 작년에 처음 이 포럼에 참석을 했다. 작년에는 ‘글로벌 뉴트렌드 ISO-30414’의 제목을 가지고 A-3세션을 맡아서 좌장 역할을 수행했다.
올해의 주제는 ‘조직문화’다. ‘조직문화와 창의력’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스피치를 해 주면 고맙겠다는 요청을 받았다. “조직문화는 당연히 신박사님이지요!”라는 말에 나도 모르게 마음이 관대해 지면서 해서는 안 될 ‘수락’을 하고 말았다. 여기서 ‘해서는 안 될’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포럼기간이 하필이면 일본 도쿄에서 개최 예정인 ISO글로벌 총회와 겹쳐 있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도쿄총회는 절반은 현장참석, 절반은 온라인 참석으로 조율이 되어 ‘한경글로벌인재포럼’은 무사히 참석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이 요청한 주제를 가지고 원고작성에 들어갔다. 이 글은 11월1일 예정된 ‘한경글로벌인재포럼’에서 발표할 내용을 모토로 평소 생각했던 ‘조직문화와 창의력’이라는 테마에 대해 나름대로의 생각을 정리해 본 글이다.
창의력의 원천은 ‘놀이’이다.
나는 요새 비트겐슈타인(Wittgenstein: 오스트리아 출신의 영국철학자로서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철학자중의 한명이다)의 연구에 푹 빠져 있다. 비트겐슈타인은 ‘언어게임’이라는 단어를 만들어 유명세를 탄 인물이다. 그가 말한 '언어게임'이라는 개념은 독일어로는 'Sprachspiel'이라고 쓴다. 앞의 단어인 Sprache는 언어라는 뜻이고 Spiel은 게임을 의미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Spiel은 놀이, 연기, 연극 등을 의미한다. 비트겐슈타인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의사소통을 Sprachspiel로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업무상의 커뮤니케이션도 Sprachspiel로 생각할 수 있다. 규칙을 만들거나 역할을 연기한다는 의미에서, 일에도 Spiel=게임이나 놀이나 연기의 요소가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Sprachspiel이 게임이나 놀이 연기는 아니다.
비트겐슈타인의 언어게임도 재미 있지만, 놀이를 본격적인 철학의 개념으로 끌어 들인 사람은 요한 호이징가이다. 호이징가(Huizinga: 네델란드의 역사학자)라는 이름을 말하면 대부분은 처음 듣는 이름이라고 생각할 지 모르겠지만, 1938년에 ‘호모 루덴스’를 발표한 사람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호이징가는 호모 루덴스를 통해 놀이가 문화에 어떻게 영향을 끼쳤는지를 설명했다.
호이징가는 인간의 문화는 원래 놀이에서 생겨난 것이라고 말했다. "태초에 놀이가 있었다"라고 말한 것처럼 호이징가는 놀이야말로 크리에이티브의 원천이라고 생각했다. 인간은 놀이에 의해 기존의 형태에서 벗어나 새로운 무언가를 낳고, 정해진 역할에서 벗어나 새로운 역할을 만들어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로제 카유아(Roger Caillois: 프랑스 평론가이자 사회학자)라는 사람이 있다. 그는 호이징가의 사상을 존중하면서도 그에 대해 비판적인 사고를 내 놓았다. 카유아는 1958년에 『놀이와 인간』이라는 책을 통해 놀이가 갖는 불변의 성질로서 '경쟁(競爭)·운(運)·모의(模擬)·현훈(眩暈)' 4개를 제시했다. 재미있는 것은 현훈이 여기에 들어 있다는 것이다. 현훈에서 말하는 놀이란 예를 들면 몸이 앞뒤로 움직이는 그네 놀이와 같은 것이다. 어른으로 치면 술에 취해서 몸이 흔들리는 상태를 말한다.
놀이는 편안한 안정감을 주는 ‘피난처’여야 한다.
호이징가나 카유아 혹은 앞서 소개한 사람들이 놀이에 대해 다양하게 말하고 있지만 비즈니스의 현장에 있는 우리들에게 있어 특히 중요한 것이 몇 가지가 있다.
본래 놀이라는 것은 일상생활이나 일과는 상관없는 것으로 일상이나 일과는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놀이 자체가 목적이며 놀이 그 자체가 사람을 사로잡는 것이다. 이 점에서 놀이와 일은 분명하게 나뉜다.
그리고 놀이에는 본래 ‘단락’이라는 게 있다. 놀이는 전형적으로 단락 지어진 시공간 속에서 행해지는 것이다. 예를 들면, 아이는 놀이터에서 놀지만 놀이터를 떠나면 놀이를 멈추게 되어 있다. 이 때 자유롭게 중단할 수 있는 것이 놀이 조건 중의 하나이다. 인간관계 때문에 쉽게 그만둘 수 없거나 게임 중독이 되거나 하면 더 이상 놀이가 아니다.
그 다음으로 놀이에는 ‘안전과 안심’이 필요하다. 미국의 유명한 임상 심리학자인 닐 클락 워렌(Neil Clark Warren)은 “머무는 장소가 부담이 되고 심적으로 압박감을 느낄 때, 더 이상 놀이가 아니다. 근처에 엄마가 있다고 느끼며 놀고 있는 아이처럼 편안함을 느껴야 놀이가 된다”고 말했다. 편안함과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장소가 아니라면 안심하고 놀 수 없다는 말이다. 아이는 보호자가 지켜보고 있기 때문에 놀이에 집중해서 놀 수가 있다는 말이다.
카유아는 『놀이와 인간』이라는 책에서 “우리의 일상생활은 수많은 위험을 각오해야 하는 ‘정글'이며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서 어려움, 재난, 불운에 맞서 싸워야 한다. 하지만 놀이에는 싫으면 언제든지 그만 둘 수 있는 자유가 있다”고 말했다. 그런 면에서 놀이는 일종의 ‘피난처’ 같은 곳인지도 모른다. 확실히 어른들의 놀이에는 피난처와 같은 일시적인 현실 도피의 성격도 있다고 볼 수 있다.
놀이와 잡담은 회의실과 사무실의 중간지대에서 일어난다
위의 상황을 참고로 ‘어른들의 놀이’에 대해서 생각해 보도록 하자. 어른의 경우, 심적으로 여유 있는 상황이 많지가 않다. 이는 순수한 마음으로 놀 수 있는 상황이 많지 않다는 의미이다. 예를 들어, 골프를 치러 가는 상황을 상상해 보자. 설령 그 골프가 접대 골프가 아니어도 불편한 요소들이 도처에 깔려 있다. 놀이인 듯한 골프가 순수한 플레이로 진행되기가 쉽지가 않다. 다른 놀이도 마찬가지다.
비트겐슈타인은 놀이의 규칙은 모호하다고 말했다. 그는 유명한 저서 『철학탐구』에서 “우리가 Spiel을 할 때에는 흐름 속에서 규칙이 생기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그런 흐름속에서 규칙을 바꾸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것은 어린이들 놀이의 경우이며, 스포츠나 게임과 같은 어른들의 놀이에서는 변경해서는 안되는 규칙들이 상당히 많이 정해져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어른들은 마음껏 놀 수가 없다.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놀이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른들의 불순한 놀이가 직장이라는 환경에서는 무엇으로 표현이 될까? 그건 뭐니뭐니 해도 ‘잡담’이다. 잡담에는 목적이 없다. 그 자체가 즐거움이며 언제든지 중단할 수가 있다. 잡담은 회의실과 사무실의 중간지대에 있는 복도나 탕비실, 휴게실이나 흡연실 등에서 조금씩 일어난다.
또한 일과 휴식의 중간지대에 존재하는 술집이나 사원여행, 동료들과 함께하는 골프와 스포츠 등의 장소에서도 일어난다. 이런 중간지대는 어른들에게 있어서는 어느 정도는 안전한 장소이다. 직장 내의 다른 장소에서는 잡담이 발생하기가 쉽지가 않다. 어른들의 일상적인 놀이는 이렇게 직장내의 중간지대, 일과 휴식의 중간지대에서 생겨날 수밖에 없다.
최근에 젊은 주니어 사원들의 입에서 “술자리는 업무의 연장인가요? 즐거운 놀이터인가요?”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나는 이것을 “흑백논리로 따지면 더 이상 놀이가 아니다”는 말로 답변을 했다. 왜냐하면, 술자리는 애매하면서도 확실하지 않은 미묘한 장소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술자리는 업무 중에는 불 수 없는 의외의 일면을 동료들에게서 발견하는 장소이기 때문에 이런 모습을 볼 수 있다면 놀이가 되지만 서로가 경계하며 이런 저런 신경을 쓴다면 그건 업무의 일환이라고 보아 마땅하다.
이런 모습을 '직장 여백'이라고 부른다. 많은 회사에서 ‘직장 여백’이 잡담을 일으키고 직장 내의 새로운 움직임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놀이야말로 창의성의 원천이기 때문에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재택이나 원격근무의 상황에서는 잡담이 어렵다. 이유는 온라인상에서는 만남이 없기 때문이다. 오래전 모 기업의 임원으로부터 자신들은 평소 재택근무가 많기 때문에 막상 현장에서 모였을 때 서로 익숙해질 때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을 들었다. 진지한 대화로 들어가기까지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아마도 평소 사무실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적다 보니 얼굴에 대한 친숙함을 느끼기 힘들어서 일 것이다. 잡담을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적다 보니 깊은 인간관계를 갖기 힘들다. 그러다 보니 진심 어린 이야기를 나누기가 어렵다.
만남과 잡담을 창출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직장 여백’은 전반적으로 줄어드는 경향에 있다. 직장내 술자리도 줄어들고 흡연장소도 점점 없어져 간다. 이런 것들이 줄어든 배경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확실히 흡연은 몸에 좋지 않다. 주위 사람들에게도 피해를 끼친다. 게다가 담배를 피우는 사람만이 자주 휴식시간을 갖는 것도 불공평하다.
음주를 메인으로 하는 회식은 건강에도 해롭고 상사 갑질의 주요 무대이기도 하다. 사원여행 등의 행사 또한 낭비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그럴 돈이 있으면 그냥 현금으로 달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것들을 종합해 보면, 잡담이나 놀이는 백해무익한 제거대상 1순위의 행동으로 비쳐진다. 회사에 따라서는 생산성이나 효율성과는 정반대의 것들로 치부하는 곳도 있다. 언젠가부터 만남이 줄어들면서 잡담도 줄어들고 재미와 즐거움도 사라져 버렸다.
‘직장 여백’이 줄어들고 잡담이 줄어들면서 창의력도 상실되어 가고 있다. 여백이나 놀이가 없어지면서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을 때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아 발생한다. 결코 바람직한 방향은 아니다. 여백과 놀이를 죽일 것이 아니라, 시대상황에 맞추어 진화시켜 가야 한다. 우연한 만남과 커뮤니케이션이 발생할 수 있는 새로운 장치, 만남과 놀이가 생기는 새로운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또한 직장에서의 놀이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안심·안전을 빠뜨릴 수 없다. 어른들에게 아이들만큼의 안전감을 느끼게 하는 것은 어렵겠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안심감을 느낄 수 있는 장소를 만들어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실력을 발휘하거나, 좋아하는 업무에 몰두하거나, 새로운 것에 도전하거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조직분위기를 만들 수가 없다.
‘고용보장’이라는 단어가 사라진 지도 오래되었다.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이야기라고 말하지만, 그렇다고 일부러 경쟁을 과하게 일으켜서 누군가를 밀어내려 한다면 즐거운 분이기 또한 줄어들 것이다. 필자도 너무 치열한 경쟁 속에 있는 것보다, 안심과 안전이 확보되고 있는 쪽이 오히려 효과성 높은 성과물이나 질 높은 연구결과를 더 많이 만들어 낸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에 하나이다. 놀이터와 같은 편안한 마음을 유지할 있는 직장 만들기가 중요하다.
즐거움이 없는 조직에서 창의력은 죽어간다.
끝으로 즐거움을 만드는 조직분위기에서 창의력은 어느 정도 생기는 지를 분석한 연구결과를 첨부해 본다. 아래의 도표는 재미 즐거움을 주기 위한 회사의 노력이 구성원들의 창의력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한 설문결과이다.
【표 1】 조직분위기 개선을 위한 노력이 구성원의 아이디어 제안에 미치는 영향
위의 도표에서도 나와있듯이 구성원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한 노력이 낮은 기업에서는 구성원들의 창의성 지수도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조직분위기 개선에 관심이 없는 기업에서는 업무개선을 위한 아이디어 제안이 낮다(88.1%)와 높다(11.9%) 사이에 8배의 차이를 보였다.
반대로 조직분위기 개선에 신경을 쓰는 기업에서는 아이디어 제안이 높은 편이다(69.6%)가 낮은 편이다(30.4%)보다 2배 정도 더 높게 나왔다. 창의력은 즐거운 조직에서는 2배 더 많이 나왔고, 어둡고 불안정한 조직에서는 -8배의 감소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시 말해서, 창의력은 조직분위기가 좋은 회사에서 미치는 영향보다 안 좋은 회사에서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이 더 크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글쓴이: 신경수 조직심리박사 (지속성장연구소장 / 인간개발연구원 부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