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경영이 갈수록 어려운 시대이다. 하지만 이런 어려움속에서도 강인한 사업의지와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자사만의 경쟁력을 확보하며 지속적 성장을 이어가고 있는 기업들도 많다. 본 코너는 이런 기업들을 탐방하여 그들이 겪은 경험담을 듣고, 이를 통해 새로운 희망과 인사이트를 얻기 위해 개설한 공간이다. 이달의 주인공은 청주공항 거점의 항공사 에어로케이 항공의 김상보 부사장이다.
“소선(小善)은 대악(大惡)과 닮아 있고, 대선(大善)은 비정(非情)과 닮아있다.”

Q1. 회사소개를 해달라.
에어로케이항공(Aero K Airlines)는 2016년에 설립된 스타트업 저비용 항공사 (LCC, Low Cost Carrier)랍니다. 설립 초기부터 세계적으로 성공한 LCC의 선진 운영방식을 도입하고, 이에 더하여 항공사 본연의 이동수단을 뛰어넘어 고객의 삶의 여정(Life Journey) 전반에 걸쳐 새로운 고객 경험을 제공하는 플랫폼 비즈니스를 목표로 하고 있어요. 에어로케이는 대한민국의 정중앙에 위치한 청주공항을 모(母)공항으로 하는 국내 유일의 항공사로서, 중부권 소비자들의 교통 편익을 제공할 뿐 아니라, 행정수도의 관문공항으로서의 성장을 함께 도모하고 있습니다.
2021년 항공기 1대, 청주-제주 1개의 노선으로 첫 유상비행을 시작한 이후 2025년 현재는 총 7대의 항공기를 운영하며 제주를 비롯하여 일본, 대만, 중국, 동남아 등 약 17개의 국제노선에 운항하고 있어요. 우리는 앞으로도 지속적인 항공기 도입 및 노선을 확대해 나가고, 사람과 장소, 파트너들을 연결해 나가는 동북아시아 최고의 항공사가 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답니다.
Q2. 자기소개를 좀 해달라. 개인 이력이 궁금하다.
저의 개인 이력은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단순하고 보잘것 없어요. 대기업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한 평범한 직장인이였고, 에어로케이항공이 저의 두번째 회사였으니까요. 그런데 단 두 곳의 회사를 통해 경험한 것들은 조금은 남달랐던 것 같아요. 2개의 회사에서 5~6개의 회사에서 경험할 일들을 했다고 해야 할까요?
경력 전반에 걸쳐 가장 많은 일을 한 것은 광범위한 의미의 ‘마케팅’과 ‘브랜딩’이였어요.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저는 자동차공학을 전공한 공학도였습니다.
천만 다행으로, 공학도였지만 연구에 소질이 없던 저는 첫 업무의 시작을 타이어 제조사에서 연구소가 아닌 마케팅부문 산하에서 그나마도 공대생들이 많이 모여있는 상품기획팀에서 시작할 수 있었어요. 시장을 조사하고, 기존 제품의 라이프사이클을 관리하며, 신상품을 만들기 위한 시장조사, 테스트 관리, 그리고 시장 내 포지셔닝(Positioning)과 차별적 판매 요소(USP, Unique Selling Point)를 만들어내는 팀이였죠. 연구소, 국내외 영업지점, 도매점, 소매점, 디자인팀, 마케팅팀 등 사내 모든 부서와 커뮤니케이션하면서 개별 제품에 있어 생애주기를 모두 경험해 볼 수 있는 소중한 시작점이였지요.
이후 마케팅 전략팀으로 부서를 옮기게 되었는데, 당시 회사는 글로벌 핵심 시장인 미국, 중국, 유럽에서의 경쟁력 확보를 통한 사업확장을 위해 회사설립 이례 처음으로 해외 유명 컨설팅 펌과 함께 글로벌 컨설팅 프로젝트 진행을 결정하였습니다. 당시 대기업들이 보스턴컨설팅그룹(BCG), 매킨지(McKinsey)등과 같은 해외 유명 컨설팅 회사와 프로젝트를 경쟁적으로 진행하던 시기였는데, 운이 좋게도 상근 프로젝트 인원으로 선발되어 유럽지역의 Leader로 참여할 수 있게 되었어요.
거의 1년 365일을 유능한 컨설턴트들과 일하면서 밑바닥부터 결론을 도출하기까지 돈을 주고도 배우기 힘든 글로벌 Top 컨설팅 회사의 업무 전 과정을 밀접하게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경험 덕분이였는지, 컨설팅 이후 결과물의 실행을 담당하는 후속 업무들을 진행할 수 있었고, 이어서 회사의 북미법인의 마케팅을 총괄하는 팀장으로 미국 주재원 생활을 하며 또 다른 경험을 접할 수 있게 되었어요. 돌이켜 보면 다시한번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주재원은 보통 한국 본사와 현지 인력들의 교두보 역할만 하는것이 대부분이라 현장 경험보다는 본사 업무보고가 주 업무인데, 임기 도중에 현지 마케팅 부사장이 나가면서 Marketing VP의 업무를 대행했어야 했죠.
주재원으로서 경험할 수 없는 깊이있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고 해야 하나요. 정말 미국회사에 새롭게 취직해서 일하는 것처럼 해외시장에서 좌충우돌하며 밑바닥부터 새로운 시도를 해볼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였어요. 미국 전역을 출장다니면서 소비자 경험 재설계, 다양한 브랜딩 활동, B2B와 B2C 마케팅 등 큰 자산을 얻을 수 있었죠.
이후 2016년 한국으로 복귀하던 시점, 엉뚱하게도 신규 스타트업 항공사 설립에 함께 하자는 제안을 받게 되었습니다. 너무나도 생뚱 맞았지만, 단 일주일동안 고민하고 동참하기로 결정을 했어요. 설립 멤버들의 설득도 있었지만 낯설고도 가슴설레는 느낌에 큰 고민없이 다시한번 밑바닥으로 뛰어든거죠.
항공사의 브랜딩부터 항공사업면서 획득을 위한 사업계획 수립과 대관업무, PR, 투자 유치 지원까지 전 영역에 걸쳐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만 했습니다. 할 사람이 없었으니까요.
어느덧 에어로케이에서 10년이라는 시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마케팅, 브랜딩 & 컬쳐, 영업, 경영(인사, 재무, 전략기획, 경영지원)까지 그간 경험했던 경험 이상의 노력을 통해 오늘까지 생존해 있는 것 같아요.
모든것을 종합해 보면 저의 이력은 결국 특별할 것 없는 운이 좋아 ‘바닥’을 여러 번 경험한 ‘밑바닥 전문가’라 요약할 수 있겠네요.
Q3. 본인 인생에서 가장 큰 변곡점이나 전환점이 되었던 사건은 무엇인가?
가장 큰 변곡점은 미국 주재원으로 발령이 났던 때라고 생각되요. 당시 저는 국내 경영대학원(MBA)에 막 입학하였었고, 상대적으로 노총각이였던 37살 즈음이였습니다. 미국 주재원은 누구나(특히 취학 자녀가 있는 직원이라면) 바라던 굉장히 선호가 되던 자리였는데, 회사에서 저에게 ‘미국 주재원으로 발령이 날 수도 있다’고 처음 말했을 때 정중하게 거절을 했었죠.
경력 관리를 위해 MBA도 꼭 마무리를 하고 싶었고, 결혼을 해야하는 시점에 미국으로 4-5년을 혼자 나간다면 평생 노총각으로 살 것 같은 두려움 반, 그리고 해외에서 생활해 본 적이 없었기에 느껴지는 두려움도 있었던 것 같아요. 소식을 전했던 임원은 아마도 제가 너무도 기뻐하며 감사할 것이라 생각하셨을텐데, 의외의 반응에 크게 황당해 하셨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회사에서는 ‘황당’한 저의 인사발령 거절에 다른 후보자를 물색했는데, 결국 돌고 돌아 다시 저에게 최후 통첩을 하면서 ‘회사는 당신을 발령 낼 것이고, 이걸 다시 거절하면 문제가 심각해 질 수 있다’고 귀뜸을 해줬습니다. 결국 주재원 발령이 공지되고 저는 학업을 중단하고 미혼인 채로 미국으로 떠나게 되었죠.
하지만 생각과 다르게 미국에서의 4년은 저에게 매우 큰 변화를 가져다 주었어요. 미국이라는 선진 시장에서 경험한 새로운 업무와 문화는 저의 시야를 넓혀 주었고, 미국에서 지금의 배우자를 만나 결혼도 하게되었죠.
그리고 MBA도 귀국 후 재입학 제도를 활용하여 무사히 학위를 취득할 수 있었답니다. 특히 항공사 설립 참여의 기회 역시 저의 귀국 시점에 딱 맞춰 진행되었고, 초창기 회사 스타팅 멤버로 참여했던 인원 중 다수가 외국인이거나 미국 생활을 오래했던 터라 저의 미국에서의 경험이 조직 구성과 성장에 균형감 있게 적용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두려워하고 걱정했던 것들이 오히려 제 인생에 가장 큰 변화를 이끌어낸 원동력이 된 거죠. 그래서 인생은 참 알 수 없는 것 같아요!
Q4. 여기까지 오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꼽으라면 어느 때인가?
에어로케이 설립 후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1년의 준비를 거쳐 항공운송사업면허를 신청하고 국토교통부로부터 ‘반려’처분을 받았던 때 였어요. 회사 설립 초기 투자금도 별로 없고 회사는 신생항공사라 필수전문 인력을 유치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어요. 항공시장은 매우 폐쇄적이였고, 항공사 설립에는 파일럿, 정비사, 객실 승무원, 안전보안, 운항통제 등 반드시 확보해야 하는 전문 인력들이 필요했었죠.
초기 1년동안 투자금을 유치하고, 힘겹게 필수 인력을 영입하면서 비록 아무 자격도 없는 항공 입시생의 위치였지만 돌이켜 보면 사업면허를 준비하던 그 1년이 가장 행복하고 긍정의 에너지로 가득 차 있었던 것 같아요. 적은 인원이였지만 늘 사무실에는 웃음이 끊이지 않았고, 타 항공사에서 이직한 경력 직원들도 기존의 항공사와 다른 기업 문화와 시스템으로 맞이하게 될 미래에 대한 도전에 기대감과 희망이 가득차 있었습니다.
철저한 준비 끝에 2017년 6월 사업면허를 신청하고 6개월 간의 심사 과정을 거치면서 충분히 사업면허를 받을 거라 기대하고 있었어요. 자본금의 규모도, 대기업을 포함한 양질의 투자자 구성도, 그리고 선진 LCC의 모델과 한국 항공 시장을 철저히 연구하고 이를 반영한 사업계획서도 모두 완벽해 보였거든요. 아직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2017년 12월 크리스마스 저녁, 국토부로부터 사업면허 신청에 대한 ‘반려’라는 심사결과를 전달 받았습니다. 모두가 행복해 하는 함박눈이 쏟아졌던 그림같은 화이트 크리스마스 저녁 서울의 작은 술집에서 씁쓸한 술잔을 기울였습니다.
사업면허 신청의 반려 자체보다도, 반려 이후 사람들의 변화가 더욱 큰 위기였어요. 신청을 하기 이전까지는 모두가 기대와 희망이 가득했지만, 반려 이후 직원들은 의구심과 이전 직장에서의 이직을 후회하기 시작했고, 투자를 했던 대기업은 투자금을 전액 회수하고 회사를 떠났습니다. 회사 직원들의 긍정적인 에너지가 순식간에 강한 부정의 기운으로 바뀌었던 그 시점이 가장 힘들었던 순간으로 꼽힙니다.
물론 다시금 추스리고 조직과 사업계획을 재정비하고, 신규 대체 투자를 유치하면서 재도전 끝에 면허를 받고 오늘에 까지 이르렀지만, 위기의 순간을 대처할 수 있는 인내심과 위기관리 능력, 그리고 압박을 이기고 다시금 도전하는 법을 알게 된 값진 경험이였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어려움을 견뎌내는 굳은살을 가지고 항공사에 전무후무한 타격을 주었던 코로나 시기에도 어떻게든 버텨낼 수 있었던 것 아닐까 싶어요.
Q5. 반대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인가?
재수 끝에 드디어 항공운송사업면허를 받았던 날, 자금적으로 최악의 시기에 추가 투자를 유치하여 기사회생했던 날 등 행복했던 순간은 너무도 많았지만, 가장 가슴벅찬 기쁨과 행복을 느꼈던 때는 에어로케이의 첫 항공기를 실물로 맞이할 때였습니다. 사업면허를 발급받은 날에는 의외로 무덤덤 했어요. 어쩌면 첫 면허 신청에서 반려를 당한 것이 억울하고 아쉬워서 그랬는지 오히려 허탈한 마음도 있었습니다.
면허 발급 이후에도 수도 없는 우여곡절을 겪었어요. 16년에 계약해 두었던 항공기들을 첫 면허 반려 이후 들여올 수 없게 되었고, 면허 발급 이후 겨우 다시 계약했던 3대의 항공기 마저도 Covid-19가 발생하면서 항공시장의 극심한 경색과 함께 모두 도입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죠.
끝이 없을 것 같았던 코로나 시기에 결국 더이상 운항을 미룰 수 없었기에 국제선 운항이 불가했던 최악의 상황속에서 항공기 1대만을 가지고 청주-제주 국내선만을 가지고 영업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해외 항공기 정비 업체에서 비행기 점검과 정비를 실시하고 이미지로만 상상하던 항공기 외장 디자인 작업을 마친 후 청주공항으로 출발할 에어로케이 1호기의 도입식을 준비했어요.
2020년 2월, 청주공항 거점 항공사 에어로케이의 1호기 도입식을 위해 지자체장, 지역 국회의원, 시의원, 도의원, 주요 주주 및 경영진, 언론사 등 VIP들을 초대하고 비행기가 청주공항에 도착하는 저녁 시간에 맞춰 공항 활주로에서 제가 사회를 보는 야외 도입식을 진행하였습니다. 2월 한 겨울의 강추위와 강한 칼바람에 눈까지 날리면서 행사를 위해 세워 둔 텐트가 날라갈 정도였죠.
1호기 도입을 맡은 기장과 관제실이 통신하면서 계획한 시간이 되자 청주공항 밤하늘에 에어로케이의 1호기가 서서히 내려오면서 착륙했던 그 순간에 그동안의 과정과 노력, 시행착오가 생각나며 눈물이 쏟아질 만큼 마음이 울컥 했습니다.
황당하리만큼 주저함 없이 신생 스타트업 항공사를 설립하겠다고 도전했던 무모함과, 위기의 순간 순간마다 마주해야 했던 불신과 의심의 서러운 시선들에도 불구하고, 결국 진짜 항공사를 설립하고 첫 비행기가 영화와 같이 눈과 바람과 추위를 뚫고 내려오는 순간은 평생 절대 잊을 수 없을 것 같아요.

Q6. 사람에 대한 질문이다. 사람을 판단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무엇인가?
사람의 판단 기준은 개인적인 기준 보다는 조직의 기준에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설립부터 지금까지 직´간접적으로 HR의 역할을 맡아오면서 수천명의 인원을 면접을 보거나 수백명의 인원을 가까이에서 관리해오고 있어요.
대기업에서도 사람들을 경험해 보고, 해외에서도 HR 시스템과 외국인들을 경험해 보고, 이번 에어로케이에서 스타트업의 기준으로 소수의 인원으로 시작해서 빠른 속도로 약 600명이 되는 직원들을 마주하게 되면서 사람에 대한 판단 기준이 많이 변해온 것 같아요.
에어로케이를 경험하면서 설립초기, 성장기, 안정기로 나누어 나름 채용 판단의 기준을 만들어 적용하고 있지만 최근들어 채용 시 가장 중점적으로 보고있는 제 나름의 판단 기준을 말씀드려 볼께요.
조직의 성장단계 별 형태, 고경력자와 저경력자의 격차, 기성 세대와 MZ세대의 갈등 등이 공존하는 빠르게 변화하는 기업환경에서 제가 적용하는 공통의 판단 기준은 ‘질문(Question)’이라는 단어로 함축됩니다. 즉, ‘질문을 할 수 있는가?’와 ‘질문을 받을 수 있는가?’ 두가지 관점입니다.
제가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는 조직에서 ‘말하지 않아도, 시키지 않아도 일을 알아서 잘 하는 사람’이거나 ‘시키는 일에 질문하지 않고 군소리 없이 일을 잘 해내는 사람’이 인정받는 사회였던거 같아요.
하지만, 제 경험상 이제는 조직이 작든 크든 질문이 없는 조직과 인원은 도태되는 것을 많이 목격해요. 이 시대는 질문이 없는 직원이나 경영자나 질문을 잘 이끌어 내지 못하는 경영자는 결국 무능함을 의미하고, 질문은 새로움을 발견하고, 갈등을 조정하고, 문제의 본질을 찾아내며, 효율성을 극대화시키는 필수적인 역량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질문’은 사고의 깊이를 나타냅니다. 깊이있는 사고와 이해, 거기에서 찾아지는 결핍이나 도전적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중요한 역할을 질문이 담당한다는 거죠. 구분해 보자면, ‘질문을 할 수 있는가?’의 관점에서는 질문거리가 많은가(호기심, 창의력, 탐구력, 학습능력) / 질문을 할 용기가 있는가(추진력, 사회성, 부족함에 대한 인정) / 질문을 잘 하는가(커뮤니케이션 태도, 효율성, 상호존중)등을 통해 판단해 봅니다.
반면, ‘질문을 받을 수 있는가?’의 관점에서는 질문을 잘 이끌어 내는가(코칭, 커뮤니케이션 태도, 문제 해결의 집요함) / 질문을 잘 견딜 수 있는가 (인내심, 상호존중, 부족함의 인정) / 질문에 답변할 수 있는가(탐구력, 전문성, 코칭, 지식공유)등을 통해 판단해 보려고 노력하구요.
결국 질문의 스킬에 대한 평가는 면접이나 사람 관계에 있어 단순한 대화나 설명에서 찾을 수 없는 많은 것들(전문성과 인성, 커뮤니케이션 능력, 사회성, 열정, 문제해결 능력 등)을 판단할 수 있게 해준다고 생각되요. 이 부분이 제가 사람을 판단할 때 보편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랍니다.
Q7. 경영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역량 or 능력 or 마인드)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현 시대의 성공한 경영자는 전지전능한 힘(Super Power)을 요구받는 것 같아요. 경영자에게 필요한 것은 너무도 많겠지만, 최근 조직에서 겪은 문제들과 시행착오들에 대한 고민을 하던 중 저의 멘토에게 들은 경영자로서 갖추어야할 사고 판단의 기준에 대해서 공유해 봅니다.
스타트업을 표방하며 시작했지만 결국 항공사의 특성에 따라 기성 항공사들의 Legacy를 표방할 수 밖에 없는 긴 변화의 시간을 보내면서, 성장의 시점마다 대면하는 문제들의 해결 기준점이 크게 흔들리던 때가 있었습니다.
초창기에는 적은 인원들을 격려하고 능력이 부족하더라도, 실수가 있더라도 때로는 너그럽게, 때로는 어쩔 수 없이 지나가기도 하고, 지치고 힘든 상황들 앞에 놓일 때마다 경영자의 진정성과 선한 의지로 덮고 다독이며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많이 했어요. 하지만 조직이 성장하고 커갈수록 냉정하게 판단하고 일부의 희생이나 객관적 판단 기준으로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상황이 늘어나서 저의 태도 변화에 서운함이나 불만이 터져나오기도 했지요.
이때 저의 멘토께서 두가지 조언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첫번째는 일본의 유명한 경영자로 교세라 그룹을 창업하고 일본의 항공사인 JAL을 파산직전에서 흑자전환을 시킨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의 이야기였습니다.
“소선(小善)은 대악(大惡)과 닮아 있고, 대선(大善)은 비정(非情)과 닮아있다.”라는 표현을 빌어 경영자의 판단 기준을 설명해 주셨던 거죠. 경영자의 의사결정에는 무엇이 작은 선을 행하는 일인지, 무엇이 대의를 위한 길인지를 판단하는 능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통감하고 많은 문제에 있어 이러한 기준을 적용하여 의사결정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두번째는 문제해결 능력에 대한 조언이였습니다. 경영자는 창업자이건, 임원이건, 끊임없이 밀려드는 문제들을 해결해 내야만 합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 본인 스스로의 문제이거나, 이해관계에 놓여있는 민감한 문제들을 해결해야만 할 때 주저함이 발생하더군요. 그렇게 하나 둘 쌓이는 문제들은 어느 틈에 또 다른 문제로 번지는 썩은 사과와 같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러한 고민에 대해 문제해결의 한가지 방법으로 조언해 주신 것은 “곰팡이는 볕에 내어 놓아야 사라진다”라는 비유적인 한 문장이였어요. 당연한 이야기겠죠. 습하고 환기가 되지 않는 곳에서 생긴 곰팡이는 볕에 내어 말리면 죽기 마련일테니까요. 처음에는 이해가 어려웠습니다. 민감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볕에 내어 놓으라니…
곰팡이는 민감하고 복잡한 문제입니다. 곰팡이를 긁어내고 약으로 닦아내는 것은 빠르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직접적인 방책처럼 보일 수 있지만 문제의 민감성이나 이해관계 때문에 상처를 남기거나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다는 거였죠.
곰팡이(문제)가 덮고 있는 본질을 상처내지 않으면서 볕에 내어 곰팡이 만을 없에는 방법. 민감할 수록 문제의 근본 원인을 본질과 함께 조명하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규정이나 시스템을 통해서 양성화하는 방법을 고심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전 요즘 이 두가지 원칙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며 경영자로서의 의사결정에 있어 실수나 부족을 최소화 하기 위해 노력해보고 있어요.
만난이: 신경수 박사(지속성장연구소장)
기업 경영이 갈수록 어려운 시대이다. 하지만 이런 어려움속에서도 강인한 사업의지와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자사만의 경쟁력을 확보하며 지속적 성장을 이어가고 있는 기업들도 많다. 본 코너는 이런 기업들을 탐방하여 그들이 겪은 경험담을 듣고, 이를 통해 새로운 희망과 인사이트를 얻기 위해 개설한 공간이다. 이달의 주인공은 청주공항 거점의 항공사 에어로케이 항공의 김상보 부사장이다.
“소선(小善)은 대악(大惡)과 닮아 있고, 대선(大善)은 비정(非情)과 닮아있다.”
Q1. 회사소개를 해달라.
에어로케이항공(Aero K Airlines)는 2016년에 설립된 스타트업 저비용 항공사 (LCC, Low Cost Carrier)랍니다. 설립 초기부터 세계적으로 성공한 LCC의 선진 운영방식을 도입하고, 이에 더하여 항공사 본연의 이동수단을 뛰어넘어 고객의 삶의 여정(Life Journey) 전반에 걸쳐 새로운 고객 경험을 제공하는 플랫폼 비즈니스를 목표로 하고 있어요. 에어로케이는 대한민국의 정중앙에 위치한 청주공항을 모(母)공항으로 하는 국내 유일의 항공사로서, 중부권 소비자들의 교통 편익을 제공할 뿐 아니라, 행정수도의 관문공항으로서의 성장을 함께 도모하고 있습니다.
2021년 항공기 1대, 청주-제주 1개의 노선으로 첫 유상비행을 시작한 이후 2025년 현재는 총 7대의 항공기를 운영하며 제주를 비롯하여 일본, 대만, 중국, 동남아 등 약 17개의 국제노선에 운항하고 있어요. 우리는 앞으로도 지속적인 항공기 도입 및 노선을 확대해 나가고, 사람과 장소, 파트너들을 연결해 나가는 동북아시아 최고의 항공사가 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답니다.
Q2. 자기소개를 좀 해달라. 개인 이력이 궁금하다.
저의 개인 이력은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단순하고 보잘것 없어요. 대기업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한 평범한 직장인이였고, 에어로케이항공이 저의 두번째 회사였으니까요. 그런데 단 두 곳의 회사를 통해 경험한 것들은 조금은 남달랐던 것 같아요. 2개의 회사에서 5~6개의 회사에서 경험할 일들을 했다고 해야 할까요?
경력 전반에 걸쳐 가장 많은 일을 한 것은 광범위한 의미의 ‘마케팅’과 ‘브랜딩’이였어요.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저는 자동차공학을 전공한 공학도였습니다.
천만 다행으로, 공학도였지만 연구에 소질이 없던 저는 첫 업무의 시작을 타이어 제조사에서 연구소가 아닌 마케팅부문 산하에서 그나마도 공대생들이 많이 모여있는 상품기획팀에서 시작할 수 있었어요. 시장을 조사하고, 기존 제품의 라이프사이클을 관리하며, 신상품을 만들기 위한 시장조사, 테스트 관리, 그리고 시장 내 포지셔닝(Positioning)과 차별적 판매 요소(USP, Unique Selling Point)를 만들어내는 팀이였죠. 연구소, 국내외 영업지점, 도매점, 소매점, 디자인팀, 마케팅팀 등 사내 모든 부서와 커뮤니케이션하면서 개별 제품에 있어 생애주기를 모두 경험해 볼 수 있는 소중한 시작점이였지요.
이후 마케팅 전략팀으로 부서를 옮기게 되었는데, 당시 회사는 글로벌 핵심 시장인 미국, 중국, 유럽에서의 경쟁력 확보를 통한 사업확장을 위해 회사설립 이례 처음으로 해외 유명 컨설팅 펌과 함께 글로벌 컨설팅 프로젝트 진행을 결정하였습니다. 당시 대기업들이 보스턴컨설팅그룹(BCG), 매킨지(McKinsey)등과 같은 해외 유명 컨설팅 회사와 프로젝트를 경쟁적으로 진행하던 시기였는데, 운이 좋게도 상근 프로젝트 인원으로 선발되어 유럽지역의 Leader로 참여할 수 있게 되었어요.
거의 1년 365일을 유능한 컨설턴트들과 일하면서 밑바닥부터 결론을 도출하기까지 돈을 주고도 배우기 힘든 글로벌 Top 컨설팅 회사의 업무 전 과정을 밀접하게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경험 덕분이였는지, 컨설팅 이후 결과물의 실행을 담당하는 후속 업무들을 진행할 수 있었고, 이어서 회사의 북미법인의 마케팅을 총괄하는 팀장으로 미국 주재원 생활을 하며 또 다른 경험을 접할 수 있게 되었어요. 돌이켜 보면 다시한번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주재원은 보통 한국 본사와 현지 인력들의 교두보 역할만 하는것이 대부분이라 현장 경험보다는 본사 업무보고가 주 업무인데, 임기 도중에 현지 마케팅 부사장이 나가면서 Marketing VP의 업무를 대행했어야 했죠.
주재원으로서 경험할 수 없는 깊이있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고 해야 하나요. 정말 미국회사에 새롭게 취직해서 일하는 것처럼 해외시장에서 좌충우돌하며 밑바닥부터 새로운 시도를 해볼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였어요. 미국 전역을 출장다니면서 소비자 경험 재설계, 다양한 브랜딩 활동, B2B와 B2C 마케팅 등 큰 자산을 얻을 수 있었죠.
이후 2016년 한국으로 복귀하던 시점, 엉뚱하게도 신규 스타트업 항공사 설립에 함께 하자는 제안을 받게 되었습니다. 너무나도 생뚱 맞았지만, 단 일주일동안 고민하고 동참하기로 결정을 했어요. 설립 멤버들의 설득도 있었지만 낯설고도 가슴설레는 느낌에 큰 고민없이 다시한번 밑바닥으로 뛰어든거죠.
항공사의 브랜딩부터 항공사업면서 획득을 위한 사업계획 수립과 대관업무, PR, 투자 유치 지원까지 전 영역에 걸쳐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만 했습니다. 할 사람이 없었으니까요.
어느덧 에어로케이에서 10년이라는 시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마케팅, 브랜딩 & 컬쳐, 영업, 경영(인사, 재무, 전략기획, 경영지원)까지 그간 경험했던 경험 이상의 노력을 통해 오늘까지 생존해 있는 것 같아요.
모든것을 종합해 보면 저의 이력은 결국 특별할 것 없는 운이 좋아 ‘바닥’을 여러 번 경험한 ‘밑바닥 전문가’라 요약할 수 있겠네요.
Q3. 본인 인생에서 가장 큰 변곡점이나 전환점이 되었던 사건은 무엇인가?
가장 큰 변곡점은 미국 주재원으로 발령이 났던 때라고 생각되요. 당시 저는 국내 경영대학원(MBA)에 막 입학하였었고, 상대적으로 노총각이였던 37살 즈음이였습니다. 미국 주재원은 누구나(특히 취학 자녀가 있는 직원이라면) 바라던 굉장히 선호가 되던 자리였는데, 회사에서 저에게 ‘미국 주재원으로 발령이 날 수도 있다’고 처음 말했을 때 정중하게 거절을 했었죠.
경력 관리를 위해 MBA도 꼭 마무리를 하고 싶었고, 결혼을 해야하는 시점에 미국으로 4-5년을 혼자 나간다면 평생 노총각으로 살 것 같은 두려움 반, 그리고 해외에서 생활해 본 적이 없었기에 느껴지는 두려움도 있었던 것 같아요. 소식을 전했던 임원은 아마도 제가 너무도 기뻐하며 감사할 것이라 생각하셨을텐데, 의외의 반응에 크게 황당해 하셨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회사에서는 ‘황당’한 저의 인사발령 거절에 다른 후보자를 물색했는데, 결국 돌고 돌아 다시 저에게 최후 통첩을 하면서 ‘회사는 당신을 발령 낼 것이고, 이걸 다시 거절하면 문제가 심각해 질 수 있다’고 귀뜸을 해줬습니다. 결국 주재원 발령이 공지되고 저는 학업을 중단하고 미혼인 채로 미국으로 떠나게 되었죠.
하지만 생각과 다르게 미국에서의 4년은 저에게 매우 큰 변화를 가져다 주었어요. 미국이라는 선진 시장에서 경험한 새로운 업무와 문화는 저의 시야를 넓혀 주었고, 미국에서 지금의 배우자를 만나 결혼도 하게되었죠.
그리고 MBA도 귀국 후 재입학 제도를 활용하여 무사히 학위를 취득할 수 있었답니다. 특히 항공사 설립 참여의 기회 역시 저의 귀국 시점에 딱 맞춰 진행되었고, 초창기 회사 스타팅 멤버로 참여했던 인원 중 다수가 외국인이거나 미국 생활을 오래했던 터라 저의 미국에서의 경험이 조직 구성과 성장에 균형감 있게 적용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두려워하고 걱정했던 것들이 오히려 제 인생에 가장 큰 변화를 이끌어낸 원동력이 된 거죠. 그래서 인생은 참 알 수 없는 것 같아요!
Q4. 여기까지 오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꼽으라면 어느 때인가?
에어로케이 설립 후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1년의 준비를 거쳐 항공운송사업면허를 신청하고 국토교통부로부터 ‘반려’처분을 받았던 때 였어요. 회사 설립 초기 투자금도 별로 없고 회사는 신생항공사라 필수전문 인력을 유치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어요. 항공시장은 매우 폐쇄적이였고, 항공사 설립에는 파일럿, 정비사, 객실 승무원, 안전보안, 운항통제 등 반드시 확보해야 하는 전문 인력들이 필요했었죠.
초기 1년동안 투자금을 유치하고, 힘겹게 필수 인력을 영입하면서 비록 아무 자격도 없는 항공 입시생의 위치였지만 돌이켜 보면 사업면허를 준비하던 그 1년이 가장 행복하고 긍정의 에너지로 가득 차 있었던 것 같아요. 적은 인원이였지만 늘 사무실에는 웃음이 끊이지 않았고, 타 항공사에서 이직한 경력 직원들도 기존의 항공사와 다른 기업 문화와 시스템으로 맞이하게 될 미래에 대한 도전에 기대감과 희망이 가득차 있었습니다.
철저한 준비 끝에 2017년 6월 사업면허를 신청하고 6개월 간의 심사 과정을 거치면서 충분히 사업면허를 받을 거라 기대하고 있었어요. 자본금의 규모도, 대기업을 포함한 양질의 투자자 구성도, 그리고 선진 LCC의 모델과 한국 항공 시장을 철저히 연구하고 이를 반영한 사업계획서도 모두 완벽해 보였거든요. 아직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2017년 12월 크리스마스 저녁, 국토부로부터 사업면허 신청에 대한 ‘반려’라는 심사결과를 전달 받았습니다. 모두가 행복해 하는 함박눈이 쏟아졌던 그림같은 화이트 크리스마스 저녁 서울의 작은 술집에서 씁쓸한 술잔을 기울였습니다.
사업면허 신청의 반려 자체보다도, 반려 이후 사람들의 변화가 더욱 큰 위기였어요. 신청을 하기 이전까지는 모두가 기대와 희망이 가득했지만, 반려 이후 직원들은 의구심과 이전 직장에서의 이직을 후회하기 시작했고, 투자를 했던 대기업은 투자금을 전액 회수하고 회사를 떠났습니다. 회사 직원들의 긍정적인 에너지가 순식간에 강한 부정의 기운으로 바뀌었던 그 시점이 가장 힘들었던 순간으로 꼽힙니다.
물론 다시금 추스리고 조직과 사업계획을 재정비하고, 신규 대체 투자를 유치하면서 재도전 끝에 면허를 받고 오늘에 까지 이르렀지만, 위기의 순간을 대처할 수 있는 인내심과 위기관리 능력, 그리고 압박을 이기고 다시금 도전하는 법을 알게 된 값진 경험이였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어려움을 견뎌내는 굳은살을 가지고 항공사에 전무후무한 타격을 주었던 코로나 시기에도 어떻게든 버텨낼 수 있었던 것 아닐까 싶어요.
Q5. 반대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인가?
재수 끝에 드디어 항공운송사업면허를 받았던 날, 자금적으로 최악의 시기에 추가 투자를 유치하여 기사회생했던 날 등 행복했던 순간은 너무도 많았지만, 가장 가슴벅찬 기쁨과 행복을 느꼈던 때는 에어로케이의 첫 항공기를 실물로 맞이할 때였습니다. 사업면허를 발급받은 날에는 의외로 무덤덤 했어요. 어쩌면 첫 면허 신청에서 반려를 당한 것이 억울하고 아쉬워서 그랬는지 오히려 허탈한 마음도 있었습니다.
면허 발급 이후에도 수도 없는 우여곡절을 겪었어요. 16년에 계약해 두었던 항공기들을 첫 면허 반려 이후 들여올 수 없게 되었고, 면허 발급 이후 겨우 다시 계약했던 3대의 항공기 마저도 Covid-19가 발생하면서 항공시장의 극심한 경색과 함께 모두 도입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죠.
끝이 없을 것 같았던 코로나 시기에 결국 더이상 운항을 미룰 수 없었기에 국제선 운항이 불가했던 최악의 상황속에서 항공기 1대만을 가지고 청주-제주 국내선만을 가지고 영업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해외 항공기 정비 업체에서 비행기 점검과 정비를 실시하고 이미지로만 상상하던 항공기 외장 디자인 작업을 마친 후 청주공항으로 출발할 에어로케이 1호기의 도입식을 준비했어요.
2020년 2월, 청주공항 거점 항공사 에어로케이의 1호기 도입식을 위해 지자체장, 지역 국회의원, 시의원, 도의원, 주요 주주 및 경영진, 언론사 등 VIP들을 초대하고 비행기가 청주공항에 도착하는 저녁 시간에 맞춰 공항 활주로에서 제가 사회를 보는 야외 도입식을 진행하였습니다. 2월 한 겨울의 강추위와 강한 칼바람에 눈까지 날리면서 행사를 위해 세워 둔 텐트가 날라갈 정도였죠.
1호기 도입을 맡은 기장과 관제실이 통신하면서 계획한 시간이 되자 청주공항 밤하늘에 에어로케이의 1호기가 서서히 내려오면서 착륙했던 그 순간에 그동안의 과정과 노력, 시행착오가 생각나며 눈물이 쏟아질 만큼 마음이 울컥 했습니다.
황당하리만큼 주저함 없이 신생 스타트업 항공사를 설립하겠다고 도전했던 무모함과, 위기의 순간 순간마다 마주해야 했던 불신과 의심의 서러운 시선들에도 불구하고, 결국 진짜 항공사를 설립하고 첫 비행기가 영화와 같이 눈과 바람과 추위를 뚫고 내려오는 순간은 평생 절대 잊을 수 없을 것 같아요.
Q6. 사람에 대한 질문이다. 사람을 판단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무엇인가?
사람의 판단 기준은 개인적인 기준 보다는 조직의 기준에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설립부터 지금까지 직´간접적으로 HR의 역할을 맡아오면서 수천명의 인원을 면접을 보거나 수백명의 인원을 가까이에서 관리해오고 있어요.
대기업에서도 사람들을 경험해 보고, 해외에서도 HR 시스템과 외국인들을 경험해 보고, 이번 에어로케이에서 스타트업의 기준으로 소수의 인원으로 시작해서 빠른 속도로 약 600명이 되는 직원들을 마주하게 되면서 사람에 대한 판단 기준이 많이 변해온 것 같아요.
에어로케이를 경험하면서 설립초기, 성장기, 안정기로 나누어 나름 채용 판단의 기준을 만들어 적용하고 있지만 최근들어 채용 시 가장 중점적으로 보고있는 제 나름의 판단 기준을 말씀드려 볼께요.
조직의 성장단계 별 형태, 고경력자와 저경력자의 격차, 기성 세대와 MZ세대의 갈등 등이 공존하는 빠르게 변화하는 기업환경에서 제가 적용하는 공통의 판단 기준은 ‘질문(Question)’이라는 단어로 함축됩니다. 즉, ‘질문을 할 수 있는가?’와 ‘질문을 받을 수 있는가?’ 두가지 관점입니다.
제가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는 조직에서 ‘말하지 않아도, 시키지 않아도 일을 알아서 잘 하는 사람’이거나 ‘시키는 일에 질문하지 않고 군소리 없이 일을 잘 해내는 사람’이 인정받는 사회였던거 같아요.
하지만, 제 경험상 이제는 조직이 작든 크든 질문이 없는 조직과 인원은 도태되는 것을 많이 목격해요. 이 시대는 질문이 없는 직원이나 경영자나 질문을 잘 이끌어 내지 못하는 경영자는 결국 무능함을 의미하고, 질문은 새로움을 발견하고, 갈등을 조정하고, 문제의 본질을 찾아내며, 효율성을 극대화시키는 필수적인 역량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질문’은 사고의 깊이를 나타냅니다. 깊이있는 사고와 이해, 거기에서 찾아지는 결핍이나 도전적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중요한 역할을 질문이 담당한다는 거죠. 구분해 보자면, ‘질문을 할 수 있는가?’의 관점에서는 질문거리가 많은가(호기심, 창의력, 탐구력, 학습능력) / 질문을 할 용기가 있는가(추진력, 사회성, 부족함에 대한 인정) / 질문을 잘 하는가(커뮤니케이션 태도, 효율성, 상호존중)등을 통해 판단해 봅니다.
반면, ‘질문을 받을 수 있는가?’의 관점에서는 질문을 잘 이끌어 내는가(코칭, 커뮤니케이션 태도, 문제 해결의 집요함) / 질문을 잘 견딜 수 있는가 (인내심, 상호존중, 부족함의 인정) / 질문에 답변할 수 있는가(탐구력, 전문성, 코칭, 지식공유)등을 통해 판단해 보려고 노력하구요.
결국 질문의 스킬에 대한 평가는 면접이나 사람 관계에 있어 단순한 대화나 설명에서 찾을 수 없는 많은 것들(전문성과 인성, 커뮤니케이션 능력, 사회성, 열정, 문제해결 능력 등)을 판단할 수 있게 해준다고 생각되요. 이 부분이 제가 사람을 판단할 때 보편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랍니다.
Q7. 경영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역량 or 능력 or 마인드)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현 시대의 성공한 경영자는 전지전능한 힘(Super Power)을 요구받는 것 같아요. 경영자에게 필요한 것은 너무도 많겠지만, 최근 조직에서 겪은 문제들과 시행착오들에 대한 고민을 하던 중 저의 멘토에게 들은 경영자로서 갖추어야할 사고 판단의 기준에 대해서 공유해 봅니다.
스타트업을 표방하며 시작했지만 결국 항공사의 특성에 따라 기성 항공사들의 Legacy를 표방할 수 밖에 없는 긴 변화의 시간을 보내면서, 성장의 시점마다 대면하는 문제들의 해결 기준점이 크게 흔들리던 때가 있었습니다.
초창기에는 적은 인원들을 격려하고 능력이 부족하더라도, 실수가 있더라도 때로는 너그럽게, 때로는 어쩔 수 없이 지나가기도 하고, 지치고 힘든 상황들 앞에 놓일 때마다 경영자의 진정성과 선한 의지로 덮고 다독이며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많이 했어요. 하지만 조직이 성장하고 커갈수록 냉정하게 판단하고 일부의 희생이나 객관적 판단 기준으로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상황이 늘어나서 저의 태도 변화에 서운함이나 불만이 터져나오기도 했지요.
이때 저의 멘토께서 두가지 조언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첫번째는 일본의 유명한 경영자로 교세라 그룹을 창업하고 일본의 항공사인 JAL을 파산직전에서 흑자전환을 시킨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의 이야기였습니다.
“소선(小善)은 대악(大惡)과 닮아 있고, 대선(大善)은 비정(非情)과 닮아있다.”라는 표현을 빌어 경영자의 판단 기준을 설명해 주셨던 거죠. 경영자의 의사결정에는 무엇이 작은 선을 행하는 일인지, 무엇이 대의를 위한 길인지를 판단하는 능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통감하고 많은 문제에 있어 이러한 기준을 적용하여 의사결정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두번째는 문제해결 능력에 대한 조언이였습니다. 경영자는 창업자이건, 임원이건, 끊임없이 밀려드는 문제들을 해결해 내야만 합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 본인 스스로의 문제이거나, 이해관계에 놓여있는 민감한 문제들을 해결해야만 할 때 주저함이 발생하더군요. 그렇게 하나 둘 쌓이는 문제들은 어느 틈에 또 다른 문제로 번지는 썩은 사과와 같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러한 고민에 대해 문제해결의 한가지 방법으로 조언해 주신 것은 “곰팡이는 볕에 내어 놓아야 사라진다”라는 비유적인 한 문장이였어요. 당연한 이야기겠죠. 습하고 환기가 되지 않는 곳에서 생긴 곰팡이는 볕에 내어 말리면 죽기 마련일테니까요. 처음에는 이해가 어려웠습니다. 민감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볕에 내어 놓으라니…
곰팡이는 민감하고 복잡한 문제입니다. 곰팡이를 긁어내고 약으로 닦아내는 것은 빠르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직접적인 방책처럼 보일 수 있지만 문제의 민감성이나 이해관계 때문에 상처를 남기거나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다는 거였죠.
곰팡이(문제)가 덮고 있는 본질을 상처내지 않으면서 볕에 내어 곰팡이 만을 없에는 방법. 민감할 수록 문제의 근본 원인을 본질과 함께 조명하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규정이나 시스템을 통해서 양성화하는 방법을 고심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전 요즘 이 두가지 원칙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며 경영자로서의 의사결정에 있어 실수나 부족을 최소화 하기 위해 노력해보고 있어요.
만난이: 신경수 박사(지속성장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