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경영이 갈수록 어려운 시대이다. 하지만 이런 어려움속에서도 강인한 사업의지와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자사만의 경쟁력을 확보하며 지속적 성장을 이어가고 있는 기업들도 많다. 본 코너는 이런 기업들을 탐방하여 그들이 겪은 경험담을 듣고, 이를 통해 새로운 희망과 인사이트를 얻기 위해 개설한 공간이다. 이달의 주인공은 HR플렛폼 리멤버를 기반으로 인재서비스를 전개하고 있는 프로써치코리아 김혜종 대표이다.
“인생 전 주기를 아우르는 ‘커리어 컨설팅 센터’를 만들고 싶다!”

(사진출처: 김혜종 대표 제공)
AI와 데이터가 헤드헌팅의 문법을 바꾸고 있다. 프로써치코리아는 전통적 서치 역량에 데이터 기반 정밀 타깃팅을 접목해 새로운 표준을 제시하고 있다. 창업 배경과 경영 철학, 그리고 다음 도약에 대해 물었다.
Q1. 회사 소개를 부탁한다.
프로써치코리아는 내가 리멤버와 함께 만든 서치펌으로, 20년 이상 축적된 헤드헌팅 노하우에 AI 기반 데이터와 리서치 역량을 결합해 단순 매칭을 넘어 정밀 타깃팅, 후보 발굴, 맞춤형 커뮤니케이션까지 일원화해 제공하고 있다.
전통적인 방식만으로도 회사를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었지만 업의 미래를 위해 변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AI 데이터 네트워크와 탁월한 기술력을 가진 리멤버와 손잡으면서 새로운 산업 표준을 실험할 수 있었다. 이 협업은 단순한 합작을 넘어 업계의 판을 바꾸는 시도라 생각하며, 내 커리어에서 가장 큰 결단 중 하나였고 지금도 매우 잘한 선택이라 확신한다.
Q2. 개인적 배경이 궁금하다. 어떻게 서치펌을 시작하게 되었나.
대학 시절 우연히 신문에서 미국 헤드헌팅 산업을 다룬 짧은 기사를 접하면서 처음으로 이 업에 대한 꿈을 품게 되었다. 졸업 무렵 IMF 외환위기를 겪으며, 실리콘밸리에서 수많은 기업이 실패와 재도전을 거듭하는 과정을 중개하는 ‘프로매치’ 모델을 방송을 통해 알게 되었고, 사람의 이동을 촉진하는 중개자의 가치에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한국에서도 프로매치 코리아를 만들어야 한다’는 결심을 했다. 다만 나는 기업 실무 경험이 전혀 없었기에 직접 헤드헌터로 뛰기는 어려웠다. 훌륭한 헤드헌터가 되려면 최소 10~15년의 현장 경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대신 나는 경영자의 길을 택해, 헤드헌터들이 역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무대를 설계하고 지원하는 데 집중했다. 야구로 치면 선수로 뛰지 않고 감독이 되어 팀을 운영하는 셈이었다.
창업 초기에는 최소 5천만 원의 자금이 필요했는데, 신문 ‘투자자 구합니다’ 코너에 진솔하게 꿈과 계획을 올려 두 명의 투자자를 만날 수 있었고, 등산 모임을 통해 내 사람됨을 확인한 뒤 각각 2,500만 원씩을 투자받았다. 또 한 분은 직접 자금을 지원하지는 않았지만 ‘인간개발연구원’이라는 경영자 모임을 소개해 주었고, 그 인연이 훗날 사업을 확장하는 데 중요한 사회적 자본이 되었다.
Q3. 경영 철학은 무엇인가.
나는 항상 세 가지 경영 원칙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첫째, 조직을 반드시 대형화한다는 것이다. 규모가 커져야 시장에서 브랜드 파워를 확보할 수 있고, 협업을 통한 시너지 효과도 커지기 때문이다.
둘째, 외부 투자를 받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켜 왔다. 초기에는 시드머니가 필요했지만, 이후에는 자본 의존도를 줄이고 자생력을 강화하는 것이 회사를 건강하게 키우는 길이라고 믿었다.
셋째, 수평적 조직 문화를 지향한다는 점이다. 불필요한 관리 단계를 줄이고, 성과와 보상을 현장에서 활동하는 헤드헌터에게 최대한 돌려주어야 동력이 생긴다고 생각한다. 현재 약 200명의 헤드헌터가 활동하고 있으며, 관리·지원 인력은 최소화하여 성과와 보상을 극대화하는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좌측이 김혜종 대표, 우측이 TRANSEARCH International의 Celeste Whatley 대표)
또한 우리는 글로벌 무대와 연결되어 있다. 전 세계 약 40개국 이상 60개 이상의 오피스 네트워크를 보유한 글로벌 탑10 위상을 가지고 있는 TRANSEARCH International과도 업무협약식을 체결하였다. 이를 통해 단순히 국내 시장에 머무르지 않고,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춘 인재 이동을 주도하는 기반을 마련했다.
내부적으로는 회의보다 1:1 소통을 중시한다. 공식 회의실에서 보고받는 대신, 복도에서 가볍게 어깨를 두드리며 “무슨 어려움이 있나, 내가 무엇을 도울 수 있나”라고 묻는다. 문제를 직접 해결해 주고, 애로사항을 즉시 제거하는 것이 경영자의 역할이라고 믿는다. 식사 자리를 함께하고, 라운딩이나 가벼운 술자리를 통해 신뢰를 다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런 시간 속에서 직원들의 진짜 고민을 듣고, 그들이 편안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 내 중요한 임무다. 결국 나는 지시보다 지원, 통제보다 협업에 초점을 두며, 회사가 사람 중심의 생태계로 작동하도록 끊임없이 판을 설계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 나의 가장 중요한 업무라고 생각하고 있다.
Q4. 지금까지 오면서 가장 큰 위기는 무엇이었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매출이 70~80% 급감했다. 그러나 위기 속 기회를 봤다. 독립했던 헤드헌터들을 다시 모셔와 조직을 재정렬했고, 협업 비중을 높여 체질을 바꾸었다. 그 결정이 다음 성장의 발판이 되었다.
그 시기에 나는 비용을 마구 깎기보다 현금흐름을 안정화하고 생산적 지출은 유지하는 전략을 택했다. 임대료와 고정비는 장기 조건으로 재협상하고, 교육·리서치·공동수임 같은 협업 인프라에는 오히려 투자했다. 산업 포트폴리오도 재구성해 금융·IT 의존도를 낮추고 반도체·헬스케어·소비재·자동차로 균형을 잡았다. 헤드헌터 간 충돌을 줄이기 위해 공동 파이프라인과 분배 룰을 명확히 했고, “한 건 포기하면 두 건 연결” 원칙으로 갈등을 빠르게 해소했다.
또한 성과 상위 시니어를 중심으로 듀오/트리오 스쿼드를 꾸려 주니어를 붙였고, 이 구조가 신규 고객 발굴과 대형 딜 마무리에 속도를 냈다. 위기 직전 축적한 자본을 바탕으로 사무공간을 층 단위로 확장해 팀 간 교류를 늘렸고, 내부 카페를 오픈해 정보·후보·레퍼런스가 실시간으로 흐르게 했다. 결과적으로 개인 플레이 비중이 줄고 협업 매출의 비율이 급상승했으며, 이는 단기 회복을 넘어 이후의 지속 성장 구조로 이어졌다.
Q5. 반대로 지금의 위치를 만들게 한 성공의 비결은 무엇인가.
성공의 원동력은 무엇보다 패러다임 변화를 먼저 읽고, 누구보다 빠르게 실행하는 힘이었다. 나는 재고가 남아 적자를 불러오거나 시간이 지나면서 상품 가치가 떨어지는 사업 모델을 지양했다. 대신 ‘사람’을 가장 중요한 자산으로 바라보는 서비스 산업에 주목했다. 사람은 썩지도, 재고로 쌓이지도 않는다. 오히려 적재적소에 연결될 때 가치가 배가되는 자원이라는 점에 확신을 가졌다.
이 믿음을 바탕으로 과감히 실행에 옮겼다. 때로는 정보가 부족하고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도 먼저 발을 들여 문제를 풀어가며 길을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단순한 매칭을 넘어 인재를 전략적으로 연결하는 방법론을 다듬을 수 있었고, 위기 상황마다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능력도 축적됐다. 이러한 경험이 반복되면서 회사의 체질은 점점 단단해졌고, 경쟁자보다 한발 앞서 새로운 시장과 기회를 선점할 수 있었다. 결국 실행력과 용기, 그리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가 지금의 위치를 가능하게 한 가장 큰 경쟁력이 되었다.
Q6. 앞으로의 꿈은 무엇인가.
인생 전 주기를 아우르는 커리어 컨설팅 센터를 만들고 싶다. 10층 빌딩을 가정하면, 1층은 누구나 들를 수 있는 잡 카페, 2~3층은 유·초 체험형 커리어 프로그램, 4~5층은 중·고 진로 컨설팅, 6~7층은 대학생 취업 컨설팅, 8~9층은 경력직 헤드헌팅, 10층은 은퇴자 커리어·전환 컨설팅을 하는 곳이다. 태어나서 은퇴까지 커리어를 동행하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나의 목표이다.
만난이: 신경수 박사(지속성장연구소장)
기업 경영이 갈수록 어려운 시대이다. 하지만 이런 어려움속에서도 강인한 사업의지와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자사만의 경쟁력을 확보하며 지속적 성장을 이어가고 있는 기업들도 많다. 본 코너는 이런 기업들을 탐방하여 그들이 겪은 경험담을 듣고, 이를 통해 새로운 희망과 인사이트를 얻기 위해 개설한 공간이다. 이달의 주인공은 HR플렛폼 리멤버를 기반으로 인재서비스를 전개하고 있는 프로써치코리아 김혜종 대표이다.
“인생 전 주기를 아우르는 ‘커리어 컨설팅 센터’를 만들고 싶다!”
(사진출처: 김혜종 대표 제공)
AI와 데이터가 헤드헌팅의 문법을 바꾸고 있다. 프로써치코리아는 전통적 서치 역량에 데이터 기반 정밀 타깃팅을 접목해 새로운 표준을 제시하고 있다. 창업 배경과 경영 철학, 그리고 다음 도약에 대해 물었다.
Q1. 회사 소개를 부탁한다.
프로써치코리아는 내가 리멤버와 함께 만든 서치펌으로, 20년 이상 축적된 헤드헌팅 노하우에 AI 기반 데이터와 리서치 역량을 결합해 단순 매칭을 넘어 정밀 타깃팅, 후보 발굴, 맞춤형 커뮤니케이션까지 일원화해 제공하고 있다.
전통적인 방식만으로도 회사를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었지만 업의 미래를 위해 변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AI 데이터 네트워크와 탁월한 기술력을 가진 리멤버와 손잡으면서 새로운 산업 표준을 실험할 수 있었다. 이 협업은 단순한 합작을 넘어 업계의 판을 바꾸는 시도라 생각하며, 내 커리어에서 가장 큰 결단 중 하나였고 지금도 매우 잘한 선택이라 확신한다.
Q2. 개인적 배경이 궁금하다. 어떻게 서치펌을 시작하게 되었나.
대학 시절 우연히 신문에서 미국 헤드헌팅 산업을 다룬 짧은 기사를 접하면서 처음으로 이 업에 대한 꿈을 품게 되었다. 졸업 무렵 IMF 외환위기를 겪으며, 실리콘밸리에서 수많은 기업이 실패와 재도전을 거듭하는 과정을 중개하는 ‘프로매치’ 모델을 방송을 통해 알게 되었고, 사람의 이동을 촉진하는 중개자의 가치에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한국에서도 프로매치 코리아를 만들어야 한다’는 결심을 했다. 다만 나는 기업 실무 경험이 전혀 없었기에 직접 헤드헌터로 뛰기는 어려웠다. 훌륭한 헤드헌터가 되려면 최소 10~15년의 현장 경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대신 나는 경영자의 길을 택해, 헤드헌터들이 역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무대를 설계하고 지원하는 데 집중했다. 야구로 치면 선수로 뛰지 않고 감독이 되어 팀을 운영하는 셈이었다.
창업 초기에는 최소 5천만 원의 자금이 필요했는데, 신문 ‘투자자 구합니다’ 코너에 진솔하게 꿈과 계획을 올려 두 명의 투자자를 만날 수 있었고, 등산 모임을 통해 내 사람됨을 확인한 뒤 각각 2,500만 원씩을 투자받았다. 또 한 분은 직접 자금을 지원하지는 않았지만 ‘인간개발연구원’이라는 경영자 모임을 소개해 주었고, 그 인연이 훗날 사업을 확장하는 데 중요한 사회적 자본이 되었다.
Q3. 경영 철학은 무엇인가.
나는 항상 세 가지 경영 원칙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첫째, 조직을 반드시 대형화한다는 것이다. 규모가 커져야 시장에서 브랜드 파워를 확보할 수 있고, 협업을 통한 시너지 효과도 커지기 때문이다.
둘째, 외부 투자를 받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켜 왔다. 초기에는 시드머니가 필요했지만, 이후에는 자본 의존도를 줄이고 자생력을 강화하는 것이 회사를 건강하게 키우는 길이라고 믿었다.
셋째, 수평적 조직 문화를 지향한다는 점이다. 불필요한 관리 단계를 줄이고, 성과와 보상을 현장에서 활동하는 헤드헌터에게 최대한 돌려주어야 동력이 생긴다고 생각한다. 현재 약 200명의 헤드헌터가 활동하고 있으며, 관리·지원 인력은 최소화하여 성과와 보상을 극대화하는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좌측이 김혜종 대표, 우측이 TRANSEARCH International의 Celeste Whatley 대표)
또한 우리는 글로벌 무대와 연결되어 있다. 전 세계 약 40개국 이상 60개 이상의 오피스 네트워크를 보유한 글로벌 탑10 위상을 가지고 있는 TRANSEARCH International과도 업무협약식을 체결하였다. 이를 통해 단순히 국내 시장에 머무르지 않고,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춘 인재 이동을 주도하는 기반을 마련했다.
내부적으로는 회의보다 1:1 소통을 중시한다. 공식 회의실에서 보고받는 대신, 복도에서 가볍게 어깨를 두드리며 “무슨 어려움이 있나, 내가 무엇을 도울 수 있나”라고 묻는다. 문제를 직접 해결해 주고, 애로사항을 즉시 제거하는 것이 경영자의 역할이라고 믿는다. 식사 자리를 함께하고, 라운딩이나 가벼운 술자리를 통해 신뢰를 다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런 시간 속에서 직원들의 진짜 고민을 듣고, 그들이 편안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 내 중요한 임무다. 결국 나는 지시보다 지원, 통제보다 협업에 초점을 두며, 회사가 사람 중심의 생태계로 작동하도록 끊임없이 판을 설계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 나의 가장 중요한 업무라고 생각하고 있다.
Q4. 지금까지 오면서 가장 큰 위기는 무엇이었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매출이 70~80% 급감했다. 그러나 위기 속 기회를 봤다. 독립했던 헤드헌터들을 다시 모셔와 조직을 재정렬했고, 협업 비중을 높여 체질을 바꾸었다. 그 결정이 다음 성장의 발판이 되었다.
그 시기에 나는 비용을 마구 깎기보다 현금흐름을 안정화하고 생산적 지출은 유지하는 전략을 택했다. 임대료와 고정비는 장기 조건으로 재협상하고, 교육·리서치·공동수임 같은 협업 인프라에는 오히려 투자했다. 산업 포트폴리오도 재구성해 금융·IT 의존도를 낮추고 반도체·헬스케어·소비재·자동차로 균형을 잡았다. 헤드헌터 간 충돌을 줄이기 위해 공동 파이프라인과 분배 룰을 명확히 했고, “한 건 포기하면 두 건 연결” 원칙으로 갈등을 빠르게 해소했다.
또한 성과 상위 시니어를 중심으로 듀오/트리오 스쿼드를 꾸려 주니어를 붙였고, 이 구조가 신규 고객 발굴과 대형 딜 마무리에 속도를 냈다. 위기 직전 축적한 자본을 바탕으로 사무공간을 층 단위로 확장해 팀 간 교류를 늘렸고, 내부 카페를 오픈해 정보·후보·레퍼런스가 실시간으로 흐르게 했다. 결과적으로 개인 플레이 비중이 줄고 협업 매출의 비율이 급상승했으며, 이는 단기 회복을 넘어 이후의 지속 성장 구조로 이어졌다.
Q5. 반대로 지금의 위치를 만들게 한 성공의 비결은 무엇인가.
성공의 원동력은 무엇보다 패러다임 변화를 먼저 읽고, 누구보다 빠르게 실행하는 힘이었다. 나는 재고가 남아 적자를 불러오거나 시간이 지나면서 상품 가치가 떨어지는 사업 모델을 지양했다. 대신 ‘사람’을 가장 중요한 자산으로 바라보는 서비스 산업에 주목했다. 사람은 썩지도, 재고로 쌓이지도 않는다. 오히려 적재적소에 연결될 때 가치가 배가되는 자원이라는 점에 확신을 가졌다.
이 믿음을 바탕으로 과감히 실행에 옮겼다. 때로는 정보가 부족하고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도 먼저 발을 들여 문제를 풀어가며 길을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단순한 매칭을 넘어 인재를 전략적으로 연결하는 방법론을 다듬을 수 있었고, 위기 상황마다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능력도 축적됐다. 이러한 경험이 반복되면서 회사의 체질은 점점 단단해졌고, 경쟁자보다 한발 앞서 새로운 시장과 기회를 선점할 수 있었다. 결국 실행력과 용기, 그리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가 지금의 위치를 가능하게 한 가장 큰 경쟁력이 되었다.
Q6. 앞으로의 꿈은 무엇인가.
인생 전 주기를 아우르는 커리어 컨설팅 센터를 만들고 싶다. 10층 빌딩을 가정하면, 1층은 누구나 들를 수 있는 잡 카페, 2~3층은 유·초 체험형 커리어 프로그램, 4~5층은 중·고 진로 컨설팅, 6~7층은 대학생 취업 컨설팅, 8~9층은 경력직 헤드헌팅, 10층은 은퇴자 커리어·전환 컨설팅을 하는 곳이다. 태어나서 은퇴까지 커리어를 동행하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나의 목표이다.
만난이: 신경수 박사(지속성장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