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경영이 갈수록 어려운 시대입니다. 하지만 이런 어려움속에서도 강인한 사업의지와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자사만의 경쟁력을 확보하며 지속적 성장을 이어가고 있는 기업들도 많습니다. 본 코너는 이들의 경험담을 통해 새로운 인사이트를 얻기 위해 개설한 공간입니다. 이달의 주인공은 ‘글로벌 마케팅 리서치’의 한국시장을 총괄하고 있는 데이터스프링코리아의 김세희 대표입니다.
“오늘 내가 보내는 하루가, 간절히 살고 싶었던 아빠의 하루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나를 강하게 만들었다."

(데이터스프링코리아 김세희 대표이사)
Q1. 먼저 데이터스프링코리아가 어떤 곳인지 상세한 소개를 부탁한다.
데이터스프링코리아(dataSpring Korea)는 글로벌 마케팅 리서치 업계에서 세계적인 위상을 가진 일본 인테이지 홀딩스(Intage Holding) 그룹의 자회사인 데이터스프링의 한국 법인으로, 2010년 3월에 설립되었다. 우리는 단순히 기계적으로 숫자를 나열하는 회사가 아니다. 기업이나 국가기관, 학술 연구자들이 중대한 의사결정을 내릴 때 그 근거가 되는 ‘사람들의 진솔한 목소리’를 가장 정확하고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 를 통해 전달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현재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 44개국에 걸친 광범위한 패널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으며,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마케팅 의사결정 지원, 광고 효과 측정, 공공정책 수립을 위한 기초 자료 조사 등 연간 약 1,000건에 달하는 고난도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특히 최근 K-브랜드의 위상이 높아지며 해외 시장 진출을 꾀하는 국내 기업들이 급증하고 있는데, 이들이 낯선 시장에서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도록 현지 소비자의 생생한 니즈를 정밀하게 파악해 주는 글로벌 인사이트의 가교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18명의 정예 구성원이 모인 우리 팀은 데이터를 모으는 행위를 넘어, 소비자의 생각과 기업의 미래를 연결하는 데이터 생태계의 중심에 서있다.
회사에 대해 한가지 더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있다. 우리 데이터스프링코리아는 선한 마음과 팀워크를 중요하게 생각하며, 개개인의 성장에도 정진하는, 좋은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자부한다. 각자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면서도 서로를 배려하고 응원하는 분위기가 우리의 큰 힘이다. 셔플런치, 패밀리데이, 할로윈, 송년회, 사원여행 등 크고 작은 사내 이벤트나 소소한 격려를 통해 마음을 나누고,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이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늘 고민하고 있다. 결국 좋은 데이터도, 좋은 서비스도, 좋은 사람들이 만드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Q2. 대표님의 개인적인 이력이 독특하다고 들었다. 지금의 자리에 오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하다.
나의 직업적 여정은 2000년, 당시 웹 에이전시 FID에 기획자로 입사하며 시작되었다. 삼성카드, LG화학 등 국내 유수 대기업의 웹사이트 구축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기획자이자 프로젝트 매니저로서의 기초를 다졌다. 그러다 2001년, 회사의 일본 지사 설립이 내 인생의 첫 번째 거대한 문을 열어주었다. 당시 나의 일본어 실력은 현지 업무가 불가능한 수준이었으나, 회사에서 제공한 일본어 수업에 단 한 번도 빠지지 않았던 집요함과 성실함을 인정받아 도쿄 지사 발령이라는 기회를 얻었다.
2년 뒤 한국 본사가 도산하는 시련을 맞았으나, 나는 일본 법인장과 뜻을 같이하며 현지에 남아 NTT서일본 지역커뮤니티, 나무코 게임사이트, 닛산 인트라넷 등 대기업들의 디지털 플랫폼 기획자로서 10년 가까이 활약했다. 낯선 타국에서 이방인으로 살아남기 위해 미팅이 끝날 때마다 내가 이해한 내용을 다시 정리해 확인받던 습관은, 훗날 “커뮤니케이션의 본질은 유창한 언어가 아니라 서로에 대한 완벽한 이해”라는 나의 확고한 신념이 되었다. 이후 도쿄디즈니리조트의 한국 프로모션 등을 성공시키며 일본 내 한국인으로서의 경쟁력을 증명했고, 그 전문성을 인정받아 데이터스프링 한국 법인의 설립 책임자로 합류하여 2015년부터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Q3. 인생을 관통하는 가장 큰 변곡점이나 전환점이 된 사건이 있다면 무엇인가.
나를 가장 단단하게 만든 사건은 대학 졸업 무렵, 갑작스럽게 찾아온 아버님과의 이별이다. 그전까지의 나는 세상 물정 모른 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지극히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그러나 아버님의 부재는 나를 하루아침에 고등학생 동생들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의 자리에 앉혔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벼랑 끝 상황이 오히려 내 안에 잠재되어 있던 지독한 의욕과 투지를 끌어올렸다.
무언가에 도전할 때 느끼던 막연한 두려움은 아버님이 남기신 삶의 무게 앞에서 먼지처럼 사라졌다. “오늘 내가 무심코 흘려보내는 이 하루가, 그토록 간절히 살고 싶어 하셨던 아빠의 마지막 하루였을지도 모른다”는 문장은 지금도 나를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동력이다. 그 이후로 나는 시간을 대하는 태도 자체가 바뀌었다. 매 순간을 마지막처럼 치열하게 살아내야 한다는 절박함이 나를 두려움 없는 경영자로 성장시켰고, '두려워할 것이 무엇이랴'라는 마음가짐으로 매사에 최선을 다하게 되었다.
Q4. 사업을 운영하며 가장 고통스러웠던 순간은 언제였으며, 어떻게 극복했나.
법인 설립 후 초기 1년 반 동안이 내 커리어에서 가장 외롭고 처절했던 시기였다. 8년 반의 일본 생활을 뒤로하고 귀국해 10평 남짓한 작은 오피스텔에서 홀로 사업을 시작했다. 글로벌 기업의 지사장이라는 타이틀은 화려했지만, 실상은 매일 새벽 4시에 눈을 떠 패널 데이터 수치를 확인하며 가슴을 졸이는 일상의 반복이었다. 한국인 지사장으로서 본사의 지원 없이도 독자적인 생존력을 증명해야 한다는 강박이 나를 짓눌렀다.
당시엔 사업성을 확신할 수 없어 정규직 동료 없이 아르바이트생들과 업무를 처리했기에, 미래를 논하거나 고민을 나눌 상대가 없어 밤마다 지독한 고립감과 싸워야 했다. 하지만 그 시기는 나에게 “기업의 본질은 결국 함께하는 사람”이라는 평생의 교훈을 남겼다. 이후 정사원을 한 명씩 채용하며 같은 곳을 바라보는 동료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꼈고, 그 고통의 시간 덕분에 나는 지금의 구성원 한 명 한 명을 내 몸처럼 아끼고 존중하는 경영자가 될 수 있었다.
Q5. 반대로, 경영자로서 가장 보람을 느꼈거나 행복했던 경험은 무엇인가.
구성원 개개인의 만족과 성장이 회사의 실적과 완벽하게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순간을 목격할 때다. 최근 ‘디지털 행동 데이터 기반 연구’ 과제를 수행하며 그 정점을 경험했다. 나라장터 경쟁입찰이라는 새로운 도전이었을 뿐만 아니라, 참여자의 주관적 기분(Active)과 객관적 행동(Passive) 데이터를 40일 이상 정밀하게 수집해야 하는 난도가 극도로 높은 프로젝트였다.
나는 담당자들에게 프로젝트의 모든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그들에게 오너십을 부여했다. 그러자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세 개의 팀이 각자의 영역에만 머물지 않고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먼저 찾아내 제안하며 거대한 시너지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목표 대비 40%를 초과 달성하는 경이로운 성적을 거두었다. 어려운 과제일수록 서로를 믿고 단결하는 동료들의 뒷모습을 보며, 경영자로서 형언할 수 없는 자부심과 행복을 느꼈다. 강한 팀은 위기 속에서 비로소 완성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한 순간이었다.
Q6. 인재를 보는 눈이 남다를 것 같다. 사람을 판단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은.
나는 업무적 능력보다 “선한 의도와 협력하려는 마음가짐”을 최우선 가치로 둔다. 자신의 직무를 완벽히 수행하는 것은 프로로서의 기본이지만, 그 과정에서 타인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느냐가 조직의 운명을 결정한다. 아무리 뛰어난 천재라 할지라도 개인의 성취만을 앞세워 팀워크의 균형을 깨뜨린다면, 위기 상황에서 전체의 조화를 해치게 되는 것을 종종 보아왔다.
면접이라는 짧은 시간에 한 사람의 본성을 다 알 수는 없다. 그래서 나는 최종 면접에서 반드시 이 경영 철학을 공유한다. “우리 회사는 선한 의도와 협력하려는 마음이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라는 선언이다. 미리 가치를 공유함으로써 구성원들이 스스로를 상기하고 노력하도록 이끈다. 결국 승리하는 조직은 뛰어난 개인의 합이 아니라, 서로를 돕고 끌어주는 단단한 팀플레이어들의 집합체이기 때문이다.
Q7. 경영자에게 가장 필요한 역량과 앞으로의 포부가 궁금하다.
내가 생각하는 경영자는 모든 일을 진두지휘하는 ‘지휘관’이기 이전에, 구성원들이 최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비옥한 토양을 다지는 “환경 구축자(Environment Builder)”여야 한다. 경영자는 모든 것을 직접 하는 사람이 아니라, 좋은 사람들이 재능을 펼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드는 사람이다.
조직이 현재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새로운 자극과 비전을 제시하여 도전의 에너지를 공급하는 것이 나의 핵심 임무다. 적재적소에 인재를 배치하는 결단력과 구성원들이 협력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개인의 성장이 곧 기업의 도약으로 이어지고, 그 성과가 다시 구성원에게 기회로 돌아오는 선순환 구조를 확립하고 싶다. 앞으로도 구성원들이 서로의 능력을 신뢰하며 함께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경영자가 되기 위해 쉼 없이 정진할 것이다.

(작년 Cebu에서 열린 글로벌 단체 사원여행에서... 그야말로 다국적군이다!)
만나이: 신경수 박사(SGI지속성장연구소장)
기업 경영이 갈수록 어려운 시대입니다. 하지만 이런 어려움속에서도 강인한 사업의지와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자사만의 경쟁력을 확보하며 지속적 성장을 이어가고 있는 기업들도 많습니다. 본 코너는 이들의 경험담을 통해 새로운 인사이트를 얻기 위해 개설한 공간입니다. 이달의 주인공은 ‘글로벌 마케팅 리서치’의 한국시장을 총괄하고 있는 데이터스프링코리아의 김세희 대표입니다.
“오늘 내가 보내는 하루가, 간절히 살고 싶었던 아빠의 하루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나를 강하게 만들었다."
(데이터스프링코리아 김세희 대표이사)
Q1. 먼저 데이터스프링코리아가 어떤 곳인지 상세한 소개를 부탁한다.
데이터스프링코리아(dataSpring Korea)는 글로벌 마케팅 리서치 업계에서 세계적인 위상을 가진 일본 인테이지 홀딩스(Intage Holding) 그룹의 자회사인 데이터스프링의 한국 법인으로, 2010년 3월에 설립되었다. 우리는 단순히 기계적으로 숫자를 나열하는 회사가 아니다. 기업이나 국가기관, 학술 연구자들이 중대한 의사결정을 내릴 때 그 근거가 되는 ‘사람들의 진솔한 목소리’를 가장 정확하고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 를 통해 전달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현재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 44개국에 걸친 광범위한 패널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으며,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마케팅 의사결정 지원, 광고 효과 측정, 공공정책 수립을 위한 기초 자료 조사 등 연간 약 1,000건에 달하는 고난도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특히 최근 K-브랜드의 위상이 높아지며 해외 시장 진출을 꾀하는 국내 기업들이 급증하고 있는데, 이들이 낯선 시장에서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도록 현지 소비자의 생생한 니즈를 정밀하게 파악해 주는 글로벌 인사이트의 가교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18명의 정예 구성원이 모인 우리 팀은 데이터를 모으는 행위를 넘어, 소비자의 생각과 기업의 미래를 연결하는 데이터 생태계의 중심에 서있다.
회사에 대해 한가지 더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있다. 우리 데이터스프링코리아는 선한 마음과 팀워크를 중요하게 생각하며, 개개인의 성장에도 정진하는, 좋은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자부한다. 각자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면서도 서로를 배려하고 응원하는 분위기가 우리의 큰 힘이다. 셔플런치, 패밀리데이, 할로윈, 송년회, 사원여행 등 크고 작은 사내 이벤트나 소소한 격려를 통해 마음을 나누고,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이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늘 고민하고 있다. 결국 좋은 데이터도, 좋은 서비스도, 좋은 사람들이 만드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Q2. 대표님의 개인적인 이력이 독특하다고 들었다. 지금의 자리에 오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하다.
나의 직업적 여정은 2000년, 당시 웹 에이전시 FID에 기획자로 입사하며 시작되었다. 삼성카드, LG화학 등 국내 유수 대기업의 웹사이트 구축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기획자이자 프로젝트 매니저로서의 기초를 다졌다. 그러다 2001년, 회사의 일본 지사 설립이 내 인생의 첫 번째 거대한 문을 열어주었다. 당시 나의 일본어 실력은 현지 업무가 불가능한 수준이었으나, 회사에서 제공한 일본어 수업에 단 한 번도 빠지지 않았던 집요함과 성실함을 인정받아 도쿄 지사 발령이라는 기회를 얻었다.
2년 뒤 한국 본사가 도산하는 시련을 맞았으나, 나는 일본 법인장과 뜻을 같이하며 현지에 남아 NTT서일본 지역커뮤니티, 나무코 게임사이트, 닛산 인트라넷 등 대기업들의 디지털 플랫폼 기획자로서 10년 가까이 활약했다. 낯선 타국에서 이방인으로 살아남기 위해 미팅이 끝날 때마다 내가 이해한 내용을 다시 정리해 확인받던 습관은, 훗날 “커뮤니케이션의 본질은 유창한 언어가 아니라 서로에 대한 완벽한 이해”라는 나의 확고한 신념이 되었다. 이후 도쿄디즈니리조트의 한국 프로모션 등을 성공시키며 일본 내 한국인으로서의 경쟁력을 증명했고, 그 전문성을 인정받아 데이터스프링 한국 법인의 설립 책임자로 합류하여 2015년부터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Q3. 인생을 관통하는 가장 큰 변곡점이나 전환점이 된 사건이 있다면 무엇인가.
나를 가장 단단하게 만든 사건은 대학 졸업 무렵, 갑작스럽게 찾아온 아버님과의 이별이다. 그전까지의 나는 세상 물정 모른 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지극히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그러나 아버님의 부재는 나를 하루아침에 고등학생 동생들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의 자리에 앉혔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벼랑 끝 상황이 오히려 내 안에 잠재되어 있던 지독한 의욕과 투지를 끌어올렸다.
무언가에 도전할 때 느끼던 막연한 두려움은 아버님이 남기신 삶의 무게 앞에서 먼지처럼 사라졌다. “오늘 내가 무심코 흘려보내는 이 하루가, 그토록 간절히 살고 싶어 하셨던 아빠의 마지막 하루였을지도 모른다”는 문장은 지금도 나를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동력이다. 그 이후로 나는 시간을 대하는 태도 자체가 바뀌었다. 매 순간을 마지막처럼 치열하게 살아내야 한다는 절박함이 나를 두려움 없는 경영자로 성장시켰고, '두려워할 것이 무엇이랴'라는 마음가짐으로 매사에 최선을 다하게 되었다.
Q4. 사업을 운영하며 가장 고통스러웠던 순간은 언제였으며, 어떻게 극복했나.
법인 설립 후 초기 1년 반 동안이 내 커리어에서 가장 외롭고 처절했던 시기였다. 8년 반의 일본 생활을 뒤로하고 귀국해 10평 남짓한 작은 오피스텔에서 홀로 사업을 시작했다. 글로벌 기업의 지사장이라는 타이틀은 화려했지만, 실상은 매일 새벽 4시에 눈을 떠 패널 데이터 수치를 확인하며 가슴을 졸이는 일상의 반복이었다. 한국인 지사장으로서 본사의 지원 없이도 독자적인 생존력을 증명해야 한다는 강박이 나를 짓눌렀다.
당시엔 사업성을 확신할 수 없어 정규직 동료 없이 아르바이트생들과 업무를 처리했기에, 미래를 논하거나 고민을 나눌 상대가 없어 밤마다 지독한 고립감과 싸워야 했다. 하지만 그 시기는 나에게 “기업의 본질은 결국 함께하는 사람”이라는 평생의 교훈을 남겼다. 이후 정사원을 한 명씩 채용하며 같은 곳을 바라보는 동료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꼈고, 그 고통의 시간 덕분에 나는 지금의 구성원 한 명 한 명을 내 몸처럼 아끼고 존중하는 경영자가 될 수 있었다.
Q5. 반대로, 경영자로서 가장 보람을 느꼈거나 행복했던 경험은 무엇인가.
구성원 개개인의 만족과 성장이 회사의 실적과 완벽하게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순간을 목격할 때다. 최근 ‘디지털 행동 데이터 기반 연구’ 과제를 수행하며 그 정점을 경험했다. 나라장터 경쟁입찰이라는 새로운 도전이었을 뿐만 아니라, 참여자의 주관적 기분(Active)과 객관적 행동(Passive) 데이터를 40일 이상 정밀하게 수집해야 하는 난도가 극도로 높은 프로젝트였다.
나는 담당자들에게 프로젝트의 모든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그들에게 오너십을 부여했다. 그러자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세 개의 팀이 각자의 영역에만 머물지 않고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먼저 찾아내 제안하며 거대한 시너지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목표 대비 40%를 초과 달성하는 경이로운 성적을 거두었다. 어려운 과제일수록 서로를 믿고 단결하는 동료들의 뒷모습을 보며, 경영자로서 형언할 수 없는 자부심과 행복을 느꼈다. 강한 팀은 위기 속에서 비로소 완성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한 순간이었다.
Q6. 인재를 보는 눈이 남다를 것 같다. 사람을 판단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은.
나는 업무적 능력보다 “선한 의도와 협력하려는 마음가짐”을 최우선 가치로 둔다. 자신의 직무를 완벽히 수행하는 것은 프로로서의 기본이지만, 그 과정에서 타인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느냐가 조직의 운명을 결정한다. 아무리 뛰어난 천재라 할지라도 개인의 성취만을 앞세워 팀워크의 균형을 깨뜨린다면, 위기 상황에서 전체의 조화를 해치게 되는 것을 종종 보아왔다.
면접이라는 짧은 시간에 한 사람의 본성을 다 알 수는 없다. 그래서 나는 최종 면접에서 반드시 이 경영 철학을 공유한다. “우리 회사는 선한 의도와 협력하려는 마음이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라는 선언이다. 미리 가치를 공유함으로써 구성원들이 스스로를 상기하고 노력하도록 이끈다. 결국 승리하는 조직은 뛰어난 개인의 합이 아니라, 서로를 돕고 끌어주는 단단한 팀플레이어들의 집합체이기 때문이다.
Q7. 경영자에게 가장 필요한 역량과 앞으로의 포부가 궁금하다.
내가 생각하는 경영자는 모든 일을 진두지휘하는 ‘지휘관’이기 이전에, 구성원들이 최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비옥한 토양을 다지는 “환경 구축자(Environment Builder)”여야 한다. 경영자는 모든 것을 직접 하는 사람이 아니라, 좋은 사람들이 재능을 펼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드는 사람이다.
조직이 현재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새로운 자극과 비전을 제시하여 도전의 에너지를 공급하는 것이 나의 핵심 임무다. 적재적소에 인재를 배치하는 결단력과 구성원들이 협력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개인의 성장이 곧 기업의 도약으로 이어지고, 그 성과가 다시 구성원에게 기회로 돌아오는 선순환 구조를 확립하고 싶다. 앞으로도 구성원들이 서로의 능력을 신뢰하며 함께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경영자가 되기 위해 쉼 없이 정진할 것이다.
(작년 Cebu에서 열린 글로벌 단체 사원여행에서... 그야말로 다국적군이다!)
만나이: 신경수 박사(SGI지속성장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