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을 경영한다는 것은 바둑판의 돌을 놓는 것과 같다. 어디로 어떻게 가야할 지를 끊임없이 결정해야 하는 선택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성공한 선택은 조직의 도약을 부르지만, 잘못된 선택은 조직의 침체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렇다면 리더들은 선택의 순간, 어떤 기준으로 어떤 판단을 내리는 것일까? 그들이 고민했던 역사적 순간들을 청취함으로써 우리의 미래를 읽는 통찰을 얻고자 한다. 이것이 바로 본 코너의 운영 목적이다. 이번 달의 주인공은 국내 ‘토퍼’생산 1위 럭스나인의 김인호 대표이다.
그에게는 살아오면서 어떤 갈래길들이 있었으며, 그 순간 어떤 선택을 했을까? 그가 들려주는 선택의 순간들을 들으며 현명한 미래를 설계하는 힌트로 삼고자 한다.
철도공무원에서 외국기업CEO,
그리고 국내 No1’토퍼’ 제조기업의 오너가 되기까지…
Q1. 회사소개를 먼저 해달라. 럭스나인은 어떤 회사인가?
럭스나인은 ‘토퍼’를 만드는 회사이다. 토퍼는 이불보다 두껍고 매트리스보다 얇은 중간 두께의 깔개로, 바닥에 깔아 사용하거나 매트리스 위에 올려 사용하는 매트리스의 대체품 혹은 보조 용도로 사용되고 있는 제품이다. 럭스나인이라는 사명은 빛(Lux)과 동서양에서 최상을 뜻하는 숫자 9(Nine)를 합친 것이다. 품질과 서비스에서 최상의 빛을 내는 전문기업으로 만들고 싶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2011년 창업을 했고, 그 때 처음 선보인 상품 라텍스 핫앤쿨 토퍼(Hot & Cool Topper)가 히트를 치면서 회사는 별 어려움 없이 안정적으로 출범을 했다.
핫앤쿨 토퍼는 여름용과 겨울용이 한꺼번에 들어 있는 제품이다. 매트 한쪽 면은 여름용으로 시원하게, 다른 한쪽은 겨울용으로 따뜻하게 만들었다. 계절에 맞춰 뒤집어쓰는 제품으로 대형마트에서 주문이 쏟아져 3년간 7만장이 넘게 팔렸다. 지난해 말에 내놓은 두 번째 제품 ‘오가닉라텍스’도 뜨겁게 주목받는 중이다. 오가닉라텍스는 라텍스 원재료인 고무나무부터 겉감까지 모두 오가닉으로 인증받은 매트이다. 네덜란드 인증기관인 GOALS로부터 인증받았고, 순수 라텍스가 97% 이상 들어 있다. 반면 가격은 이케아보다 20% 이상 저렴해서 소비자들의 큰 사랑을 받고 있다.
Q2. 자기소개를 좀 해달라. 개인 이력이 궁금하다.
전라남도 나주에서 3남2녀 중에 맞이로 태어났다. 서울에 유학 보내고 픈 아버지의 뜻에 따라 고등학교때 서울로 올라왔다. 철도고등학교에 진학을 했는데, 전액 국비라는 장점도 있었지만 졸업하면 바로 철도공무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이 큰 매력으로 작용해서 아무 고민없이 서울에 있는 철도고에 입학을 했다. 그리고 자동으로 철도공무원이 되었다. 그렇게 공무원 생활을 하던 어느 날 갑자기 공부에 대한 욕심이 생겼다. 솔직히 고등학교 다닐 때는 거의 공부를 하지 않았다. 정해진 미래가 있는데, 굳이 공부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득 이래도 괜찮은가, 하는 의구심이 생긴 것이다. 뭐랄까? 정해진 미래가 아닌 나의 의지로 나의 미래를 만들어야 하지 않나, 하는 그런 생각이었다. 그래서 낮에는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저녁에는 대학을 다니기 시작했다. 27살 늦은 나이에 시작한 대학 생활이었는데, 정말 재미가 있었다. 공부도 재미가 있었고, 캠퍼스 생활도 재미가 있었다.
졸업 후, 공무원 보다는 민간기업이 적성에 맞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공무원 생활을 정리하고 조선맥주에 들어갔다. 지금으로 치면 하이트진로인데, 그곳에서 칼스버그맥주 마케팅을 담당했다. 이후 글로벌 조사 업체 닐슨을 거쳐 유니레버코리아에서 트레이드마케팅 팀장으로 일했다. 그러다 다국적 침대업체 씰리코리아의 사장을 16년간 맡았고, 2011년 지금의 회사를 창업했다.
Q3.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큰 변곡점이나 전환점이 되었던 사건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내 나이 45살쯤 되던 때, 갑자기 앞으로의 인생에 대한 고민이 밀려왔다. 당시 씰리코리아의 사장을 하고 있던 때라 아무 문제만 생기지 않는다면 이대로 쭉 외국기업의 CEO로서 정년을 맞이하고 큰 무리없이 은퇴를 했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문득 지금의 상황에 대한 회의감이 생겼다. 공무원 생활하다가 다시 공부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느꼈던 그런 느낌이었다.
그럴 때, ‘단학선원’이 눈에 들어왔다. 물론 그 전부터 운동 때문에 가끔 갔던 곳인데, 그 날은 유난히도 ‘명상’ ‘단식’이라는 큰 포스터가 눈에 띄게 크게 보였다. 참고로 난 독실한 천주교 신자다. 이건 종교와는 관계없는 이야기이니 오해 없기 바란다. 아무튼 묘한 호기심이 끌렸다. 그래서 이게 뭔가 하고 그곳에서 운영하는 명상 프로그램에 입교를 해서 4박5일간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그곳에서 ‘나는 누구인가?’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맞이했다.
그곳에서 보낸 시간들이 내 인생을 통째로 바꾸어 놓았다. 앞으로의 인생을 어떻게 보내야 할 지에 대한 미래설계를 하게 되었는데, 그건 바로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생을 살아야겠다는 결심이었다. 여기서 다시 어떻게 선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다. 나는 사업가였고, 당연히 사업을 통해서 선한 영향력을 행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지금의 회사에서 나는 전문경영인일 뿐이고, 나의 의지대로 뭔가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나의 회사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당시, 멘토로서 항상 가르침을 주셨던 분이 인간개발연구원의 故장만기 회장님이셨다. 회장님에게 이런 말씀을 드리면서 당시 사업아이템으로 검토를 하고 있었던 2개의 사업모델을 말씀드렸다. 하나는 아파트 모델하우스 시공 사업이었고, 다른 하나는 해외광물 사업이었다. 그런데, 회장님이 둘 다 나에게 맞지 않는 옷이라고 하시면서 지금하고 있는 일에서 고민해 보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래서 찾은 게 ‘토퍼’였다.
씰리와 같은 큰 침대 회사들은 토퍼를 생산하지 않는다. 시장이 작기 때문이다. 작은 기업들만 토퍼를 취급하다 보니 품질 문제가 끊임없이 불거졌고, 제대로 된 토퍼를 만들면 승산이 있겠다 싶어 럭스나인의 첫 아이템으로 토퍼를 정했다.
예상대로 제품에 한 끗 차이를 더하니 소비자의 불만이 불식됐다. 오히려 입소문이 났는지 초기엔 별도의 마케팅을 하지 못했는데도 럭스나인 제품을 찾는 사람이 늘어났다. 코스트코의 테스트마켓에서 판매를 시작했는데 날개 돋친 듯 팔렸고 머지않아 정식으로 입점할 수 있었다. 럭스나인 토퍼는 ‘대일밴드’나 ‘스카치테이프’처럼 라텍스 토퍼 매트리스의 대명사로 통할 정도로 영향력을 갖기에 이르렀다. 생각해 보면 이 모든 것들이 다 멘토이셨던 故장만기 회장님 덕분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참고로 나는 회사 창업이래 영업이익의 6%는 반드시 기부를 하고 있다. 사회봉사 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다. 마케팅 활동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사회에 좋은 일을 하기 위해서 창업을 결심한 것이기 때문에 마케팅하고는 별 상관이 없다. 나는 그냥 내가 잘 아는 영역에서 좋은 제품을 만들어서 사람들을 건강하게 해 주고, 또 거기서 나는 수익금을 통해서 사회에 좋은 일을 하고 싶은 것뿐이다.
Q4. 경영자로서 가장 성공적이었다고 자부하는 경영활동이나 프로젝트는 무엇인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씰리코리아의 사장으로 있을 때이다. 나는 럭스나인 창업 전, 전 세계 1위 침대업체 씰리의 한국사무소장을 거쳐 법인장으로 16년 동안 일했다. 이때 매출을 세계 진출국 중 10위권까지 올려놔 본사에서 주는 회장상(chairman`s award)을 두 번이나 받았다. 또 씰리의 120년 원칙을 깬 사람이기도 하다. 씰리는 매트리스만 만든다는 원칙을 유지해왔으나 ‘한국 시장에서는 프레임이 필요하다’는 10여년에 걸친 나의 집요한 설득으로 프레임까지 만들게 되었다. 씰리가 진출한 세계 31개국 중 씰리 브랜드를 단 침대 프레임은 오직 한국에만 있다.
두 번째는 헬스케어 시장의 진출이다. 2020년 팬데믹이 시작됐고 남들처럼 나 또한 보건과 헬스케어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때 매트리스를 의료기기로 만들어보자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건강상태를 가늠하는 지표인 바이털사인, 즉 심전도, 호흡, 체온, 맥박 등을 측정할 때는 안정적인 자세가 매우 중요하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침대는 사람이 가장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는 공간이지 않은가. 매트리스야말로 바이털사인을 가장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는 자리인 셈이다. R&D팀에 ‘바이털사인을 측정할 수 있는 매트리스를 만들자’고 주문했고 2~3개월 만에 연구진이 매트리스에 관련 ICT 기술을 융합할 방법을 찾아냈다.
매트리스에 누워 신호를 측정하는 기술은 국내에서 발명특허를 출원한 지 6주 만에 특허등록 결정이 났다. 현재 해외에서도 출원을 한 상태이고, 이 외에도 동작 및 자세측정 기술에 대한 특허도 보유하고 있다. 피트니스 영역을 넘어 임상 영역에서도 유효성을 가진 기술로, 사용자의 동작 및 자세에 따른 심전도와 생체 신호를 분석해 사용자의 통증까지 모니터링할 수 있다. 고령환자와 만성질환자, 중환자까지 다양한 환자에게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Q5. 사람에 대한 질문이다. 사람을 판단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무엇인가?
나의 장점이자 단점인데, 나는 기본적으로 사람을 좋아한다. 아마도 할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 아무래도 집안의 어른이고 하다 보니, 할머니와 사람들의 관계가 엄청 정(情)적이고 따뜻했던 모양이다. 할머니가 사람들을 대하는 것, 사람들이 할머니를 대하는 것 등을 보면서 기본적으로 사람에 대한 사랑 애정 이런 것들이 깊게 형성된 게 아닌가 생각한다.
그래서 사람을 처음 만날 때, 많이 믿는 편이다. 그러다 사기를 당한 경우도 적지가 않지만 그래도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고 사람을 많이 믿는 편이다. 여기서 형성된 가치관이 ‘정직’이다. 언젠가부터 ‘정직’을 가운데 두고 사람들하고의 교제를 이어가는 나를 발견했다. 아마도 지나치게 사람을 믿고 시작하는 성격을 보완하기 위해서 형성된 가치관이 아닌가 생각한다. 물론 처음 보는 사람이 정직한가 아닌가를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시간을 두고 관계를 이어가면서 저 사람이 정직한 사람인가, 정직하지 못한 사람인가는 대충 파악이 되는 것 같다.
Q6. 100인 100색의 직장인 행동유형을 경험했을 것이다. 대표님의 회사나 일반적인 직장인의 바람직한 행동,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에 대한 개인적 가치관이 궁금하다.
이것 또한 ‘정직’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에 두고 판단한다. 예전 직장이던 ‘유니레버’나 ‘씰리코리아’에서도 그렇고, 지금의 ‘럭스나인’에서도 그렇지만, 동료 직원들하고 일을 하다 보면 어떤 친구들은 본인이 저지른 실수에 대해서 ‘변명’으로 일관하는 친구들이 있다. 그냥 잘못이나 실수를 했으면 솔직히 인정을 하고 용서를 구하면 될 일을 뻔히 보이는 변명으로 주변 사람들을 속이는 사람들이 있다. 간혹 이걸 '소신'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건 소신하고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소신이 있다는 것은, 실패한 결과에 대해서 거짓없이 과정을 이행을 했고 단지 안 좋은 결과가 나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변명을 한다는 것은 그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거짓으로 결과를 포장한다는 말이기 때문에 정직하지 못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친구들은 정말 구제불능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정직한 친구들은 애정이 간다. 우리 회사의 핵심가치가 ‘신뢰’와 ‘배려’인데, 내가 봤을 때는 정직한 친구들의 특징이 이런 행동들인 것 같다.
Q7. 경기가 좋지 않아 많은 기업들이 어려움에 처해 있다. 이럴 때일수록 CEO는, 기업은 어느 부분에 신경을 써야한다고 생각하는가?
지금 현재의 시점에서만 머물러 있으면 어렵고 힘들 수밖에 없다. 아무리 잘 나가는 기업도 어려울 때는 있는 법이다. 그런데 그 위기를 극복하고 못하고는 시점을 어디에 두고 있느냐에 달려있다고 생각을 한다. 사업가는 시점을 길게 봐야 한다. 지금의 현상에 머물러 있으면 마음이 조급해서 연달아 실수를 하게 되고, 그러면 소비자와 직원들로부터 신뢰를 잃게 된다. 반면, 장기적 관점에서 생각을 하게 되면 지금의 상황보다는 앞으로의 상황에 집중하게 되고, 그러면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에 대한 것들이 객관화되어 보이게 된다. 아무리 어려워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생각으로 장기적 관점에서 생각하는 사고가 필요하다.
글쓴이: 신경수 조직심리박사 (지속성장연구소장 / 인간개발연구원 부원장)
🔈리더인터뷰는 HDI인간개발연구원과 SGI지속성장연구소에 소속된 회원사 CEO들을 대상으로 취재하는 기획기사로서 저작권은 양 기관에 있음을 알립니다.
기업을 경영한다는 것은 바둑판의 돌을 놓는 것과 같다. 어디로 어떻게 가야할 지를 끊임없이 결정해야 하는 선택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성공한 선택은 조직의 도약을 부르지만, 잘못된 선택은 조직의 침체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렇다면 리더들은 선택의 순간, 어떤 기준으로 어떤 판단을 내리는 것일까? 그들이 고민했던 역사적 순간들을 청취함으로써 우리의 미래를 읽는 통찰을 얻고자 한다. 이것이 바로 본 코너의 운영 목적이다. 이번 달의 주인공은 국내 ‘토퍼’생산 1위 럭스나인의 김인호 대표이다.
그에게는 살아오면서 어떤 갈래길들이 있었으며, 그 순간 어떤 선택을 했을까? 그가 들려주는 선택의 순간들을 들으며 현명한 미래를 설계하는 힌트로 삼고자 한다.
철도공무원에서 외국기업CEO,
그리고 국내 No1’토퍼’ 제조기업의 오너가 되기까지…
Q1. 회사소개를 먼저 해달라. 럭스나인은 어떤 회사인가?
럭스나인은 ‘토퍼’를 만드는 회사이다. 토퍼는 이불보다 두껍고 매트리스보다 얇은 중간 두께의 깔개로, 바닥에 깔아 사용하거나 매트리스 위에 올려 사용하는 매트리스의 대체품 혹은 보조 용도로 사용되고 있는 제품이다. 럭스나인이라는 사명은 빛(Lux)과 동서양에서 최상을 뜻하는 숫자 9(Nine)를 합친 것이다. 품질과 서비스에서 최상의 빛을 내는 전문기업으로 만들고 싶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2011년 창업을 했고, 그 때 처음 선보인 상품 라텍스 핫앤쿨 토퍼(Hot & Cool Topper)가 히트를 치면서 회사는 별 어려움 없이 안정적으로 출범을 했다.
핫앤쿨 토퍼는 여름용과 겨울용이 한꺼번에 들어 있는 제품이다. 매트 한쪽 면은 여름용으로 시원하게, 다른 한쪽은 겨울용으로 따뜻하게 만들었다. 계절에 맞춰 뒤집어쓰는 제품으로 대형마트에서 주문이 쏟아져 3년간 7만장이 넘게 팔렸다. 지난해 말에 내놓은 두 번째 제품 ‘오가닉라텍스’도 뜨겁게 주목받는 중이다. 오가닉라텍스는 라텍스 원재료인 고무나무부터 겉감까지 모두 오가닉으로 인증받은 매트이다. 네덜란드 인증기관인 GOALS로부터 인증받았고, 순수 라텍스가 97% 이상 들어 있다. 반면 가격은 이케아보다 20% 이상 저렴해서 소비자들의 큰 사랑을 받고 있다.
Q2. 자기소개를 좀 해달라. 개인 이력이 궁금하다.
전라남도 나주에서 3남2녀 중에 맞이로 태어났다. 서울에 유학 보내고 픈 아버지의 뜻에 따라 고등학교때 서울로 올라왔다. 철도고등학교에 진학을 했는데, 전액 국비라는 장점도 있었지만 졸업하면 바로 철도공무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이 큰 매력으로 작용해서 아무 고민없이 서울에 있는 철도고에 입학을 했다. 그리고 자동으로 철도공무원이 되었다. 그렇게 공무원 생활을 하던 어느 날 갑자기 공부에 대한 욕심이 생겼다. 솔직히 고등학교 다닐 때는 거의 공부를 하지 않았다. 정해진 미래가 있는데, 굳이 공부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득 이래도 괜찮은가, 하는 의구심이 생긴 것이다. 뭐랄까? 정해진 미래가 아닌 나의 의지로 나의 미래를 만들어야 하지 않나, 하는 그런 생각이었다. 그래서 낮에는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저녁에는 대학을 다니기 시작했다. 27살 늦은 나이에 시작한 대학 생활이었는데, 정말 재미가 있었다. 공부도 재미가 있었고, 캠퍼스 생활도 재미가 있었다.
졸업 후, 공무원 보다는 민간기업이 적성에 맞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공무원 생활을 정리하고 조선맥주에 들어갔다. 지금으로 치면 하이트진로인데, 그곳에서 칼스버그맥주 마케팅을 담당했다. 이후 글로벌 조사 업체 닐슨을 거쳐 유니레버코리아에서 트레이드마케팅 팀장으로 일했다. 그러다 다국적 침대업체 씰리코리아의 사장을 16년간 맡았고, 2011년 지금의 회사를 창업했다.
Q3.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큰 변곡점이나 전환점이 되었던 사건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내 나이 45살쯤 되던 때, 갑자기 앞으로의 인생에 대한 고민이 밀려왔다. 당시 씰리코리아의 사장을 하고 있던 때라 아무 문제만 생기지 않는다면 이대로 쭉 외국기업의 CEO로서 정년을 맞이하고 큰 무리없이 은퇴를 했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문득 지금의 상황에 대한 회의감이 생겼다. 공무원 생활하다가 다시 공부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느꼈던 그런 느낌이었다.
그럴 때, ‘단학선원’이 눈에 들어왔다. 물론 그 전부터 운동 때문에 가끔 갔던 곳인데, 그 날은 유난히도 ‘명상’ ‘단식’이라는 큰 포스터가 눈에 띄게 크게 보였다. 참고로 난 독실한 천주교 신자다. 이건 종교와는 관계없는 이야기이니 오해 없기 바란다. 아무튼 묘한 호기심이 끌렸다. 그래서 이게 뭔가 하고 그곳에서 운영하는 명상 프로그램에 입교를 해서 4박5일간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그곳에서 ‘나는 누구인가?’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맞이했다.
그곳에서 보낸 시간들이 내 인생을 통째로 바꾸어 놓았다. 앞으로의 인생을 어떻게 보내야 할 지에 대한 미래설계를 하게 되었는데, 그건 바로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생을 살아야겠다는 결심이었다. 여기서 다시 어떻게 선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다. 나는 사업가였고, 당연히 사업을 통해서 선한 영향력을 행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지금의 회사에서 나는 전문경영인일 뿐이고, 나의 의지대로 뭔가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나의 회사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당시, 멘토로서 항상 가르침을 주셨던 분이 인간개발연구원의 故장만기 회장님이셨다. 회장님에게 이런 말씀을 드리면서 당시 사업아이템으로 검토를 하고 있었던 2개의 사업모델을 말씀드렸다. 하나는 아파트 모델하우스 시공 사업이었고, 다른 하나는 해외광물 사업이었다. 그런데, 회장님이 둘 다 나에게 맞지 않는 옷이라고 하시면서 지금하고 있는 일에서 고민해 보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래서 찾은 게 ‘토퍼’였다.
씰리와 같은 큰 침대 회사들은 토퍼를 생산하지 않는다. 시장이 작기 때문이다. 작은 기업들만 토퍼를 취급하다 보니 품질 문제가 끊임없이 불거졌고, 제대로 된 토퍼를 만들면 승산이 있겠다 싶어 럭스나인의 첫 아이템으로 토퍼를 정했다.
예상대로 제품에 한 끗 차이를 더하니 소비자의 불만이 불식됐다. 오히려 입소문이 났는지 초기엔 별도의 마케팅을 하지 못했는데도 럭스나인 제품을 찾는 사람이 늘어났다. 코스트코의 테스트마켓에서 판매를 시작했는데 날개 돋친 듯 팔렸고 머지않아 정식으로 입점할 수 있었다. 럭스나인 토퍼는 ‘대일밴드’나 ‘스카치테이프’처럼 라텍스 토퍼 매트리스의 대명사로 통할 정도로 영향력을 갖기에 이르렀다. 생각해 보면 이 모든 것들이 다 멘토이셨던 故장만기 회장님 덕분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참고로 나는 회사 창업이래 영업이익의 6%는 반드시 기부를 하고 있다. 사회봉사 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다. 마케팅 활동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사회에 좋은 일을 하기 위해서 창업을 결심한 것이기 때문에 마케팅하고는 별 상관이 없다. 나는 그냥 내가 잘 아는 영역에서 좋은 제품을 만들어서 사람들을 건강하게 해 주고, 또 거기서 나는 수익금을 통해서 사회에 좋은 일을 하고 싶은 것뿐이다.
Q4. 경영자로서 가장 성공적이었다고 자부하는 경영활동이나 프로젝트는 무엇인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씰리코리아의 사장으로 있을 때이다. 나는 럭스나인 창업 전, 전 세계 1위 침대업체 씰리의 한국사무소장을 거쳐 법인장으로 16년 동안 일했다. 이때 매출을 세계 진출국 중 10위권까지 올려놔 본사에서 주는 회장상(chairman`s award)을 두 번이나 받았다. 또 씰리의 120년 원칙을 깬 사람이기도 하다. 씰리는 매트리스만 만든다는 원칙을 유지해왔으나 ‘한국 시장에서는 프레임이 필요하다’는 10여년에 걸친 나의 집요한 설득으로 프레임까지 만들게 되었다. 씰리가 진출한 세계 31개국 중 씰리 브랜드를 단 침대 프레임은 오직 한국에만 있다.
두 번째는 헬스케어 시장의 진출이다. 2020년 팬데믹이 시작됐고 남들처럼 나 또한 보건과 헬스케어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때 매트리스를 의료기기로 만들어보자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건강상태를 가늠하는 지표인 바이털사인, 즉 심전도, 호흡, 체온, 맥박 등을 측정할 때는 안정적인 자세가 매우 중요하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침대는 사람이 가장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는 공간이지 않은가. 매트리스야말로 바이털사인을 가장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는 자리인 셈이다. R&D팀에 ‘바이털사인을 측정할 수 있는 매트리스를 만들자’고 주문했고 2~3개월 만에 연구진이 매트리스에 관련 ICT 기술을 융합할 방법을 찾아냈다.
매트리스에 누워 신호를 측정하는 기술은 국내에서 발명특허를 출원한 지 6주 만에 특허등록 결정이 났다. 현재 해외에서도 출원을 한 상태이고, 이 외에도 동작 및 자세측정 기술에 대한 특허도 보유하고 있다. 피트니스 영역을 넘어 임상 영역에서도 유효성을 가진 기술로, 사용자의 동작 및 자세에 따른 심전도와 생체 신호를 분석해 사용자의 통증까지 모니터링할 수 있다. 고령환자와 만성질환자, 중환자까지 다양한 환자에게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Q5. 사람에 대한 질문이다. 사람을 판단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무엇인가?
나의 장점이자 단점인데, 나는 기본적으로 사람을 좋아한다. 아마도 할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 아무래도 집안의 어른이고 하다 보니, 할머니와 사람들의 관계가 엄청 정(情)적이고 따뜻했던 모양이다. 할머니가 사람들을 대하는 것, 사람들이 할머니를 대하는 것 등을 보면서 기본적으로 사람에 대한 사랑 애정 이런 것들이 깊게 형성된 게 아닌가 생각한다.
그래서 사람을 처음 만날 때, 많이 믿는 편이다. 그러다 사기를 당한 경우도 적지가 않지만 그래도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고 사람을 많이 믿는 편이다. 여기서 형성된 가치관이 ‘정직’이다. 언젠가부터 ‘정직’을 가운데 두고 사람들하고의 교제를 이어가는 나를 발견했다. 아마도 지나치게 사람을 믿고 시작하는 성격을 보완하기 위해서 형성된 가치관이 아닌가 생각한다. 물론 처음 보는 사람이 정직한가 아닌가를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시간을 두고 관계를 이어가면서 저 사람이 정직한 사람인가, 정직하지 못한 사람인가는 대충 파악이 되는 것 같다.
Q6. 100인 100색의 직장인 행동유형을 경험했을 것이다. 대표님의 회사나 일반적인 직장인의 바람직한 행동,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에 대한 개인적 가치관이 궁금하다.
이것 또한 ‘정직’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에 두고 판단한다. 예전 직장이던 ‘유니레버’나 ‘씰리코리아’에서도 그렇고, 지금의 ‘럭스나인’에서도 그렇지만, 동료 직원들하고 일을 하다 보면 어떤 친구들은 본인이 저지른 실수에 대해서 ‘변명’으로 일관하는 친구들이 있다. 그냥 잘못이나 실수를 했으면 솔직히 인정을 하고 용서를 구하면 될 일을 뻔히 보이는 변명으로 주변 사람들을 속이는 사람들이 있다. 간혹 이걸 '소신'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건 소신하고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소신이 있다는 것은, 실패한 결과에 대해서 거짓없이 과정을 이행을 했고 단지 안 좋은 결과가 나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변명을 한다는 것은 그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거짓으로 결과를 포장한다는 말이기 때문에 정직하지 못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친구들은 정말 구제불능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정직한 친구들은 애정이 간다. 우리 회사의 핵심가치가 ‘신뢰’와 ‘배려’인데, 내가 봤을 때는 정직한 친구들의 특징이 이런 행동들인 것 같다.
Q7. 경기가 좋지 않아 많은 기업들이 어려움에 처해 있다. 이럴 때일수록 CEO는, 기업은 어느 부분에 신경을 써야한다고 생각하는가?
지금 현재의 시점에서만 머물러 있으면 어렵고 힘들 수밖에 없다. 아무리 잘 나가는 기업도 어려울 때는 있는 법이다. 그런데 그 위기를 극복하고 못하고는 시점을 어디에 두고 있느냐에 달려있다고 생각을 한다. 사업가는 시점을 길게 봐야 한다. 지금의 현상에 머물러 있으면 마음이 조급해서 연달아 실수를 하게 되고, 그러면 소비자와 직원들로부터 신뢰를 잃게 된다. 반면, 장기적 관점에서 생각을 하게 되면 지금의 상황보다는 앞으로의 상황에 집중하게 되고, 그러면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에 대한 것들이 객관화되어 보이게 된다. 아무리 어려워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생각으로 장기적 관점에서 생각하는 사고가 필요하다.
글쓴이: 신경수 조직심리박사 (지속성장연구소장 / 인간개발연구원 부원장)
🔈리더인터뷰는 HDI인간개발연구원과 SGI지속성장연구소에 소속된 회원사 CEO들을 대상으로 취재하는 기획기사로서 저작권은 양 기관에 있음을 알립니다.